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금발이 너무해> (2001)
금발이 너무해 (2001)는 이런 날 추천
오늘 집중해서 빡공 하고 싶을 때.
사람들이 나보고 '넌 안될 거라고' 말해서 슬픈 날.
그래도 괜찮아. 나는 나라도 괜찮아. 나는 무적이야. 두고 보라고 하고 싶을 때.
그런 힘이 필요할 때. 그렇게 말해주는 친구가 필요할 때.
그런 해피엔딩이 이 세상 어디에는 있을 거라고 믿고 싶을 때.
지난 5월의 일이다. 퇴사를 앞두고 매거진 폴인의 스터디 리포트('퇴사하기 전 꼭 답해야 할 30가지 질문' 링커:원부연, 에디터:노희선)에서 제공한 포트폴리오 북을 완성하고 있었다. '나'에 대한 질문과 '일'에 대한 질문이 합해서 30가지 정도 있었는데 그중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다.
Q. 드라마 속, 정말 멋있게 일한다고 느꼈던 캐릭터와 이유는?
수많은 캐릭터와 수많은 직업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갔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총천연색의 폭죽이 팡하고 터지듯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캐릭터가 떠올랐다. 그 캐릭터는 영화 <금발이 너무해>의 주인공 '엘 우즈'였다. <금발이 너무해>에서 엘 우즈라는 캐릭터는 그녀가 도전하는 모습에 포커스를 두고 있기에 '일하고 있는 모습'이나 '일에 대한 가치관'에 딱 맞는 캐릭터는 아닐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엘 우즈는 내가 생각하는 단단한 일의 핵심을 짚고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엘 우즈는 금발머리 여성이 멍청하다는 견고한 편견을 깨고 법조계에 입성했음에도 결코 자신의 매력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심볼인 금발과 핑크색을 잃지 않았다. 여전히 사랑스러웠고 사람들과의 연대와 우정을 소중히 했다. 그녀 다움이 오히려 무채색의 법조계에서 개성과 무기가 되어 프로페셔널하게 빛났다.
그렇게 이유를 정리하고 나자 무척 그리워졌다. 리즈 위더스푼, 아니 나의 엘 우즈와 함께했던 십 대 시절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프닝 시퀀스 음악 '퍼펙트 데이'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2000년대에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이 있었다면 <금발이 너무해>의 엘은 내가 구독하는 유튜버이자 팔로우하는 인플루언서였을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금발머리와 러블리한 미소, 티파니 목걸이, 애완견 브루저, 페라리 스포츠카는 그녀의 심볼이었고, 그녀의 패션은 물론 학용품을 비롯한 아이템 하나하나 모든 것이 어떤 제품인지 알고 싶은 소녀들의 워너비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 지금의 유튜브의 '스터디 위드미'와 같은 콘텐츠가 있었다고 한다면 나에겐 영화 <금발이 너무해>가 그랬다. 나는 엘과 함께 꿈꾸었고 엘과 함께 공부했다
엘의 인생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 아름답고, 부유하며, 여성클럽(소로리티)의 회장이고, 홈커밍 퀸이다. 모두가 그녀를 사랑한다. 그렇다고 그녀를 등 처먹기 좋은 골빈 블론디라고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엘은 클럽 회장으로서 야무지게 많은 파티와 행사를 기획해 왔고, 유명 할리우드 배우에게 패션 조언을 해줄 정도의 센스도 갖추었다. 그런 완벽한 그녀가 오로지 남자 친구인 워너의 프러포즈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워너는 프러포즈가 아닌 이별을 통보한다. 집안의 전통을 이어 자신도 법대를 나와 정치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돕겠다고 하는 엘에게 워너는 말한다. '의원은 재키랑 결혼해야지, 마릴린이 아니라.'
어릴 때는 서양, 특히 미국의 머리 색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멍청한 금발, 완고한 갈색머리, 촌뜨기 빨간 머리, 같은 것들 말이다. 피부색뿐만 아니라 머리색까지도 편견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 지식을 몰라도 영화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누가 봐도 엘 우즈는 하버드 캠퍼스 안에 뚝 떨어진 바비인형처럼 스타일링을 하고 나오기 때문이다.
워너와 이별한 엘은 그를 다시 쟁취하기 위해서 하버드 법대에 진학하기로 결심한다. 여기서 이 영화에서 첫 번째로 재미있는 지점이 나온다. 과연 엘 우즈, 우리가 방금 10분 정도 봐 온 엘 우즈가 하버드에, 그것도 법대에 진학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떻게?
이에 대해 엘의 주변 사람들이 우리들의 가려움증을 긁어준다. 가족들은 법대는 못생기고 지루한 사람들만 가는 곳이라고 말리지만 엘의 의지는 확고하다. 그녀는 자기소개 영상을 찍고, LSAT 공부를 시작한다. 친구들은 그런 그녀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하버드는 LA에서 온 패션전공을 한 엉뚱한 금발머리의 엘 우즈를 얼떨결에 받아들이기로 한다.
오프닝 시퀀스는 여학생 기숙사로 보이는 건물 안에서 아름답게 단장하는 엘 우즈를 향해 카메라가 달려가고 그녀가 이윽고 이 행복하고 안락한 여학생들의 왕국에서 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이어 약 20분 후 엘의 하버드 법대 입학이 확정된 후는 오프닝 시퀀스와 음악톤은 비슷하지만 그 양상은 전혀 다르다. 엘은 설레임에 가득 차 스포츠카에 짐을 싣고 자신이 살던 곳과 사뭇 다른 풍경, 다른 계절의 미국 동부 도시를 질주한다. 캠퍼스 안에서 핑크빛 옷을 입고 애완견을 데리고 내린 그녀는 그곳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다. 엘은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곳, 그렇기에 자신을 전혀 받아주지 않는 세상에서의 새로운 모험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두 번째 재미있는 지점이 시작된다. 엘 우즈는 하버드 법대에서 워너와 다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하버드 법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영화는 이렇듯 처음부터 엘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을 하게 만들고 과연 그녀가 어떻게 그 도전을 넘어설지 궁금하게 만든다. 이 때문에 이 영화는 기획적으로 뛰어나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으며 그 기대에 부응해 벅찬 국면을 맞이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잘 만들어진 기획과 엔터테이닝한 요소에 구원받은 사람이 바로 나였다. 하버드 법대에 진학하겠다며 엘이 공표하자 주변에서는 말리고, 어리둥절해하고, 어이없어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모든 반응을 무적의 미소로 물리치고 도전한다. 엘은 가상의 인물이었지만 나의 롤모델이었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꿈을 꿀 때, 그 꿈을 위한 작은 발걸음인 시험공부를 앞둘 때는 나는 늘 이 영화를 보며 주먹을 꽉 거머쥐었고 나도 해낼 수 있다고 힘을 내곤 했다.
고등학생 때 나의 모의고사 성적은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을 안정적으로 노려볼 만한 성적은 아니었다.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않아서 서울에 있는 대학을 굳이 고집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포함한 많은 친구들은 오히려 명망 있는 우리 시의 국립대를 목표로 했다. 다만 내가 공부하고 싶었던 전공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밖에 없었다. 그러니 도리가 없었다. 나는 서울에 가야만 했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가족들도 잘해보라고 말은 했으나 아마 그 누구도 진짜 내가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저러다 말겠지. 꿈은 누구나 꿀 수 있고, 입은 누구나 하고 싶다고 떠들 수 있지. 쟤는 좀 특이한 애니까. 영화 찍는다고, 영화 동아리 만들겠다고 학교 들쑤시고 다니는 호들갑만 떠는 애니까.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던 아이들도 많았다. 같은 반 1등인 친구가 서울대를 갈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학교였으니까 말이다.
사실은 당사자인 내가 가장 불안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에 갈 거라고 하면서 사실은 나 스스로가 가장 의심했는 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왜 '배워야만' 했던 것이었고, 왜 '대학 졸업장'이 필요했던 것이었고, 왜 누군가의 '승인'이 필요한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내가 해버리면 그만인 일이었는데 말이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이대로 애호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추억 속에서 무언가를 좋아했던 사람으로 끝나는 것. 그것이 견딜 수가 없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고 해서 직업을 덜컥 얻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꿈을 앞세우며 삶을 현재진행형으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엘을 보면서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많은 용기를 얻었다. 물론 영화에서 입학은 고작 20분 만의 문제이고 입학 후가, 오히려 인턴십에서의 실전이 더 큰 챌린지였듯이 인생도 그랬다. 목표지점은 지나가는 점일 뿐이었다.
엘은 처음 관객을 사로잡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아직 중요한 것을 깨닫지는 못했다. 그녀는 이제 막 남자친구를 쫓아 하버드 법대를 왔을 뿐이다. 그녀는 워너의 입을 통해 그 사실을 깨닫는다. 아무리 자신이 하버드 법대에 들어와도, 별종 취급을 당하고, 따돌림과 무시, 워너 약혼녀인 비비안의 괴롭힘을 참고 이겨내도, 그래도 워너는 자신이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해도 자신이 '부족'하고, 어딘가가 '달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엘은 이제 워너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를 그만둔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낮추어보고 무시하는 워너를 자신이 이기겠다고 마음먹는다.
워너에게 매달리기를 그만두자 엘은 그녀 본연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되찾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이제 그녀 본연의 모습을 알아보고 자연스럽게 모여들기 시작한다. 하버드에 오면서 새로 사귄 네일숍의 폴렛, 처음 자신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친구들, 조교 에밋. 그리고 심지어 견원지간이었던 워너의 약혼녀 비비안까지. 아니 사실은 엘은 변한 것이 없다. 엘은 처음부터 될 때까지 도전했고, 열심히 했고,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비비안이 엘의 방을 찾아와 칼라헨 교수의 의뢰인 브룩의 비밀을 지키는 것이 참 멋졌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참 아름다운 장면이다. 비비안은 칼라한 교수가 워너에게는 커피 심부름을 시키지 않으면서 자신에게는 그런 잡일을 시킨다고 말한다. 여학생인 우리들은 잡일을 시키면 해야 처지지만 그래도 엘은 멋있게 의리를 지켜냈다. 그런 엘이 여학생들의 자부심을 지켜준 것처럼 비비안은 느끼는 것만 같다.
사실 여기까지 영화를 보면 엘은 사람의 사회적 계급이나 신분, 성 정체성, 성격의 다양성,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핵인싸에 정말 마음씨 착하고 모난 곳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심지어 그렇게 학교 생활이 힘든데 알아주지도 않는 고향 친구들을 그러려니 하는 걸 보면 보통내기가 아닌 듯싶다. (벤츠녀다!) LA에서 모두가 그녀를 사랑했듯 그녀는 이곳에서도 자신이 가진 장점과 매력 뿐만 아니라 노력하고 주변 사람에게 신의를 지키는 모습으로 모두를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그랬던 그녀가 자신의 외모 때문에 인턴십에 뽑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상처 받고 마음이 찢어졌을까. 이때 엘의 마음은 사실 어릴 적엔 다 알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그저 칼라헨에게 성추행을 당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그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는 여자가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내가 머리 색, 외모, 성별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은 그 마음 말이다. 누군가에겐 지극히 당연한 사실인데 누군가에게는 어이없게도 당연하게 해당 되지 않는. 머리 색으로 머리가 나쁠 것이고 이런 공부를 해서는 안되고 이런 직업을 가져서도 안되고 이래서는 안 된다는 편견에 맞서야 했던 엘에게는 그 순간이 모두 지긋지긋해지지 않았을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할리우드(그리고 워킹타이틀)에서는 여성 타깃의 로맨틱 코미디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졌다. 굳이 산업 분석이나 영화사적으로 가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왜냐? 그 당시 할리우드의 타깃이 곧 우리 자매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자매들은 취향과 성격은 달라도 모두 할리우드산 로맨틱 코미디 앞에서는 한 마음이 되어 뭉쳤다. 일단 당시 할리우드산 로코는 스타 캐스팅에 하이콘셉트로 죄다 봐야만 하는 후킹 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고, 팬시한 로케이션, 패션,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는 로맨틱하고 스케일이 다른 볼거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자매들은 늘 핑크빛 라벨이 일색인 비디오를 모조리 찾아봤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점점 취향이 나타났다. 큰 언니는 직업이 있는 남녀를 주인공으로 한 팬시한 로코를 좋아했고, 둘째 언니는 오히려 로코보단 멜로에 가까운 영화를 좋아했다. 나는 아무래도 나이가 가장 어리다 보니 하이틴 로코를 제일 좋아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취향과 상관없이 사랑하고 계속 보게 되는 영화가 바로 <금발이 너무해>였다.
이젠 영화 기획 전문서 <Save the cat>에도 언급되는 명작 <Legally Blonde>! 원제도, 번안 제목도 완벽한 이 영화는 기획적으로는 금발의 LA 홈커밍 퀸이 하버드 법대에서 별종이 되어버리는 신분 뒤집기의 재미도 있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세 자매가 이 영화를 사랑한 이유는 그 저변에 깔려있는 긍정적이고 해방적인 메시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비록 엘이 처음에는 방황하지만 결국 자신 만의 매력을 잃지 않고 무기로 삼아 사람들과 함께 나아간다는 점이다. 어쩌면 엘을 표현하는 모든 요소들이 바보 같아 보이고 골빈 여자들의 전유물로 비칠 수도 있겠다. 여성클럽의 회장(소로리티라고 부른다), 홈커밍 파티의 퀸, 우울할 땐 네일숍, 일 끝나면 화끈한 쇼핑. 이런 설정들을 현재 그대로 한국으로 그대로 가져와도 얼추 비슷하게 비치지 않을까?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영화에서 누군가 비아냥댈 수 있는 요소들이 모두 엘이 가진 능력이자 자산이 된다. 자신의 프라다 구두를 알아보는 증인이 게이임을 알아보고 위증을 확신하고, 미용 지식들이 살인범을 밝히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관객들마저 하찮다고 생각한 능력들의 도움을 받아 엘은 의뢰인을 변호하는 데 성공한다.
앞서 설명했듯 엘의 장점은 편견 없고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성격이다. 네일숍의 폴렛이 반려견을 찾는 것은 물론 그녀가 사랑을 이루도록 도와주었고, 자신을 첫 수업 때 쫓아내며 면박을 주었던 교수님의 애제자가 되었으며, 비비안을 포함 시니컬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던 하버드의 친구들과 절친이 되었다. 그들 모두를 자신의 특기인 친화력과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따스함으로 끌어안는다. 어쩌면 관객조차 처음에는 가식이거나 하찮다고 생각한 엘의 사교성이 사실은 그녀의 진면목이었으며 그 장점은 변호사로서 '브룩'의 사건에서도 판명되었듯 직종 특성상 너무도 소중한 능력이었다. 그녀는 하버드 법대에 어울리지 않는 덤 블론드가 아니라 합법적 블론드, 즉 천직 변호사였던 것이다. 정말 금발이 너무했다.
사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만났던 피디님이 내게 항상 해주시던 말씀이 있다. 어딜 가서든, 당당하라는 말이었다. 당당하라는 말. 자체로 당당하라는 뜻이겠지만, 그렇게 되게끔 내가 당당할 수 있게끔 되라는 말이기도 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에 나 자신과 신념을 내려놓았을 때 나는 내가 당당해질 수 없음을 느꼈다. 무엇이 당당한 것인지, 나 다움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묵직한 것인지, 나는 영화가 나온 지 20년이 지난 후에 그 무게에 대해서 알게 된다. 엘 우즈도 알았을까? 리걸리 블론드를 쓴 작가도, 제작진도 알았을까? 이 영화는 아직까지도 내게 유효하다. 영화는 <빌리 엘리어트>와 함께 청소년기를 함께 했던 영화이자, 나만의 명작 영화이고, 아마도 나만의 방송국이 있다면 주말의 명화 시간에 <벤허>급으로 틀고 싶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 이런 영화. 코미디고 어쩌면 킬링타임 용인 영화인데도 일단 엘이 저렇게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한 것 같아서, 그리고 결국엔 해내서 그 성공의 감각을 대신 느끼는 것이 너무 벅차기 때문인 것 같다.
관습 안에서, 그들 만의 리그 안에서가 아니라 아웃사이더였던 엘이 멍청한 금발이라며 자신을 가둔 세상의 편견을 보란 듯이 깨부수고 자기 스스로 있을 세상을 만들었다.
첫 강의 때 교수님은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셨죠
법은 열정을 배제한 이성. 그 철학자에겐 죄송하지만 하버드 생활을 되돌아보면 열정이란 법과 인생에 이어서 중요한 요소더군요. 과감한 신념과 강한 자신감이 있어야만 세상에 나갈 수 있는 거죠. 첫인상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사람을 신뢰해야 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거죠. 졸업을 축하합니다. 우리는 해냈어!
- 엘 우즈의 하버드 졸업 축사
그래. 우리는 좀 '뭐 어려운가?' 하며 스스로를 믿고 나답게 나아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