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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th Point Apr 16. 2019

40대, 수영실력이 더 늘 수 있는 나이인가?

아저씨, 수영에서 전성기는 몇 년간 유지되는가를 고찰하다



20대 후반, 이 시절에는 ‘누군가에게 수영을 질 자신이 없다.’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수영을 잘했다. 수영을 잘했다는 자랑은 수영장 연수반 헤더를 독차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된다. 혹시 옛 추억에 취해서 과거의 운동 실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맞는 말이다. 그럴 수도 있다. 우물 속에만 살아온 하늘 밖의 하늘을 모른 저만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시간을 쏟을 때 느낄 수 있는 그 자신감이 존재했다. 좀 과장해서 오리발을 끼고 접영을 할 때 마치 참치처럼 날아다닌 적도 있었으니까!



아직 살아있네. 작년 해외 휴양지에서 촬영된 모습니다.



수영장 ‘헤더’란 수영 레인에서 제일 앞장서서 ‘수영인’들을 이끄는 존재다. 한 레인은 10명에서 15명 남짓으로 구성된다. 수영장에는 그러한 레인들이 보통 4개에서 8개 정도 있다. 물론 더 많은 레인을 보유한 수영장도 많다. 한 레인에서 헤더가 되면 곧 그다음 레인으로 올라가곤 한다. 점점 상위반으로 이동하며 꼬리가 되었다가 중간 정도에서 수영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연수반 레인을 이끄는 헤더가 된다.



또한, 각 시간대에는 각각의 연수반 헤더가 존재한다. 각 시간대별로 각 레인별로 헤더들이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수영을 잘하는 사람은 단연 새벽반 또는 저녁반의 연수반 헤더다. 새벽반이나 저녁반에 수영하는 사람들은 꽤 오랫동안 수영을 한 사람들이다. 일반적으로 새벽 연수반 헤더가 그 수영장에 다니는 수영인들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을 나온다는 것 자체가 그 운동을 즐길 수 있고 잘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저녁 7시반이나 8시반 또는 9시반에 초 절정 고수가 있기도 하다. 나는 새벽 시간대에 제일 수영을 잘하는 연수반 ‘헤더’를 3년 넘게 한 적이 있다. 이 시절 나는 새벽 연수반 헤더를 하면서 저녁 연수반 헤더를 하기도 했다. 사회 초년병 시절 사람 관계보다 나와의 약속을 더 챙기던 시절 이야기다.


술을 마신 다음날에도 헤더는 항상 타인보다 빨라야 했다. 그리고 지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었다. 격렬한 호흡을 토해내지만 남들이 보면 평온한 호흡이어야 한다. 마치 명상을 하고 있는 듯한 호흡을 보여주면서 미친 듯이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켜야 하는 것이다. 헤더가 지치면 수영인 전부가 지치게 된다. 절대 헤더는 약해지면 안 되는 존재다. 물론 쉬엄쉬엄 하는 헤더도 많다. 하지만, 2-3명 정도가 헤더를 경쟁하는 연수반이 존재한다면 그러한 연수반은 불꽃이 튀게 된다.


그러한 시절에 단거리 속력을 높이는 시간을 0.5초를 줄이는 재미가 있었다. 아 여기서는 속력이다. 일반적인 수영장은 25M이고 이곳을 찍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방식으로 시간을 측정한다. 그러니 벡터량을 측정하는 속도가 아닌 스칼라 양을 측정하는 속도가 맞다. 이러한 속력을 점점 빠르게,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자유형 50M 시간을 어디까지 단축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다.



여전히 살아있다. 하지만 서쪽하늘에 남아있는 노을일지도 모른다.




그 시절, 40대 아저씨들이 읊조리는 말들.

“넌 오르막을 걷고 있구나. 우린 내리막인데. 우린 유지만 해도 너무 감사해!”


이 말의 의미를 몰랐다. 아니 애써 외면했다.


피상적으로 이해했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넌 왜 힘으로만 수영을 하니”라는 물음에,

아니 “힘이 있으니까 힘으로 하죠”라는 좀 어이없는 답변을 하던 시절이었다.


1시간 수영을 마치고 나서도 호흡이 힘들었을 뿐 여전히 30분 이상 수영을 할 수 있는 힘은 남아 있었다.


30대 후반, 드디어 호흡이 모자라기 시작했다. 더 이상 시간을 좁히기 위한 노력은 그만두었다.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쌓아놓은 모래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당시에 적었던 [호흡 충동, 그리고 30대 후반]이라는 글이 있다. 이때만 하더라도 여전히 자신감이 충만했다. 자신감이 남아있던 이야기를 읽어보시려면 아래 글부터 읽어도 좋다.



https://brunch.co.kr/@jamding/145




40대로 접어들었다. 운동시간도 줄어들었지만 체력 저하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체력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하루하루 실감하고 있다. 체력 유지가 목표인 상황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체력이 저하되는 속도를 얼마나 천천히 하는가에 초첨을 맞추기 시작했다. 물속에 들어가자마자 호흡은 다급해지고 마음은 급박해진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불현듯 이렇게 되었다. 멈춰버린 근육들. 지나간 시간들. 좀 더 노력했어야 했는데. 적어도 50대 되어서야 나에게도 이런 시간이 다가올 줄 알았다. 이제야 15년 전의 그 40대 아저씨들의 푸념들이 귓가에 맴돈다.


“좀 더 노력해봐. 그러면 수영이 힘들어지는 시점을 더 늦출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쉽지는 않아. 사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거든”



첫째 딸도 둘째 딸도 수영을 배우고 있다. 첫째 딸과 수영장을 갈 때마다 첫째 딸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곤 한다. 아빠가 아무리 나이 들어도 너에게는 지지 않을 거라고. 아버지란 무릇 큰 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넘어설 수 없는 그래서 항상 한없이 높아 보이게 만드는, 한계를 높게 설정할 수 있게 만드는 존재.

하지만, 이제는 수영하게 된다면 누구에게 질 수 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곤 한다.


‘나이 드는 것이란 하나씩 내려놓는 과정”이라는 누군가의 유명한 말이 귓가에 맴도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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