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대신 와인으로 나라를 여행하다
전 세계 모든 나라를 방문하여 그 나라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쉽지 않다. 직접 여행을 떠나서 그 나라를 둘러보기도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는 글과 영상을 접하게 된다. 만약, 그 나라에서 와인이 생산되다면 그 나라를 여행하지도 않고 온전히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와인을 생산하는 나라를 방문하기 전에 그 나라의 와인을 지역별로 즐긴다. 그러면서 미리 경험해 보는 것이다. 그 나라의 분위기, 그 지역의 역사 등을 말이다.
잠시 상상을 한다. 뉴질랜드에 와인만을 온전히 즐기러 가는 상상. 비록 뉴질랜드를 가보지 못하였지만 5년 내에 갈 생각이다. 서울 하늘 아래에서 뉴질랜드의 다양한 와인을 테이스팅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가을이 완연한 서울의 하늘 아래에서 뉴질랜드의 와인너리들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뉴질랜드는 남서태평양의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섬나라다. 북섬과 남섬을 주축으로 다양한 섬으로 이루어진 뉴질랜드를 항상 마음속에서 그리고 있었다. 또한 관심이 많은 나라였기에 와인을 생산하는 몇몇 지역 또한 공부하여 알고 있었다. 북섬에는 오클랜드(AUCKLAND)나 기스본(GISBORNE)이 있으며 남섬에는 말보로(MARLBOROUGH) 와이파라밸리(WAIPARA VALLEY) 등에 관심이 많았다.
이번 뉴질랜드 와인 페어는 뉴질랜드 대사관에서 주최했으며 100여 종이 넘는 와인을 테이스팅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중에서 테이스팅 하면서 좋았던 몇몇 와인을 소개하려 한다.
프레이밍햄 와인(Framingham Wines)은 뉴질랜드 남섬 말보로(MARLBOROUGH) 지역에 속한 와이라우 밸리에 위치한 부티크 와이너리다. 쇼비뇽 블랑, 리슬링, 피노누아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3가지 모두 테이스팅 하였다. 프레이밍햄(Framingham) 와이너리의 와인을 한국에서 정식으로 수입하지는 않고 있지만 다양한 루트로 이전에 접해보았다. 이 와이너리는 리슬링과 디저트 와인이 유명하며 그래서인지 계속 리슬링의 경작지역을 확장해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 만나서 물어보려 했으나 나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 리슬링에 대해 자세히 묻지 못한 게 아쉬웠다.
프레이밍햄 클래식 리슬링 와이라우 밸리, 말보로 2013
Framingham Classic Riesling Wairau Valley, Marlborough 2013
다양한 꽃향기가 피어오르며 산도가 적당하다. 한 모금 머금고 눈을 감아본다. 잠시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뉴질랜드 와인 페어인지 뉴질랜드 말보로 지역의 와이라우 밸리인지 헷갈린다. 다시 한 모금을 목구멍으로 흘려보낸다. 상쾌한 단 맛과 산도가 기분을 좋게 만들었으며 코 끝을 스치는 꽃들의 향연은 잠시 시간을 잊게 만든다. 이런 와인은 조용한 곳에서 온전히 한 병을 다 마셔봐야 그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있을 듯하다. 아 그리고 이 클래식 리슬링은 2000년인가 2001년인가 하여간 2000년대 초반에 뉴질랜드에서 최고의 리슬링으로 손꼽혔다. 뉴질랜드 하면 쇼비뇽 블랑의 공식을 깨 줄 만한 리슬링 와인이다.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그레이스톤 와인(GREYSTONE WINES)은 뉴질랜드 남섬에 위치한 크라이스트처치 북쪽 지역인 와이파라 밸리(WAIPARA VALLEY)에 세워져 있다. 리슬링, 피노 그리, 쇼비뇽 블랑 등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중에서 소매가 25-28 뉴질랜드달러에 팔리는 그레이스톤 리슬링 와이파라 밸리 2013 이 마음에 들었다. 피노 그리도 좋았지만 두 개를 같이 비교했을 때 역시 리슬링이었다. 뉴질랜드에서 한국돈으로 2만 원에 팔린다는 이 와인 역시 한국에 공식 수입처가 없다. 이 정도 리슬링을 국내 소매가 3만 원 언더로 살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 간다.
그레이스톤 리슬링 와이파라 밸리 2013
GRAYSTONE RIESLING WAIPARA VALLEY 2013
연노랑색을 띠고 있으며, 과하지 않은 꽃향기와 밸런스를 아주 잘 갖춘 산도로 인해 테이스팅을 하여야겠다는 마음을 버리게 만든 와인. 세 잔이나 청해서 마셨으며, 잔 향이 코 끝을 간지럽히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던 와인. 리슬링의 모습은 완연히 보여주면서도 포도 자체의 느낌을 보여준 와인이었다.
헌터스 와인(HUNTER'S WINES)은 뉴질랜드 남섬 말보로 지역의 와이너리다. 말보로 지역에서는 꽤 유명한 와이너리이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그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 날 쇼비뇽 블랑, 샤르도네, 리슬링, 게부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를 시음했다.
헌터스 쇼비뇽 블랑 말로보 2014
Hunter's Sauvignon Blanc Marlborough 2014
잘 익은 과실 향이 코 끝에 다가온다. 감귤류의 향이 훅 치고 나오며 오렌지 껍질을 비틀었을 때 뿜어져 나오는 그 향도 스쳐지나 간다. 잔을 돌리고 깊게 숨을 쉰다. 한 모금을 입속에 넣고 목으로 넘기면서 향을 맡는다. 과하지 않은 상쾌한 풀향이 감귤류의 향과 엮이면서 상쾌한 청량감을 준다. 뉴질랜드 쇼비뇽 블랑이 선호되는 이유가 산도의 밸런스가 잘 유지되기 때문인데 이 와인 역시 뛰어난 밸런스를 보여준다.
카후랑기 에스테이트(KAHURANGI ESTATE)는 뉴질랜드 남섬에 위치해 있다. 사실 국내에 수입되지 않은 뉴질랜드 와이너리들을 꽤 많이 알고 있었는데 이번 행사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와이너리다. (집에 와서 이전 와인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니 카후랑기 에스테이트의 몇몇 와인들은 한국에 수입이 되었었다. 심지어 마셔보기까지 했다. 이전에 적어놓은 Kahurangi Gewurztraminer Nelson의 시음 노트까지 버젓이 있었다. 수입되다가 다시 수입이 안된 것인가? 지난번 수입사는 백라벨에 한독와인이라고 적혀 있다.) 리슬링, 게부르츠트라미너, 피노누아, 리슬링, 피노 그리를 시음했다.
카후랑기 게부르츠트라미너 넬슨 2013
Kahurangi Gewurztraminer Nelson 2013
숨을 깊게 들이쉰다. 향에 취해버린다. 금빛의 와인 빛깔은 나의 눈을 현혹시키며 다시 한 모금을 마시게 만든다. 열대과일과 감귤류의 향들이 마구 정신을 어지럽히는 가운데 시원한 느낌이 목안을 감싼다. 향에 취해버려 맛은 큰 감흥이 없다. 달콤한 꿀 향기도 올라오면서 코가 마비되었다.
(5년도 더 이전에 다른 빈티지의 동일 와인을 마셔보았다. 지난번의 시음기억은 완전히 사라져 있는 상태다.)
약 20개의 와이너리가 참석한 이번 뉴질랜드 와인 페어에서 좋았던 와이너리는 프레이밍햄 와인(Framingham Wines), 그레이스톤 와인(GREYSTONE WINES), 헌터스 와인(HUNTER'S WINES), 에스테이트(KAHURANGI ESTATE)로 총 4곳이었다. 쇼비뇽 블랑으로 너무나 유명한 뉴질랜드의 와이너리인 클라우드베이 와이너리, 킴 크로포드 와이너리, 도그 포인트 와이너리 등은 아쉽게도 이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한국시장에 워낙 알려져 있기에 굳이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창밖으로 펼쳐진 푸른 가을 하늘을 만끽하며 뉴질랜드의 와인들을 접하는 시간은 다음에 예정된 뉴질랜드 여행을 더욱 기다리게 만들었다. 5년 내로 찾아갈 뉴질랜드, 문화와 와인에 대해 더욱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