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평 남짓의 나의 전쟁터, 책상

셀프케어의 현장

by 자민
책상은,
학창 시절의 나를 가둬두는 곳이자
위로하는 공간이었다.
반평도 안 되는 책상 위에서
내 성장의 8할이 이루어졌다.
수용소인 줄 알았던 그곳은,
돌이켜보니 내게 온 세상이었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물건 중 오래된 것들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책상이다.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사주신 2m가 되는 책상.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학구열과 책상의 크기가 비례했던 게 아닐까 싶다.


내가 나의 전쟁터에서 얻은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아침에 일정을 쓰는 습관

매일 아침에, 나는 등교 전 1시간은 무조건 책상 앞에 앉아 보내야 했다. 학습지를 풀고 강의 테이프를 듣는 시간이었다. 성문 영문법 강의가 녹음된 테이프였는데, 한 면을 다 듣는데 30분 정도가 걸렸다.


아침 6시에 일어나면 세수하는 것조차 귀찮다. 그래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감은 채 바로 책상 의자에 앉곤 했다. 스탠드를 켜면 불빛에 눈이 너무 부셔서 스탠드 헤드를 벽 쪽으로 돌려놓고 앉아 있었다. 잠도 안 깬 채로 책상에 앉는다고 혼이 났기 때문에 나는 잠 깬 척 연기를 하며 잠을 깨웠다. 해야 할 아침 숙제를 하다가 방문 밖으로 아버지의 인기척이 들리면 연습장에 뭐라도 끄적였다.

주로 그날의 할 일들을 쓰곤 했다. 아침 자습 시간에 할 일, 학교 쉬는 시간에 할 일 등 시간대에 따라 할 일을 정리하면 1시간이 금방 채워졌다.

그때는 참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이 황금 같은 습관을 만들어준 셈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 할 일을 정리한다는 것. 그것이 하루를 생산적으로 살게 하는 첫 단추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억지로 한 행동이 지금도 하루를 열어주는 아침 습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2. 필기를 하는 노동의 기쁨

저녁식사 후,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도 나는 늘 책상을 지켜야 했다. 시험이 끝난 날에도 예외는 없었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주는 건 다채로운 펜들 뿐이었다. 펜으로 넘쳐나는 나의 필통. 그것은 유일한 나의 유토피아였다. 다른 컬러와 질감의 필기구들은 나의 복잡한 마음을 표현하고 위로하는데 충분했다. 공부는 싫지만 펜은 쓰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를 따라 나는 거의 노동에 가까운 필기를 했다.

글자 하나가 틀리거나 안 예뻐도 새로 필기를 했다. 손이 저릴 정도로 필기를 하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가지런히 정렬된 글자들을 보면 내 마음도 따라 정리되는 듯했다.

노동이란 게 이런 걸까. 눈앞에 보이는 생산품은 시간과 노동의 가치를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빼곡하게 채워진 노트를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내가 무언가를 이뤄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별거 아니지만 잘했다는 무언의 칭찬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디지털 기기가 발달하면서 대부분의 기록이 키보드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노동의 기쁨은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타자를 치는 것과 펜을 쥐고 글씨를 쓰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펜 끝에서 만들어지는 글자 하나하나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무한히 담긴다.



3. 친구들과 편지로 소통

필기 노동을 마치고 나면 나는 매일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10대 학생들에게 학교 쉬는 시간은 수다 떨기에 번개 같은 시간이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도 다녀와야 하고 가끔은 매점도 가야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친구들과 수다는 항상 목마른 일이었다.

그런 내게 펜팔은 친구들과 수다 떨고 싶은 마음을 해소해 주는 완벽한 수단이었다. 편지지가 없을 때는 노트를 예쁘게 꾸민다. 프레임을 그리고 색칠하면 근사한 편지지가 한 장 만들어진다.

한창 감정이 많아지는 사춘기 시절, 나는 한 장의 종이에 그 많은 감정을 쏟아냈다. 그때 그 편지들은 그 시절 모든 고민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다. 의성어가 절반인 우리들의 편지였지만, 편지 덕분에 우리는 함께 있지 않아도 늘 서로 때문에 웃을 수 있었고 항상 같이 있는 느낌이었다.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나는 글로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웃긴 일, 짜증 나는 일 등 하찮은 일부터 친구끼리 멋쩍어 차마 말로 하지 못하는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도 종이 안에서는 가능했다. 그렇게 펜 끝은 나의 입술이 되고 글자는 나는 고백이 되었다.



4. 나에게 쓰는 편지(일기) 같은 습관

그런데 가끔은 부칠 곳이 없는 편지를 쓰곤 했다.

엄마한테 혼이 나고 속상하고 화가 난 마음, 동생과 싸우고 미안한 마음 등 가끔 친구에게 털어놓기엔 창피한 날들이 있었다. 억울하기도 했고 화가 났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그 감정을 내 보일 수가 없었다. 그저 답답한 마음만 가지고 책상 앞에 앉을 뿐이었다.

그런 날에는 누구에게 보낼지도 모르는 채로 편지를 쓰곤 했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줘.’라고 쓰는 순간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 글자로 표현되었을 뿐인데 눈물은 쏟아진다. 떨어지는 눈물에 펜이 번지는 장면은 아직도 선하다.

하지만 그렇게 편지를 쓰고 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경험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마음,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라는 그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고 나니 후련했다. 부칠 곳 없던 그 편지는 어느새 고스란히 내 마음에 도착해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힘들 때마다 나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시험을 못 본 날, 부모님께 혼이 난 날, 동생과 싸운 날엔 책상으로 돌아와 스스로를 위로하는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다 보면, 어느새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주는 것 같았다.

나에게 쓰는 편지는 일기가 되었고 나만의 감정을 다스리는 법이 되었다. 이 방법은 수험생 때 아주 효과적이었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종이에 풀어놓으면, 그 감정들이 조금씩 정리되고 가라앉았다.

지금도 감정이 소용돌이칠 때면 펜을 잡고 글을 쓴다. 그러면 나는 더 이상 감정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 감정을 관찰하는 사람이 된다. 한 발짝 물러나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평도 안 되는 책상 위에서 나는 매일 사랑과 전쟁을 겪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은 지금 내 인생을 이끄는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


<나의 손무기 3가지>


1.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무기력할 때, 필사를 한다.

읽었던 책을 꺼내 가슴에 와닿았던 문장을 옮겨 적다 보면

어느새 그 말이 내 가슴에 새겨지고 있다.


2. 감정이 힘들거나 버거울 때, 편지를 쓴다.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라는 내 마음을 종이에 솔직히 옮기다 보면

어느새 누군가 내게 ‘괜찮다 ‘고 말을 걸어주고 있다.


3. 매일 아침, 하루 일정을 적으며 시작한다.

바쁜 날에는 빈틈없이 효율적으로 일을 마칠 수 있게 되고,

여유로운 날에는 좀 더 풍요롭게 하루를 보내게 된다.



어릴 적 책상에서의 진한 시간들이
지금의 삶을 움직이는 엔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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