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억 년 전에 잃어버린 아가미를 호흡 충동으로 떠올린다
수영을 10년 넘게 해오면서 체력이 점점 저하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매일의 몸 상태는 큰 차이가 없지만 1달, 1분기를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나게 된다. 20대 중반 아무런 주저 없이 팔을 휘저으며 달렸던 수영장일진대 팔젓기 한번, 발차기 한 번이 격세지감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20대에 세웠던 자유형 최고 기록도 넘어서 보고 잠영 기록도 새로이 만들어보는 것이 바로 그 도전이다. 50M 자유형을 30초에 달렸던 그 시기, 잠영 50M를 맘껏 했던 그 시기는 이제 술자리에서 꺼내놓는 추억이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로 변화시키고 싶었다.
가능할 줄 알았다. 3개월 정도 체력을 보충하고 뜀박질도 하면서 호흡을 가다듬으면 자유형의 전성기였던 그 시절 기록에 근접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다. 자유형 50M를 호흡 없이 다녀와도 별로 숨이 차지 않던 그 시절과 25M의 자유형만으로도 호흡이 턱에 차오르는 40대 진입을 앞둔 아저씨는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다. 내가 마음먹으면 신데렐라에 나오는 요정 할머니처럼 무엇이든 뚝딱 이루어 낼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 줄 알았던 것. 하지만, 자유형 말고 잠영은 가능하지 않을까? 체력을 많이 소비하지 않으면서 최소의 에너지 소비로 50M를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바로 한계상황에 부딪혔다. 25M를 잠영으로 가고 나니 숨이 미친 듯이 차는 것이었다. 호흡이 너무나 그리운 그 현상이 40대를 바라보는 나에게 이렇게 가까이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수영장에서 호흡만이 살길이며 호흡이 지상과제인 것처럼 호흡을 찾는 사람이 되어 버린 나. 이렇게 요정 할머니는 사라지는 것일까?
4억 년이 흐르는 동안 육지로 올라온 동물들은 아가미를 버리고 산소호흡을 택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산소를 취하고 이산화탄소를 버리게 된 우리들. 수영이라는 운동은 어쩌면 그 먼 옛날 자유로이 바다를 떠돌든 그 기억이 유전자가 각인되어 있기에 하는 운동 이리라. 너무나 흘러버린 시간 덕에 우리는 산소 없이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더군다나 산소가 부족하지도 않은데 호흡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버릇을 호모 사피엔스는 진화과정에서 체득하게 된다. 즉,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진 것을 산소가 모자라다고 착각하며 인체는 적응을 했던 것이다.
공기 중에 산소 농도는 21퍼센트. 육지 생물들은 호흡을 통해 혈액 내에 산소를 공급하게 된다. 호흡에 들숨과 날숨이 있는데 들숨을 통해 공기 중의 산소, 즉 100개의 공기 중 21개의 산소를 폐 속으로 집어넣게 되고 날숨을 통해 다시 100개의 공기 중 16개의 산소를 내놓는다. 흔히 '몸에 산소가 모자라'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사실은 산소보다 이산화탄소가 증가해서 느끼는 감각이다. 이산화탄소가 몸속에 쌓여가면서 혈중농도는 높아지고 뇌의 호흡중추는 호흡하라고 명령하게 되는 것이다.
잠영을 통해 이전의 나를 이겨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호흡 충동이라는 현상을 바라보았다. 잠영을 하게 되면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호흡을 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솟구치게 된다. 내 몸속에 산소가 모자라서 생기는 현상이 아니라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아져서 생기는 현상. 즉, 심리적인 압박만 넘긴다면 호흡 충동을 벗어나서 50M 잠영이 가능한 것이다.
지루한 2개월의 사투 끝에 드디어 50M 잠영을 성공하게 된다. 수많은 실패를 넘어선 성공이라 미친 듯이 기뻤다. 물속에서 소리 지르고 물을 첨벙첨벙하면서 말이다. 10년을 훌쩍 넘어서 내가 달성한 기록에 다시 터치 다운한 것이니 잠시 호흡 충동을 넘어선 그 상황에 미쳤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다시 75M 잠영 도전에 들어가려 한다. 물론 쉽지 않다. 당연히 그 시절보다 체력적으로 뒤쳐지기에 어렵지만 아직은 과거를 먹고 살 나이는 아니기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 도전과 함께 내가 10-20대에 기록했던 다양한 기록들에 다시금 도전하기 시작했다. 운동부터 공부 그리고 책 읽기까지 정말 내가 이런 분야까지 관심을 두었나 할 정도로 다양한 분야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고 있다. 70대도 아닌 이제 30대 후반이 술자리에서 '예전에 내가'라는 말은 더 이상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없기에 말이다. 성공과는 거리가 먼 나의 삶이지만 여전히 한걸음 한 걸음씩 걸어나가고 싶다. 큰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지만, 아직은 주어진 하루하루를 처리해 나가는 게 나의 살아가는 방식이다. 일상으로 빠져들기와 일상 속에서 나를 넘어서기가 최근 나의 관심사며 살아가는 목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