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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th Point Mar 01. 2016

지금 이 순간 또 하나의 졸작을 만나다

반전을 잘못 사용한 가장 최근의 사례, 기욤 뮈소의 <지금 이 순간>


반전이라고 다 같은 반전이 아니다

반전을 사용하려면 글 중간에 가느다란 힌트라도 있어야 한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 가서 보물 찾기를 해본 적이 있는가? 보물 찾기의 성공 여부는 소풍이 끝나기 전 모든 보물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땅을 파서 숨기거나 아예 다른 장소에 숨기면 애초에 보물 찾기가 성립이 안된다는 말이다. 소설 역시 마찬가지이다. 소설의 맥락 내에서 반전이 허락된다는 것이다. 스토리 전개상에서 어떠한 힌트도 없이 마지막 장에 가서 '이거 사실 다 꿈이었어. 어떤 소녀의 한낮의 백일몽이야.'라고 말한다면 작가와 그 소설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딱 그런 반전을 사용한 소설이다. 소설 내에서 그 어떤 힌트도 존재하지 않는다. 갑자기 이 이야기 자체가 '소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욤 뮈소는 시간을 사랑하는 작가다

특히, 기욤 뮈소는 소설의 다양한 장치 중에서 '시간'을 사랑한다. 그가 시간을 활용해 쓴 대표적인 소설로 <내일>과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가 있다. <내일>은 타임슬립 장르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지만 노트북을 매개로 서로 다른 시간이 연결되기에 이 역시 타임슬립 작품 이리라.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는 곧 국내에서  영화화될 예정이다. TvN의 <시그널>이 <나인 - 9개의 향, 9번의 시간여행>을 뛰어넘으며 타임슬립을 활용해 시청자를 화면 앞에 묶어두고 있는 이 시점. 기욤 뮈소의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는 국내에 다시 한번 타임슬립 열풍을 몰고 올 지도 모른다. 위에 언급한 두 작품 모두 시간을 활용해 소설의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지금 이 순간>은 하얗게 타버린 숯덩이, 그 숯덩이 한가운데 우뚝 솟은 '등대'

기욤 뮈소의 글들이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듯한 느낌은 비단 나에게만 전해져 오는 것은 아니다. 기욤 뮈소의 글은 정점을 희미한 불꽃을 태우고 있다. 그 불꽃이 너무나 미약하기에 이번 소설에서는 타임슬립으로 부족해 반전 트릭을 덧붙였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만약 그가 타임슬립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고 '등대'의 비밀을 풀어내는 과정을 좀 더 논리적으로 전개했다면 이 소설은 최소한 중타은 치는 그런 소설이었다. 그 '등대'의 비밀이 아주 개연성이 높은 것이라면 그래서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필연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더욱더 이 글의 가치는 높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 스스로도 '등대'의 존재를 가장 미스터리 하게 그리면서 정작 주인공이 그 '등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것을 그리지 않았다. 아니면 슬쩍 '등대'에 대한 개연성 가득한 그 어떤 이야기라도 보여주었어야 했다. 스스로 판을 벌리고 '등대'라는 판을 수습할 수 없기에 그는 이 모든 게 '나의 소설 이야'라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이쯤 되면 이런 소설류에 항상 따라붙는 비판이 나와야 된다. 우리는 '파리의 연인'의 일장춘몽을 기억하지 않는가? 그냥 한낮 꿈이었다는 스토리 말이다. 한낮 꿈이건 소설가의 작품 내용이건 중간에 아무런 힌트 없이 제일 마지막에 일장춘몽이었다라고 하게 되는 소설, 그게 바로 <지금 이 순간>인 것이다.


이런 베스트셀러를 바로 졸작이라 부른다

바닷가의 한 등대, 그 등대에 의문의 방이 하나 존재한다. 이곳에 들어가게 되면 일 년의 하루만 세상 사람과 공존할 수 있다. 다음날 눈 뜨면 낯선 장소에서 1년이 훌쩍 지난 후 깨어나게 된다. 이러한 생활을 24년 해야 하는 것이다. 즉, 세상 사람들에게 24년이 나에겐 24일이 되니까 말이다. <24방위 바람의 등대>라고 불리는 이곳에 들어간 사람은 주인공인 '아서 코스텔로'를 포함해 총 3명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스토리 상 가장 중요한 '등대'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줄 생각이 없다. 이 정도의 스토리면 감동적인 사랑이야기건 살아가는 순간순간의 의미건 무엇이라도 나와줘야 하는데 말이다. 타임슬립으로 잘 쌓아놓은 돌이 후반부에 한 번에 무너져 버린다. 소설과 드라마에서 가장 나쁜 게 다양하게 늘어놓고 그냥 덮는 것이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마감하면서 말이다. 이 책은 이 모든 게 '나의 소설이야' 라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감히 단언하건대 이 정도의 책을 읽고 책 리뷰에 칭찬 일색이면 그런 리뷰를 쓰는 사람은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런 베스트셀러를 졸작이라고 부른다.


기욤 뮈소의 뛰어난 책들과 졸작들

<내일>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센트럴 파크> <천사의 부름> 등은 크리스마스 시즌 즈음해서 다시 읽어야 할 책이다. 따스한 차와 함께 이미 기울어진 햇살을 받으며 책 위로 늘어지는 마지막 노을의  한 줌 빛을 움켜쥐며 가슴으로 읽어야 한다. 하지만 기욤 뮈소의 책은 여기 까지다. 총 12권이 국내에 소개되었지만, 6권 정도를 제외하고는 차라리 번역되어 들어오지 않는 것이 더욱 좋았을 것이다. 기욤 뮈소를 위해서 번역이 안 되는 편이 좋았을 책으로 <7년 후>나 <그 후에>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택하고 싶다. 지루하고 억지스러운 설정은 소설을 읽고 난 독자에게 큰 생채기를 남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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