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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 Apr 18. 2022

차올랐다 기울었다 하는 것

work log no.8

달이 차올랐다 기우는 것과 꼭 같은 모양으로 호르몬 주기도 차올랐다 기운다. 한 달에 길면 일주일, 짧으면 사흘 정도는 그렇다. 빛나고 선연했던 모든 것들이 퇴색하고, 생동하기보단 고꾸라진다. 째깍째깍 흐르는 시간마다 변화하는 지구 상의 모든 것에서 저항하고 달아나고 싶어 진다. 정신뿐만 아니다. 몸도 약해져서 자극에 취약해진다. 바이러스가 침투하기가 쉬워지며, 미열이 오르거나, 소화가 잘 안 될 때도 있고, 두통도 생긴다.


매달 이런 식이면 '안된다'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받아들였다. 그럴 때도 있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다가도 세상 모든 것에서 밀려나는 기분을 느끼는 것도 사람이라고, 일반화할 수 없다면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다른 모든 일보다 나를 잘 돌보아 주는 일을 우선시하더라도 경제활동이나 사회생활에 딱히 큰 지장은 없다.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불필요한 충돌이나 갈등을 피할 수 있고, 건강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니 스케줄에 지장은 없으니까. 


누구나 자기 안에 또 다른 자신을 품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있어야 자기 객관화가 가능하고, 그가 있어야 감정을 통제하고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자기 안에 또 다른 누군가가 없다면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키워나가야 한다. 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 자아의 균형이다. 이를테면 언제나 부족한 내가 삽질을 하고 있다면 언제나 잘하는 내가 나타나 북돋아주어야 한다. 언제나 잘하는 내가 멋모르고 날뛰고 있다면 언제나 부족한 내가 백업을 해주어야 한다. 


밀려왔다 쓸려가는 파도처럼 차올랐다 기우는 달처럼. 



나를 표현하는 100개의 단어가 있다. 88개의 단어를 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 10개의 단어밖에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100개로 나를 표현하는데 그 사람 앞에서는 10개로 단순해진다. 아무리 내가 그 이상의 단어로 표현해 봐야 이해시키기는 영영 불가능한 일이다. 그 사람의 세계에서 나를 표현하는 단어는 10개 밖에 없으니까. 물론 그가 다른 1000개의 단어를 아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10개를 제외한 990개의 단어는 나의 세계에 없는 단어이다. 이런 상황을 종종 맞이하곤 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나는 말한다. 저 사람과 나는 안 맞는 사람이라고. 


나는 유명인도 무엇도 아니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다. 자기를 또렷하게 드러내면 낼 수록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생기지만 동시에 미워하는 사람도 생긴다는 것을.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으면, 비교적 모든 입장에 온건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언급할 거리가 무엇이 있겠는가. 일단 표현하면 할수록 영향을 받는 사람이 생기고 애정과 미움과 비난이 거의 항상 동시에 나를 향한다. 간혹 '표현하는 것 자체가 너의 죄'라고 무의식 중에 나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일련의 모든 것을 나는 스스로 '괜히 나불거려서 얻어맞는다'라고 표현하곤 했는데 뭐 어쩌겠는가. 내가 관종이라서 미안해. 내가 너무 탐스러워서 미안해. 물론 장점은 있다. 나와 비슷한 사람과 쉽게 친구가 된다. 내게 해로운 사람을 거를 수 있다. 



오늘을 살기 위해서 노력 중이다. 내가 작년부터 가장 집중하고 있는 나만의 화두인데 금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더욱더 절실하게 느끼는 중이다. 나에 관한 한 오늘 최선을 다하는 것, 나의 외부 세상에 관해서는 힘을 빼는 것. 이 균형 속에서 만사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같다. 일도, 인연도. 


내게 확실히 흥미로운 것은 인연이다. 꽤 오랜 시간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모 감독과는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는 사이다. 그런데 얼마 전 그가 고백하기를 자기 직전 애인의 이름과 내 이름이 같다는 것이었다. 처음 명함을 받았을 때 움찔했다고. 내 이름이 흔해 보이지만 흔한 이름은 아닌데 말이지. 그걸 명함을 준 지 3년이 다 되어서 알게 된 것도 흥미로웠고, 결국 이 모든 것이 인연이다 싶다. 


일도 인연의 차원으로 생각하면 조금 더 흥미롭게 생각하게 된다. 그런 날이 오는 것을 상상해본다. 일의 끝점에서 일의 시작점을 복기해보는 날을. 조금 들떠있고 모든 것이 징조와 징후였다고 지난 일을 추억하는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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