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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th Point Jan 08. 2016

<우수한 유전자> 반전은 이런 것

<멀리 가는 이야기> 김보영의 SF 중단편  



처음 보았을 때는 미녀, 다시 보면 할머니로 보이는 착시 그림을 기억하는가? 미녀만 계속 보이다가 어느 순간 할머니가 보여서 다시 미녀를 보기 어려웠던 그 착시 그림말이다. 김보영의 <우수한 유전자>는 그러한 종류의 중단편이다. 이 소설을 처음 접하고 이런 류의 글을 워낙 좋아해서 계속해서 곱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까지 10번은 훨씬 넘게 읽었던 <우수한 유전자>는 반전이라는 게 이런 것이다를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햇살 좋은 날 모래사장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면 바다가 반짝이는 것이 당연하듯 이 책은 짧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문장 하나하나가 빛나고 있다.




"우리의 눈에 아무리 바보스러워 보이더라도, 그들의 존재 역시 이 사회에 필요하며, 그들의 생활방식 역시 인정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1만명의 사람들과 6천만명의 사람들은 분리되었다. 다른 종으로의 분화가 된 것이다. 이것은 서로의 세계를 다르게 보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시선, 다른 가치관은 무엇이 진실에 가까운지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전기가 나간 현대문명에서 촛불 아래서 흔들리는 그림자들로 실재하는 물질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반전,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할 정도의 반전이다.


<우수한 유전자>를 처음에 읽은 후에 바로 다시 처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책을 '잘 못 읽었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반대편에 서서 글을 읽고 있었기에 다시 처음부터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를 곱씹어야 했다. 즐거운 지적 유희를 바라보는 쾌락은 항상 즐겁다.


아래는 책의 일부다. 책을 읽다 보면 누가 누구를 불행하다고 함부로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어려서부터 조금씩 형성된 가치관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으로 자리매김한다. 그 가치관은 한쪽 방면에서만 바라보는 시선이기에 반대편에서 바라본 시각을 상상할 수가 없다.


그들을 책으로밖에 몰라. 그들이 불행하다고  지레짐작하지 말게. 그건 자네 기준에 서지. 그들은 <행복해>하고 있어. 자네가 그들의 키를 높이려고 애쓴들,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을 걸세. 오히려 자신들을 괴롭힌다고 생각할 거야.

더위와 추위를 견디지 못하므로 늘 같은 기온을 유지하는 건물이 필요. 질병에 취약하므로 모든 종류의 예방접종을 받아야 함. 멀리 이동하기 위해 자동차와 우주선을 타야 함. 물질적인 쾌락에 집착하고 있어 식도락이나 반짝이는 돌 수집에 탐닉. 마음의 눈을 뜨지 못했으므로 작은 물건을 보려면 현미경을, 먼 것을 보려면 망원경을 써야 한다. 마음 위 귀가 열리지 않았으므로 여전히 성대를 움직이는 대화법에 의존.


여전히 <우수한 유전자>는 곁에 두고 종종 읽는 SF다. 이 중단편은 <종의 기원>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와 함께 김보영 소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설들이다. 김보영 작가를 김보영 작가답게 만들어준 소설이라고나 할까! 반전을 기대하며 이 중단편을 한번 읽어보시길 바란다.





김보영의 다른 작품들을 만나보자.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https://brunch.co.kr/@jamding/100


종의 기원

https://brunch.co.kr/@jamding/97


촉각의 경험

https://brunch.co.kr/@jamding/82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

https://brunch.co.kr/@jamding/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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