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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th Point Jan 07. 2016

<종이 여자> 그리고 세렌디피티

기욤 뮈소가 만들어낸 세렌디피티, 이번에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일지도..


"내게 사랑은  산소 같았다"의 남자와 "다모클레스의 칼이 언제 내 머리 위로  떨어질지 모르는데 내 모든 걸 상대에게 걸 수는 없어."라는 여자가 만났다.


그리고 헤어졌다. 그것이 기욤 뮈소 <종이 여자>의 시작이다. 남자 주인공의 직업은 기욤 뮈소와 동일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킨 작품의 작가였다. 그리고 그의 연인은 아주 이쁘고 지적으로 보이는 피아니스트. 그 둘의 파멸은 작가에게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작가는 파멸의 길을 걸어가는데 언제나 그렇듯 기욤 뮈소의 책에서 등장하는 '멋진 그의 친구들'은 주인공을 나락에서 구하려고 애쓴다.




"이미 변화를 꾀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재결합하기에 너무나 어긋나 버렸을지도 모른다. 소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변화를 시도하기엔 이미 치명적으로 늦어버린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기욤 뮈소는 이 시점에서 하나의 장치를 사용한다. 그가 사용하는 이런 장치들은 항상 책의 중요한 대들보 역할을 하곤 했다. 지금까지 사용하였던 다양한 장치들인 타임슬립, 기억상실, 노트북, 휴대폰, 죽음을 보는 메신저 등이 그러하였다.  <종이 여자>에서는 '주인공이 쓴 베스트셀러 속의 여인'이 그 장치다. 실연의 아픔 속에서 헤매는 주인공 앞에 책 속의 여인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책 속에서 현실세계로 나타난 그녀는 작가와 '이상한' 계약을 맺었다.


이 책의 중반부부터 책 속에서 나온 여자와 잘못 인쇄된 베스트셀러 1권이 주요 줄거리가 된다. 이 '책' 한 권은 아주 다양한 인연을 만들면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게 된다. 마치 우리의 지갑 속의 만 원짜리 지폐처럼 말이다. 책이 다양한 우연을 일으키는 부분에서 갑자기 존 쿠삭이 떠올랐다. 2000년 초반 뉴욕의  크리스마스이브를 상상하게 만든 그 작품, <세렌디피티> 영화가 연상되었던 것이다. 이브날 각자 연인이 있던 남녀 주인공은 애인에게 줄 선물을 고르다가 하나남은 장갑을 동시에 선택하게 된다. 이 인연으로 그들은 맨해튼에서 잊을 수 없는 저녁과 기억을 공유하게 된다. 고서적과 지폐에 연락처를 적어서 새로운 인연을 기대하는 두 사람, 엘리베이터 버튼을 통해 그들의 인연을 시험했던 그들의 스토리가 겹쳐 보였다. 물론 책의 내용보다 <세렌디피티>가 더욱 잔잔하면서도 애잔한 눈빛을 선사하였다.


"그날 오후, 맥아더 파크 빈민가 임대 아파트의 그림자가 멕시코 끝까지 뻗쳐 있었다."


기욤 뮈소의 주인공들이 항상 겪어야 하는 불우했던 과거사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현실과 픽션을 갈라놓고 우리 두 사람의 사랑을 막는 그 철옹성 같은 장벽의 존재에 이가 갈렸다."와 같은 상투적인 표현도 많이 보인다. 기욤 뮈소의 다른 책들을 많이 읽어보았던 독자들에게 이 책은 오히려 지루할 수 있다. 나 역시 중반부의  150페이지가량이 무척 지루했으니 말이다.





"으..... 샤또 라뚜르 1982년도 산인가?"
"사또 마르고 1990년도 산."


이 책을 덮고 나니 하나만 떠오르게 된다. 나는 샤토 마고 90년 빈티지를 마시게 되면 맞출 수 있을까? 샤토 라투르는 어떠할까? 좋은 토양에서 완벽한 기후 조건 속에서 잘못 자란 와인을 맛보는 것처럼 <종이 여자>는 읽는 내내 씁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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