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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th Point Nov 19. 2015

백인제 가옥, 바라보다

일제강점기 시절 북촌의 대형 한옥, 백인제 가옥

2015년 11월 18일, 일제 강정기 시절의 북촌 한옥의 모습을 보여줄 백인제 가옥이 시민들에게 공개되다.


북촌에서 몇 안 되는 빼어난 한옥으로 불린 백인제 가옥은 겨울날임에도 포근했다. 북촌 가회동에 위치한 백인제는 근대 한옥의 모습을 자연스레 보여준다. 겨울의 초입이었지만 백인제의 뜰은 아직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아늑한 장소다. 지나간 가을을 되새기듯이 조심스레 한 발짝씩  내딛는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백선제의 뜰에는 바람조차 없다.


백인제 사랑채 외부 뜰, 오른쪽 건물이 사랑채다.


조선 시대의 한옥이 아닌 100년 전의 한옥의 모습 


백인제의 일부는 2층으로 이뤄져 있으며, 언뜻 보기에도 복도 형태가 일본식의 그 다다미방에 붙어있는 복도였다. 백인제를 둘러싼 대부분의 외부 미닫이 문들이 유리창으로 사용되어 있는 점이 다채로워 보였다. 1913년 한성은행 전무이던 한상룡이 건립, 이후 국내에서 뛰어났던 의료인 백인제가 소유하다가 흘러 흘러 서울시로 소유권이 이전된 건물. 한눈에도 다양한 사연을 간직한 인근에서 가장 넓은 한옥이었다.



백인제 가옥의 대문간체의 문



건물이 참 재미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사극에서 조선시대 영의정이나 좌의정의 대문을 비추면 보이는 높디높은 대문 간체가 즉시 시선을 잡아끈다. 이 대문 간체만으로도 이 한옥의 주인이 거부였는지를 보여준다. 일반적인 조선 사대부가의 솟을대문 형식을 그대로 차용한 대문 간체 문에는 '백인제 가옥'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저 간판은 언제 저 자리에 매달린 것일까? 이번에 시민들에게 공개하게 되면서 만들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해본다.



이 대문 간체 문을 지나면 다시 한번 좁다란 그리고 긴 공간이 나온다. 그리고 고개를 들면 다시 문과 벽들이 하나 나타나게 된다. 보통 이를 중문 간채라고 하는데 대문 간채와 사잇 공간만으로도 일반적인 한옥의 마당 크기다.


사랑채로 접어들게 되면 확 트인 뜰이 나타난다. 저 사랑채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를 세심히 살폈으리라. 바람도 머물러 갈 듯한 이곳의 뜰은 사랑채 안에서 바라보게 되면 최고의 비경을 보여주리라. 


뜰 끝에서 바라본 백인제 사랑채



남자들만의 공간이던 사랑채를 지나 돌 계단을 하나씩 오른다. 집안에 정자가 나타나다니,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었다. 백인제 가옥 내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이곳의 별당채는 북촌 전체를 아우르는 전망을 보여준다. 순간, 알싸한 술내음이 스쳐 지나가는 듯하다. 이 별당채에서 봄에는 목련 그리고 가을에는 단풍을 바라보며 지인들과 기울였을 술 한잔의 내음 이리라. 목련꽃을 참 좋아라 하는데 이 장소에서 피는 목련을 보러 내년 봄에 다시 찾으리라는 다짐을 하게 만든 장소다.


백인제 별당채


은밀한 속살을 보러 별당채 돌계단을 하나하나 걸어 내려간다. 안주인이 기거하던 곳, 그래서 외부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웠던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또 하나의 뜰이 나타나고 그 중심에 안채가 자리하고 있었다. 안채를 중심으로 말 그대로 건넛방이 있고 다시 반대편에는 시어머니 방이 있었다. 


안방 물림이라는 말과 건넛방은 요즘은 거의 사용치 않는다. 집안의 구조가 아파트화 된 지금은 이러한 단어들이 사용될 곳이 없으니까 말이다. 안채를 중심으로 좌청룡 우백호처럼 며느리와 시어머니를 아우르는 존재로써의 안주인은 지금 시대보다 그 권력이 막대했으리라. 안방 물림이라는 단어도 존재하듯이 안방의 권력을 고스란히 며느리에게 넘겨줄 때 즈음 이 안채의 주인은 겨울날을 향해 내달리는 단풍잎의 그 심정 아니었을까?



백인제 안채와 건넛방 그리고 부엌이 있는 건물로 걸어내려가는 길




사랑채를 한번 더 보러 발걸음을 옮겼다. 확 트인 이곳은 잠시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고요하고 조용하며 을씨년스러우면서도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백인제 밖으로 나서기가 싫어졌다. 잠시 머물러가는 공간의 끝을 잡고 싶은 마음은 지나가는 가을을 멈추게 하는 이곳의 마법 이리라. 눈이 소복이 쌓인 백인제를 상상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봄이라 따스하고 여름이라 시원하고 가을이라 차분하며 겨울이라 정갈하다라는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백인제가 그런 곳이리라. 앞으로 계절의 변화를 이곳에서 느끼고 싶었다. 겨울에 한번, 봄에 한번, 여름에 한번, 가을에  한 번씩 들러 지나가는 계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아쉬워하고 싶었다.


사랑채의 모습



안채뒷마당에서 올려다 본 별당채





암살에서 나온 강인국의 저택이 바로 이 백인제 가옥이다. 그리고 백인제는 백병원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북촌의 한옥 한채, 하나의 공간이지만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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