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uth Point Dec 21. 2015

30대 후반, 여전히 산타를 기다린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자세, 어느 비정상적인 30대의 이상한 이야기



진짜 산타가 없다는 것은 30년 전에 알아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산타를 기다린다. 전설 속의 그 산타를 말이다.





30년이 넘은 어느 겨울, 나는 산타를 기다렸다.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다. 하늘은 구멍이 난 듯 하얀  눈송이를 하염없이 만들어 내려주었다. 길은 질퍽하였으며, 다 탄 연탄재들이 얼어있는 경사면 길 한쪽을 채우고 있었다. 해가 들지 않는 음지는 여전히 미끄러웠고 그래서 사람들은 다 탄 연탄재를 부수어 빙판 위에 뿌려놓았다.


그 시절, 나는 서울 아닌 지방에 살았다. 시내를 나가야만  천편일률적인 그 캐럴송을 들을 수 있었던 그곳 그 시절에 나는 집에서 산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너무나 산타와 이야기하고 싶었고 루돌프도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30살을 넘긴지는 오래되었고 곧 40대를 바라보는 지금에서도 그 기억들이 너무나 잘 포장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산타를 찾아 헤맨다.


올해 역시 멋진 캐럴송들이 울려 퍼지는 시점이 되었다. 다행히 예전에 듣던 천편일률적인 캐럴이 아닌 다양한 변주의 캐럴들로 귀가 호강한다. 캐럴로 맘이 들떠서 일상을 걸어갈 수가 없게 된 시점에 난 밖으로 나섰다.


일상을 뒤로한 채 산타를 찾아 나선 것이다. 소식을 듣고 찾아간 곳에서 발견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하지만 한국 산타였다. 원래 계획은 옆에서 같이 사진을 찍으려 한 것이었지만 왠지 나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아주 조그만 그 동심이 저 사람은 진짜 산타가 아니야라고 외치고 있었다.





다시 진짜 산타 찾기에 나섰다. 분명 핀란트 산타 재단에서 공인한 산타클로스가 한국을 방문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산타가 워커힐에서 나타났다는 소식을 찾아내어 동심을 채우러 떠났다. 워커힐 쉐라톤에 도착해 핀란드 산타를 하염없이 기다렸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순록과 함께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다. 올해도 캐럴송은 거리를 넘실거린다. 하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진짜 산타클로스를 보지 못해 마음은 허전하다. 집을 장식해놓은 크리스마스 장식만이 산타가 올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버리지 않은 것을 상징한다. 핀란드 재단에서 공인한 산타가 아닌 전설 속의 그 산타를 한 번이라도 보기만을 기다려본다.










아직도 크리스마스가 설렌다. 그 설렘을 주체할 수가 없기에 소품들로 간단히 꾸민다. 제대로 된 트리가 없지만 불빛 나는 조명과 집안을 굴러다니는 와인병 그리고 몇 가지 장식들로 훌륭한 트리가 완성된다. 이렇게 꾸미면서 가슴속으로 기도한다. 진짜 산타를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다고 말이다.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게 된 나이, 이제 진짜 산타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미친놈 취급받는 나이이라도 말이다. 트리를 봐도 설레고 캐럴송만 들어도 기분이 들뜬다. 여전히 철들기엔 멀었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천사의 부름, 크리스마스가 떠오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