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 우울을 문학으로 승화하다

격식을 거부한 자유로운 영혼

by 자민

한 번씩 인생에 먹구름이 드리울 때가 있다. 지나가는 구름임을 알면서도 같이 마음의 비를 흘린다.

우리가 자연과 닮아서겠지.


3월 마지막 주, 감기가 심하게 걸렸다. 코로나도 한 번 안 걸렸던 난데, 몸살감기라니.


정해진 날에 연재를 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그마저도 나는 너무 버거웠다. 약속을 깨는 일이지만 나는 나를 위한 선택을 했다.


원고료를 받고 쓰는 글도 있었기 때문에 글이 안 써지는 이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글에 넣고 싶은 내용이 있는데 아무리 끼워 맞춰 봐도 자연스레 들어가질 않는 것이다.

마감은 다가오지만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있는 시간에 내 머리 위로는 지나간 나의 인생, 다가올 나의 인생에 대한 단막들이 또 펼쳐진다. 역시 나는 삶에 대한 고민을 할 때 가장 평온한 사람이었다.

세상 어디에도 이끌리지 않는 무중력 상태일 때, 나는 내 안에서 피어나는 힘을 볼 수 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던 것도 같은 이유다.


연암 박지원의 소설이 우울을 문학으로 승화한 결과라는 기사를 보았다. 결국 제 삶을 살아낸 예술가들이 작품을 남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시대,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은 모두 실학파 학자이지만, 이 두 사람은 세계관, 삶의 스타일, 문체, 당파 등 모든 면에서 달랐다.

연암은 노론 명문가 출신으로 뛰어난 문인이었지만 과거를 통해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반면 다산은 남인 출신으로 과거 공부를 열심히 해서 관료의 길을 걸었다. 이처럼 연암은 권력의 중심에서 원심력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벗어나려 했고, 다산은 권력의 중심에서 구심력을 가지고 계속 달려 나아갔다.


연암이 과거를 거부한 이유는 단순히 개인적 성향 때문만은 아니었다. 1765년, 집안 어른들의 기대 때문에 과거에 응시했던 연암은 일부러 과거 시험에 합격하지 않았고, 이후에도 과거를 피했다. 그는 어떤 격식을 따르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규격화되고 제도화되는 것을 싫어하는 기질이었다. 그런 자유로운 영혼이 답답한 사회 구조 속에 갇혔을 때, 그것은 우울증으로 표출되었다.



젊은 연암을 짓눌렀던 우울증

연암의 삶과 평소 언행을 기록한 그의 아들 박종채의 『과정록(過庭錄)』에 따르면, 연암은 거침없고 다혈질인 태양인의 기질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10대 후반부터 수년간 불면증을 동반한 우울증을 겪었다. 사실 현대인에게는 아주 흔한 질병이지만 당시대에는 찾기 힘든 질병이라 할 수 있다. 박수밀 교수는 이 연암 박지원 선생이 겪은 우울증은 현대에 겪는 우울증과는 성질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적 어려움에서 비롯된 우울증이 아니었다.

박수밀 한양대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현대인들의 우울증은 대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관계에 큰 상처가 있거나 어떤 물질적인 큰 어려움을 겪는 등 개인적인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연암은 아름다운 공동체와 같은 자신이 꿈꾸는 세상이 있었는데 세력과 명예 그리고 이익만 따져서 돌아가는 현실에 깊은 좌절 의식을 느꼈고 그것에 비롯된 우울증이라 할 수 있다.”며 “이 젊은 시절의 우울증이야말로 연암 문학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삶의 본질을 이해하고 주변의 인간과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다”고 말했다.


연암이 살았던 영·정조 시대는 양반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과거제도가 엉망진창이던 시기였다. 진정한 학문과 인품보다는 연줄과 당파, 형식과 격식이 모든 것을 지배했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연암은 이런 세상에서 숨 쉴 수 없었다. 그가 꿈꾸던 아름다운 공동체, 진실한 인간들이 함께 사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것은 단순한 우울이 아니라 실존적 절망이었다. 하지만 바로 이 젊은 시절의 우울증이 연암 문학의 근원이 되었다.

박수밀 교수는 말한다. “이는 삶의 본질을 이해하고 주변의 인간과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자양분이 됐다.”



백탑, 그리고 우정

1768년, 연암은 한양의 백탑(白塔, 지금의 탑골공원) 부근으로 이사한다. 그의 주변에는 이덕무, 이서구, 서상수, 유금, 유득공 등이 모여 살았고, 박제가, 이희경 등도 그의 집에 자주 출입했다. 이들은 대부분 서얼 출신 지식인들이었다. 양반도 아니고 평민도 아닌, 신분의 경계에 선 사람들이었다.

연암은 이들과 함께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상에 대해,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그들은 출신도, 나이도, 신분도 따지지 않았다. 오직 진실한 대화만이 있었다. 청년기부터 앓던 우울증과 불면증을 극복하고 방랑하던 청장년의 연암을 다잡아 준 것은 다름 아닌 우정이었다.

연암은 이 만남들을 통해 깨달았다. 양반이라는 허울 뒤에 숨은 위선보다, 평민의 진솔한 삶이 훨씬 아름답다는 것을. 권력과 명예를 좇는 사람들보다,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인간답다는 것을. 그의 우울증은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문학으로 승화되었다.



글쓰기, 우울을 치유하는 방법

연암은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이다. 이 안에는 『양반전』, 『민옹전』, 『예덕선생전』, 『광문자전』 등 9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특히 『민옹전(閔翁傳)』은 연암 자신의 우울증 극복 과정을 담은 자전적 소설이다. 젊은 선비가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힘들어하는데, 민옹이라는 평민 노인과 어울리면서 마음이 건강해지는 이야기다. 연암은 이 소설을 통해 고백한다. 진짜 치유는 약이나 명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그것을 나누는 대화와 기록에서 온다고.

연암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문학 활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 치유의 과정이었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었으며, 자신이 꿈꾸던 아름다운 공동체를 글 속에서라도 구현하는 행위였다. 그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글로 남기면서 우울증을 극복했다.



우울을 예술로 바꾼 사람

박수밀 교수의 말처럼, 연암의 우울증은 “삶의 본질을 이해하고 주변의 인간과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만약 연암이 그저 평탄한 삶을 살았다면, 양반의 위선을 꿰뚫는 『양반전』도, 평민의 지혜를 담은 『민옹전』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연암은 자신의 병을 치유하는 과정 자체를 삶으로, 소명으로 만들었다. 우울하다고 방 안에 틀어박히지 않았다. 답답한 제도를 원망만 하지 않았다. 그는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대화했으며, 그것을 글로 남겼다. 그 과정에서 우울은 문학이 되었고, 절망은 통찰이 되었으며, 상처는 예술이 되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크고 작은 우울과 불안을 안고 산다. 자연과의 단절, 자기와의 대화 단절, 의미 없는 경쟁과 비교. 연암이 살았던 조선 후기와 지금은 시대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세력과 명예 그리고 이익만 따져서 돌아가는 현실은 여전하고, 그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아름다운 공동체를 꿈꾼다.

연암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명확하다. 우울은 피하거나 숨길 것이 아니라, 마주하고 표현해야 한다는 것. 진실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치유의 시작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아픔을 글로 쓰는 것이 가장 강력한 치유라는 것.

연암은 우울을 앓았지만, 우울에 지배당하지 않았다. 그는 우울을 예술로 바꾼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예술은 2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위로와 영감을 준다.






연암 박지원과 페니베이커의 치유의 글쓰기

놀랍게도 연암이 250년 전에 발견한 이 치유법은 현대 심리학에서도 증명되었다. 텍사스 대학의 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는 1986년부터 30년 넘게 표현적 글쓰기(Expressive Writing)를 연구해 왔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트라우마나 감정을 글로 쓴 사람들은 면역력이 강화되고, 스트레스가 감소하며, 우울증과 불안이 줄어든다.


페니베이커가 말하는 표현적 글쓰기와 연암의 『민옹전』은 본질적으로 같다. 둘 다 내면의 고통을 밖으로 꺼내고,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며, 그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행위다. 연암은 자신의 우울을 젊은 선비라는 인물로 객관화했고, 그의 치유 과정을 『민옹전』이라는 이야기로 재구성했다. 이것이 바로 페니베이커가 말하는 서사 치료(Narrative Therapy)다.

여기서 핵심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연암에게 우울증은 단순한 병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이해하고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자양분이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했으며, 그것을 글로 쓰면서 의미를 부여했다.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것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게 된다. 그것은 성장이 되고, 통찰이 되며, 예술이 된다.


차이가 있다면, 페니베이커의 글쓰기는 개인적 치유에 초점을 맞추지만, 연암의 글쓰기는 개인적 치유를 넘어 사회적 메시지가 되었다는 점이다. 연암은 자신의 우울을 숨기지 않고 작품으로 승화시켰고, 그것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고통은 예술이 되었고, 그의 치유 과정은 2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18세기 조선의 우울한 양반과 20세기 미국의 심리학자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보편적 진실이다.

감정을 글로 쓰는 것, 그리고 그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것이 가장 강력한 치유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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