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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 May 26. 2024

hello, stranger

1. 대화

대화
對話


먼저 대화에 대해 곱씹어 본다. 한자어를 찾아보았다. 대할 대, 말씀 화가 '대화'이다. 눈에 띄는 것은 대할 '대'자이다. 글자를 살펴보면 촛대에 사람이 손을 대고 있으니, 누군가를 보기 위해 불을 밝힌다는 뜻이다. 즉 대화란 마주 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나 조직이든 대화가 중요하겠지만, 다양한 직군의 수많은 사람들을 연결해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나의 일에서는 대화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아니 어쩌면 대화가 전부인 것 같기도 하다. 의견을 묻고, 논의하고, 조율하고, 협의한다. 결과물 외에 모든 결과물들, 이를테면 시나리오, 콘티와 같은 것은 다수의 사람들이 공통의 그림을 그리고, 같은 언어로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대화를 잘하는가? 이렇게 질문해 보자 생소한 감각을 느낀다. '대화'보다 '말'을 잘하는 가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해 왔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뾰족한 하나의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었다. 왜? 너무나 뾰족했던 어린 시절, 가족 모두에게 미움받았던 과거 있었다. 물론 몇몇 친구들에게도. 그래서 내 주장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성장했다. 그리고 두 번째.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독선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보면 오로지 자신이 보이는 하나의 면만 바라본다는 어리석음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난 꽤 오랫동안 듣는 사람이었고, 듣는다는 것은 프로듀서의 일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꾸준히 말을 못 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말을 곧잘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일에 대한 생각을 글로 쓰면서부터였다. 물론 일에 대한 생각이 쌓여갈 정도의 경력이 생기면서부터였으니 결국 스스로 일에 대한 생각을 정립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일 터다. 잘 들어왔고, 잘 말하게 되었고, 나는 회의도 잇따른 회식도 항상 강렬하게, 즐겁게 이끌어갔다. 


그래서 간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일에 있어서는 문제가 없었으니까. 언제부턴가 결이 안 맞는 사람들은 피했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오래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내가 싫다 보니 나의 시시콜콜함 역시 누군가에게 따분할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이런 대화가 재미있고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보통은 애인이나 배우자와 하는 대화가 아닐까 싶지만, 공교롭게도 나는 그런 존재가 없다. 


잘 생각해 보면 내가 만들어내는 결과물, 즉 작품은 대중에게까지 닿아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만들고 있으면서 내가 소수의 친구, 업계 사람들, 함께 일하는 크리에이터 외의 사람들과 대화를 했던 적이 있었던가?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을 만들면서, 나는 인간들이 사는 진짜 세상에 나가본 적은 있었던가? 나뿐만 아니라, 업계는 우리의 결과물이 '작품'으로 불리기에 스스로도 고상하다고 생각한 걸까?


그래서 업계와 대중의 불협화음이 시작된 걸까? 


제대로 대화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우선은 내 앞의 사람에게 종국에는 세상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낯선 이와 친해져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내 마음을 열자 눈앞의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건 참 놀랍고 설레는 경험이었다. 사람들 하나하나가 읽어보고 싶은 책과도 같았다. 동시에 사람들은 자신을 읽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어떤 사소한 거라도 상관없다. 그저 바라보고, 말을 걸기로 했다. 


낯선 사람을 환대하자. 울타리를 넓히자. 동시에 내 곁의 사람들에게도 애정 어린 관심을 기울이자. 세상은 곧 내가 불을 밝혀 마주하는 사람들이고, 그 사람과의 대화로 나의 세계는 점점 넓어져 갈 것이다. 우선은 대화에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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