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뮈소의 타임슬립 이야기, <나인>에게 모티브를 제공한 그 책이다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를 읽고 <나인>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를 읽었다. 모티브를 제공한 책 보다 드라마가 워낙 뛰어나 책의 스토리가 잊혀버렸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읽은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나인>을 본 적이 있는가? 9개의 향을 통해 과거로 가서 현실을 변화시키는 이야기다. 형의 시신에서 발견된 향을 사용해 과거를 바꾸려는 이진욱, 20년 전으로 돌아갔지만 그가 알고 있던 진실이 틀렸음에 혼란스럽다. 이진욱 열풍을 몰고 온 스토리라인이 워낙 탄탄한 드라마. 수많은 타임슬립 영화, 드라마, 책이 있지만 단연 돋보이는 드라마였다. <나인>을 보고 난 후에는 엘리엇은 이진욱으로, 일리나는 조윤희로 감정이입이 되었을 만큼 드라마가 뛰어났다.
"이승에서 가장 이루고 싶은 소원이 무엇이오? 의사선생?"
"꼭,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은 여자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그녀는 30년 전 사고로 죽었어요."
30년 전 사고로 죽은 여자를 찾아 과거로 떠나는 게 이 책의 시작이다. 너무나 사랑했고 사랑스러웠던 그녀를 다시 한번 보는 것, 그것이 60살 의사의 소원이었다. 그는 얻은 알약을 통해서 30살의 본인을 만나고 그녀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는데....
"사람들은 언제나 기회가 있을 거라 믿지만 노력해서 얻으려 하지 않는 한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른다."
3번째 30년 전의 본인을 방문하던 날, 60살의 엘리엇은 일리나를 보았다. 그리고 돌아갈 시간이 다 되었는데, 결국 30년 전의 본인에게 일리나가 곧 사고로 죽게 되는 '사실'을 알려주게 된다.
"내편이 있어. 시간여행자가 나의 분신이라면 그가 바로 내 편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를 다시 올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아 도움을 요청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3번의 방문을 마지막으로 다시 오지 않겠다고 다짐한 30년 후의 엘리엇을 이곳으로 다시금 불러와야 했다. 하나뿐인 일리나를 구하기 위해서 그는 궁리를 하게 된다.
"당신이 내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나더란 말입니다. 내 행동의 결과가 당신 인생에 곧장 영향을 미치게 될 테니까요."
이런 형태로 30년 후의 엘리엇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오늘 밤 당장 다시 오라는 그..
"일리나를 살리기 위해 자네는 어느 정도 각오가 되어있나?"
"무슨 대가든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자네 말에 책임질 수 있겠나? 그런 각오라면 나한테 한 가지 생각이 있긴 하다네."
4번째 알약을 사용해 어쩔 수 없이 다시 30년 전으로 돌아온 그는 엘리엇에게 하나의 제안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삶의 길이 열리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가보지 않은 길보다 가본 길이 좋은 것은 익숙하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이 가본 길을 택하는 이유는 새로운 삶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보통은 새로운 불확실성은 좋지 않은 길로 인도한다.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사의 흐름을 바꾸려 할 때 지불해야 하는 대가라고 생각하게. 솔직히 말해 나로서는 자네가 거절해도 상관없다네. 자, 어서 말해보게. 거절할 텐가, 아니면 세 가지 조건을 받아들일 텐가?"
조건을 받아들인 그.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지는 책을 읽어보는 게 좋다. 그다음 스토리가 정말 재미있으니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매트같은 친구를 사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떤 책에 나온 친구보다 멋진 친구 녀석이었다. 물론 코난 도일이 적은 책에 나오는 의사만 하겠는가만은...
"우리는 두 눈에 붕대를 감고 현재를 통과한다. 시간이 흘러, 붕대가 벗겨지고 과거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될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비로소 살아온 날들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깨닫는다. 밀란 쿤데라"
그렇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지만 현재의 순간순간이 어떻게 짜여서 어떤 모양의 옷감이 될지 모른다. 시간이 지난 후에서 그 한 발자국 한걸음의 모양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발걸음이 내일, 내년의 어떤 모습을 만들어낼지 하루하루 궁금해지는 오늘이다.
"모든 건 운명이다, 운명은 절대 바꿀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길을 건너기 전에 좌우를 살피는 것을 나는 보았다. 스티븐 호킹"
자유의지가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물리학적으로 이에 대한 검토는 몇십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자유의지가 없을지라도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주어진 걸음을 걸어야 한다. 자유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역시 정처 없이 펼쳐진 눈밭을 터벅거리며 걷는 수밖에 없다. 걸음을 멈추고 다시 갈 곳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를 펼친다. 가장 가볍게 머릿속을 비울 수 있는 나만의 마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