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Therapy
나는 15년 전, Writing Therapy에 대해 큰 관심이 생겼다. 흥미보단 막연하게 소명(vocation)처럼 느껴지는 친밀함과 다소 무게 있는 책임감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들,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던 순간들을 나는 글로 써내며 버텼다.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그 방법을 나눠야 한다는 사명감이 컸다. 그게 지난날 나의 고난이 존재했던 이유이고, 그 경험이 곧 나의 가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의 불안감 때문에 세상이 인정하는 탑을 세우려고 다른 길을 찾아 헤맬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안의 목소리는 더 또렷해졌고, 내 소명에 대한 믿음은 의심이 아닌 확신이 되어 갔다.
숨이 막힐 때는 내게 숨통이 되어주고,
마음이 아플 때는 내게 약이 되어주고,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나의 호흡이 되어 준,
Writing(글쓰기)와 Manuscript(손글씨),
그 가치를 전하는 게 나의 임무이다.
나는 늘 강조한다.
Writing Therapy의 가장 기본은 손으로 쓰는 것이라고.
키보드가 아닌, 펜을 쥔 손이 종이 위를 천천히 움직일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내면의 목소리와 진정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느린 속도 속에서,
손끝을 통해 흘러나오는 글(말)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만난다.
읽고 쓰고 저장하기 편리한 도구들이 생겨나면서 우리 생각의 속도도 빨라졌다. 클릭 한 번으로 수천 개의 정보가 쏟아지고, 타이핑 속도만큼 생각도 빠르게 흘러간다. 머리가 복잡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우리가 빠르게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아직 소화가 덜 됐는데 계속 음식을 넣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위장은 아직 처리 중인데 계속해서 새로운 것이 들어오니 배는 부르지만 속은 더부룩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손으로 글을 쓰게 되면 물리적 속도의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생각을 글로 옮기기 위해서는 느낀 것을 정리하는 시간과 그것이 언어로 구체화되는 시간, 펜을 쥔 손이 움직여 잉크가 닳아 글씨가 써지는 시간 등이 필요하다. 이 모든 물리적인 시간들이 모여 순간이 되고, 하루가 되면 인생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속도가 각자의 인생을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나만의 속도라고 믿는다. 우리는 육(肉)을 가진 존재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 육체는 고유의 리듬이 있고, 그 리듬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심장이 뛰는 속도,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속도, 음식을 씹고 소화하는 속도. 손으로 글을 쓰는 속도 역시 그런 육체의 리듬 중 하나다.
어쩌면 이 물리적인 시간들이야말로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육으로 살아가는 존재에게 필요한 시간의 기준이 아닐까. 디지털 속도가 아닌 우리 몸이 허락하는 속도로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삶을 제대로 소화하고 온전히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얇은 종이의 두께 또는 밀도, 미세한 샤프심의 굵기와 강도를 인지한다는 건 여간 예민한 게 아니다. 볼펜의 형태, 색, 잉크 점도 등 각자 성향에 따라 그날의 무드에 따라 내 손에 탁 붙는 필기구들이 다르다. 이런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는 것이 의식으로 무의식을 깨우는 첫 번째 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손끝의 말초신경은 뇌를 직접적으로 자극한다.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교(NTNU)의 신경심리학자 Audrey van der Meer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손으로 글을 쓸 때 타이핑할 때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복잡한 뇌 연결 패턴이 활성화된다. 연구진은 고밀도 뇌파측정(EEG)을 통해 손글씨를 쓸 때 기억 형성과 학습에 관여하는 뇌 영역들 사이에서 저주파 뇌파(세타파와 알파파)의 연결성이 크게 증가함을 확인했다.
이는 단순히 신경학적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손으로 글을 쓰는 행위는 감각운동 피질과 시각 영역, 브로카 영역(언어 생성과 관련), 두정엽, 측두엽을 동시에 활성화시키며, 이 과정에서 몸의 세포가 반응하기 시작한다. 즉, 실질적으로 생각을 손으로 적는 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인지를 바꾸고 신체 변화까지도 이끄는 통합적 경험인 것이다.
펜을 쥔 손이 종이 위를 움직이는 순간, 우리 뇌는 깨어나고, 기억은 각인되며, 몸은 학습됩니다. 이것은 손글씨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우리 존재 전체를 활성화시키는 행위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나의 느낌과 생각을 명확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알아차림(awareness)의 시작이다. 감정과 느낌은 굉장히 모호하다.
우리는 구름처럼 내 무드를 장악하고 있던 그 느낌과 생각들을 인지하고 구분해야 한다. 그래야 그 구름 뒤에 뭐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UCLA의 심리학 교수인 Matthew D. Lieberman의 연구에서, 화난 얼굴이나 두려운 얼굴 사진을 보면 편도체 영역의 활동이 증가하는데, 그 감정에 ‘화남’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편도체의 반응이 감소하는 것을 밝혔다.
편도체(amygdala)는 흔히 부정적인 감정을 다룬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생존에 중요한 모든 자극을 처리하는 영역이다. 위협뿐만 아니라 보상, 동기부여, 생존에 필요한 모든 정서적 정보를 다룬다. 그래서 모호하고 불쾌한 감정이 밀려오면 편도체가 활성화되며 경보를 울리게 된다. 하지만 그 감정을 인지하고 이름을 붙이면 (우측 복외측) 전전두피질이 개입해서 ‘이건 그냥 화난 감정이구나. 실제 위협이 아니구나.’ 판단하게 되어 편도체 반응이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편도체와 다른 변연계 영역의 반응을 감소시키며, (우측 복외측) 전전두피질과 편도체 활동이 역 상관관계를 보인다. 감정이 이름을 붙인 후 편도체 활동이 감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수백 밀리초 이내로 굉장히 즉각적이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을 정서 명명(affeect labeling)이라고 한다.
* 정서 명명( affect labeling) : 단순히 감정을 인식하는 것을 넘어, 언어라는 형태를 부여하는 것
- 전전두피질 활성화
- 감정 정보의 인지적 처리 촉진
- 문제 해결 능력 향상
- 감정 지능 향상
다시 말해, 손으로 감정을 쓰는 행위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모호한 감정의 구름에 윤곽선을 그어주는 것이고, 생존과 성장의 자극 앞에서 뇌가 올바른 신호를 읽을 수 있도록 학습시키는 것이다.
사건과 관계없이 순간 떠오른 단상 또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채 잠재되어 있는 깊은 상처들이 상대방의 의도와 다르게 건드려질 때, 우리는 사건의 맥락에서 벗어난 다른 기분을 경험하게 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해라는 것들이다.
이런 오해가 생기는 이유는 각자가 경험하는 기분이 근원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트라우마와 연관된 침습적 사고와 기억은 경고나 의도 없이 갑자기 떠오르며, 마치 트라우마가 현재에 재발하는 것처럼 강한 감정적, 행동적 반응을 쉽게 유발할 수 있다.
즉, 눈앞에 놓인 사건과 다르게 나의 과거 또는 현재, 미래가 현재 상황에 섞여서 또 다른 맥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트라우마 트리거는 과거 트라우마 경험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상황, 기억, 대상, 장소, 사람 등 다양하고 각자 고유의 방식으로 경험하게 된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보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인 상황인지에 따라 정의되는 게 현상 존재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트라우마와 관련된 감정과 인지적 경험을 견딜 수 없을 때, 그들은 회피 또는 투사, 부인, 왜곡한다. 관계에서 흔히 경험하는 갈등 중 하나는 각자의 트라우마 처리를 상대방에게 투사하기 때문에 생기는데, 이는 원치 않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전가하려는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쓰면 나의 감정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내 안의 문제가 무엇인지 등을 직시하게 된다. 부정적인 삶의 사건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더 깊은 자기 이해를 가능하게 만드는 소중한 삶의 재료이다.
*표현적 글쓰기(expressive writing) : 감정을 글로 적어 내는 것
- 자기 인식 증가
- 문제 해결 능력 향상
- 감정 조절을 위한 인지적 변화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Footnote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10853352/
https://neurosciencenews.com/handwriting-learning-brain-connectivity-25522/
https://www.psypost.org/handwriting-activates-broader-brain-networks-than-typing-study-shows/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10853352/
https://www.frontiersin.org/journals/psychology/articles/10.3389/fpsyg.2023.1219945/full
https://pubmed.ncbi.nlm.nih.gov/17576282/
https://sanlab.psych.ucla.edu/wp-content/uploads/sites/31/2015/05/Lieberman_AL-2007.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