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혜 Mar 23. 2022

밑졌다는 생각이 들 때

work log no.6

최근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님이 본인의 인스타그램에서 <돈의 심리학>이란 책을 추천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무려 작년에 읽었던 책 중의 최고의 책이라고 했다. 인터넷 서점에 바로 검색해보니 부자가 되기 위한 '마인드셋'을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서 그것을 가질 수 있는 힘과 그것을 누릴 시간이 너무나 중요한 나에게 '돈'과 그에 대한 '마인드셋'은 흥미를 자극하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날이 밝는 대로 서점에 가서 책을 사 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빨리 읽고 싶은 마음에 겸사겸사긴 했으나)


비싼 책이지만 언니와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았다. 아니 그런데 언니가 책을 보더니 자기가 전에 샀던 책이라는 것이었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분명 그런 장면이 있었다. 언니 방 책상에 놓인 <돈의 심리학>과 그 두꺼운 책을 보면서 '도대체 이런 책은 왜 보는 거야?'라고 혼자 빈정거렸던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민망함은 혼자만의 몫. 비싼 책인데 같이 보지 왜 벌써 중고서점에 팔았냐고 볼맨 소리를 했더니 언니가 말했다. 

'넌 돈에 관심 없잖아.'

아니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이 세상에 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참고로 이 글은 <돈의 심리학>이란 책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긴. 생각해보면 나는 유독 욕심이 없긴 했다. 아니 욕심이라기보단 내가 지금 쥘 수 있는 돈, 벌 수 있는 돈 그 이상에 대해 상상해본 적이 없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그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다. 돈이 최우선이었다면 과연 내가 없는 형편에 서울 유학까지 하면서 '영화학과'라는 취업률이 무색한 학과를 선택했을까? 물론 작품 만드는 것이 다 돈이고, 졸업 후에도 작품을 꾸준히 하려면 내가 벌지 않아도 기댈 수 있는 넉넉한 집안 사정이 있어야 함을 간과하긴 했지만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따라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당연하게도(?) 아직 서울에 집도 차도 없지만 어느 정도 돈벌이는 하고 있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저축도 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이 일과 업계 전망이 완전 꽝은 아니다. 누구누구가 몇십억, 몇백억씩 벌었다더라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으면서도 나도 언젠가 그 주인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꿈은 건재한 곳이다. 대신 그 희망이 환하게 빛날수록 현실에 드리우는 어둠도 짙다. 


정작 나부터도 그렇다. 초봉 2천만 원에 일을 시작해 시니어가 하는 일을 다 하면서도 올린 연봉이 고작 2,450만 원이었다. 초봉 2천만 원을 받던 시기에 회사는 내게 '너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잖아'라는 낡아빠진 열정 페이를 운운했다. 지금도 크게 바뀐 것은 없다. 경력이 쌓인 만큼 실력은 인정한다는 말은 듣지만 연봉은 원하는 대로 받기보단 깎이는 사람이다.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눈부신 대 성공을 한다고 해도 내게 떨어지는 돈은 1원 한 장 없다. 난 그냥 늘 그랬던 데로 한치의 틀림없는 숫자의 월급을 받을 뿐이다. 뭐 대신 다음 연봉협상에 조금 유리하긴 하겠다.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해도 넌 어떤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없을 거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듣는 것은 마음이 아픈 일이었다. 물론 관련한 부서에 오래 근무하고 있는 동료가 해준 이야기였으니 어느 정도 걸러 들을 필요는 있겠다만. 결국은 변함없이 '회사가 시키는 것이 아닌,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에 만족해.'라는 열정 페이 응용 유형의 반복이 아닌가? 주변에서 얼마를 인센티브로 받았다더라는 소문들, 같은 직장 내에서조차 대우가 다른 것들에 대해 파고들자 견디기가 힘들었다. 


이 업계에서 밑졌다는 기분은 실질적인 손해와 동시에 내가 요구할 줄 모르고 챙겨 받지 못하는 바보라는 자책감과 늘 함께 오는 것 같다. 그래서 부딪혀보지만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되면 이 세상이 나만 따돌리고 있다는 배신감과 서러움이 폭발하고 다시 '내가 바보였어.'라는 자책감으로 수렴한다. 이것만큼 최악인 것이 어디에 있을까? 마음까지 가난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바로 밑졌다는 기분이다. 



본능적으로 위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도 문제고,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이 그런 기분을 느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 '밑지는 기분'이 나에 한해서는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는 알아야만 했다.


첫 번째로 점검해야 하는 것은 내가 다른 누군가를 비교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판단해야 한다. 비교라는 것은 좋은 도구일 때도 있지만 사람마다 환경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아주 불완전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내 기준에서 비교했을 때는 저 사람과 내가 동등한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의 기준에 봤을 때는 저 사람과 나는 다른 영역에 있는지도 모른다. 즉, 기준점은 사람 혹은 그 사람이 처한 입장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인 것이다. 


자신의 입장을 요구해도 모자랄 판에 왜 남의 입장까지 고려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다. 내가 바로 털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협상 결렬! 그럼 전 떠납니다!'가 될 수 있겠지만, 같이 일을 해보자고 시작한 것이기에 충분히 서로의 입장을 고려하는 것이 순리라고 적어도 나는 생각한다. 물론 전제는 내가 고려하는 만큼 나를 고려해줄 수 있는 사람과 일을 하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말을 듣고, 다른 사람의 사례만 보고 밑졌다고 느끼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와 그 사람의 상황은 같지 않고, 그걸 판단하는 것은 입장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로 점검해야 할 것은 이 일에서 나의 목표를 명확히 하고 최소한 무엇을 얻어갈 생각이었는지를 정리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 목표는 분명했다. 현재의 나는 스스로 큰 자본을 끌어올 힘이 없고,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므로 나는 회사의 이름과 회사라는 울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서포트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젠 프로젝트를 운용하는 사람으로 발돋움이며 언젠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경험을 쌓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회사에 소속된 프로듀서이므로 내가 진행한 프로젝트는 나만의 것이 아니고, 수익도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 괜찮다. 내가 최초에 얻어갈 생각이었던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내가 얻어가고 싶었던 것은 목표이기도 하지만 부수적인 다른 두 가지도 있었다. 


회사에 소속되어 있으면 땅바닥만 바라보며 떨어진 동전이 없나 찾는 사람처럼 기회를 찾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즉 땅바닥을 보느라 시간을 뺏기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내가 생각지 못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찾아 나서야만 하는 것들을 생각지도 못하게 제안받고, 소개받으면서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는 모르나 분명히 싹을 틔울 씨앗들이 뿌려지는 것이다. 


좀 더 강력한 확신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내가 얻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내게는 남들이 미심쩍어하는 프로젝트에 의지를 가지고 밀어붙이는 우직함이 없다. 나는 항상 일에 대해서도 스스로에 대해서도 숱한 의심과 회의를 품는다. 그렇기에 프로젝트의 지지층이 필요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내가 제안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가능성이 있냐 없냐 판단하는 것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 판단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요소였다. 가능성이 있다는 회사 측의 승인은 프로젝트에 강력한 동력이 된다. 최초에 재미있다고 생각한 나와 함께 작업한 너를 넘어서 우리가 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점검을 해봤을 때 정리가 잘 되면 나는 더 이상 밑졌다는 기분에 사로잡히지 않아도 된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다. 나는 나만의 길 위에서 차분히 걸어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건 마치 평행세계처럼 각자가 자신이 주인공인 세계를 걷고 있는 것과 같다.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것이 가장 좋다. 현대의 세상은 늘 효율의 극대화를 주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장 계산기를 두드려보기보단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고 싶다.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면 돈은 따라온다는 말과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 나는 이 말들이야말로 세상이 감춰둔 비밀이라고 생각한다. 


밑지고 살지 말아야 하지만 마찬가지로 밑졌다는, 손해를 봤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면서 살고 싶다. 실제로 다소 밑졌더라도 내게 해로운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보단 조금 내어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어떤 형태이든 돌아오기 마련이며 적어도 내가 이번에 내어줬다면 다음엔 저쪽에서 내어줄 차례니까. 그것만 기억하고 있으면 된다. 


자 이제 <돈의 심리학>을 읽어볼까?



매거진의 이전글 기다리는 것이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