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내 이야기는 아니다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스스로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1년 4개월만 살 수 있다면과 1년 4개월만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면의 어감은 확실히 차이 난다. 둘 모두 나와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다.
우선 1년 4개월만 살 수 있다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시간을 한정하는 것은 좀 더 삶을 가열차게 살거나 아니면 바쁨을 버리고 여유를 가지면서 주변을 둘러보게 만든다. 만약 시한부의 삶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기간이 1달, 2달, 3달이 아닌 16개월이라는 좀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말이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 여행을 다닐 것인가? 아니면 비슷한 일상을 살아갈 것인가?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상상이다.
그렇다면 1년 4개월만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면은 어떠한가? 치열한 삶에서 자신에게 잠시 주어진 휴식이라고 치자. 결혼한 사람이라면 잠시 가족과 벗어나서 오롯이 자신만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고 치자는 말이다.
뜨거운 프라이팬을 간신히 벗어났다 싶어 둘러보면 결국 뛰어든 곳은 불 속일 뿐이다.
앰버연대기 3_유니콘의 의미에서 발췌
로저 젤나즈니
'로저 젤나즈니가 쓴 앰버연대기 3'에 보면 뜨거운 프라이팬을 벗어났더니 그곳이 바로 불 속이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요즘 우리에게 다가오는 삶의 모습이다. 이러한 삶의 한 가운데에서 1년 4개월이 당신에게 자유롭게 주어진다면 어떠할까? 1년 동안 홀로 전 세계 일주를 할까? 리만가설이나 푸앙카레 추측을 완벽하게 이해해 볼까? 몇 개 국어를 마스터해볼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길을 걸어가다가 키득키득 웃었다. 16개월이 나에게 자유스럽게 주어진다는 상상만으로도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의무가 하나도 없어지고 잠시 회사도 가정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러한 시간이 주어졌다고 떠올리니 길거리에서 미친놈처럼 춤도 추고 싶었다. 왜 갑자기 16이라는 숫자였을까? 1,2,3개월은 너무 짧다는 생각이 스쳤고 1년 역시 좀 한정적이라는 기간이라는 생각이었다. 18개월이라고 하기엔 좀 너무 부담스럽고, 그래서 16개월이 된 것이다. 뜨거운 프라이팬 위에서 잠시 16개월의 자유스러운 상상만으로 내가 두 발 딛고 있는 이곳은 근사한 무대가 되었다.
그날 밤 내가 있는 곳이 달궈진 프라이팬이고 그 옆이 불 속이었지만 상상은 나에게 멋진 미소를 제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