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영은 이 단편들을 통해 신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살며시 보여준다
나에게 누가 이 단편은 어떤 소설인가를 질문한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인류의 자리를 로봇이 차지한 세상, 로봇을 통해 '신'이라는 존재에 의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인류 멸망 이후 10만 년이 흘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영하 80도의 혹한기로 접어든 지구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로봇뿐이다. 간빙기 이후 빙하기가 시작된 것처럼 상상하기도 싫은 추위지만 그들은 잘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로봇'이었다. 로봇이 인간처럼 살아가지만 인간이 존재할 때와 다른 것은 무기물이 생명체로 인식된다는 사실이었다. 김보영 작가 <종의 기원>의 배경은 아주 멋진 배경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종의 기원>의 속편 격인 <종의 기원 ; 그 후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는 로봇들 사이에서 진화론이 당연시 간주되고 창조론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취급받는 시대 이후 유기 생물을 발견하고 이를 새롭게 키워내면서부터의 이야기다. 로봇들은 자신들의 성능이 조금씩 개선되는 것을 바탕으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진화한다'라는 학설을 신봉한다. 어느 날 유기 생명체를 다시 살려내고 로봇 자신을 닮은 인간을 바라보게 된다. <종의 기원 ; 그 후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는 이런 부분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질 것인가를 질문한다.
신은 우리를 사랑하시는가? 경전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고뇌하게 된다. 신은 이중인격자인가? 아니, 다중인격자인가? 캐릭터의 성격을 잡지 못한 소설처럼, 경전에 기록된 신의 행동에는 전혀 일관성이 없다.
이 문장은 로봇이 자신들을 만들어낸 신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이다. 무엇이 보이는가? 이 질문은 '신'을 쉽사리 믿지 않는 사람들이 종종 던지는 질문이 아닐는지?
신은 우리를 사랑하시는가, 아니면 두려워하시는가, 자비로우신가, 엄하신가, 우리는 신의 후예인가, 아니면 노예인가, 우리는 신의 걸작품인가, 아니면 실패작인가, 우리의 운명은 신의 뜻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의 선택인가, 우리의 인생은 모두 신이 프로그램하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자유의지인가, 신은 살아 계신가, 아니면 죽었는가?
이 질문은 어떠한가? <종의 기원 ; 그 후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에서는 이런 질문들을 로봇이 고민한다. 그를 만든 신과 로봇과의 관계를 궁금해한다. 자유의지를 포함해서 신은 로봇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들은 너무나 궁금한 것이다. 김보영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신'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잘못된 관념으로 '신'을 상상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과감한 질문들을 에둘러 던진다.
아니, 우리에게 영혼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고 하늘에 올라갔을 때, 이 가엾은 영혼을 보듬어 주시기는 하는 것인가? 신께서 우리를 지켜보고는 계신 것일까? 이런 의문조차 신께서 프로그램하신 것인가?
절절하다. 자신의 창조주에 대한 질문들과 그들의 보살핌이란 것이 과연 있을까에 대한 로봇의 처절한 물음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장들을 통해 김보영 작가는 역설적으로 로봇의 신은 인류이지만 인류의 신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묘한 여운을 던진다.
로봇으로 이뤄진 세상, 어쩌면 인류를 가장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인류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항상 가지고 살았다. 그 인류는 자신을 닮은 '로봇'을 만들고 이후 급변한 환경으로 인해 멸종하게 된다. 10만 년이 흘렀다. 이렇게 존재하게 된 로봇들은 자신들이 진화되어 왔는지 창조된 것인지 근원에 대한 궁금증이 계속된다. 찰스 다윈 <종의 기원>이 출시되었을 때 진화론은 '신'을 믿는 집단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것이 빗대어 이 책에서는 오히려 로봇들의 창조론이 진화론을 믿는 집단으로부터 무시당한다. 이런 비유가 책 곳곳에 널리 퍼져있다. 이 책은 로봇의 관점으로 바라본 인간이 어떤 모순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보영 작가는 우리가 가진 '신'이라는 관념에 통렬한 비판을 시도한 것이리라.
김보영 작가의 <종의 기원>과 <종의 기원 ; 그 후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는 곁에 두고 종종 읽는 단편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나 지적 유희를 만족시키면서 '신'에 대한 통렬하게 카운트 펀치를 날리기에 더욱 즐겨 읽는다. 국내 SF 중에서 괜찮은 것이 없다고 투덜 되는 사람은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 두 개의 단편은 외국의 유명 SF작가들을 넘어섰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