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을 바라보는 태도
결론부터 얘기하면 주부도 직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답을 얻기 위해서는 주부와 직업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살펴봄으로써 사용하는 단어에 따라 경험이 달라지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우리 삶에는 가치 판단이 이루어져야 할 것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의 가치를 온전히 반영하는 것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단순히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이미 그 단어 안에 사회적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성공, 효도, 평범 등에 대해 논할 때 그 단어에는 이미 여러 사람의 의견이 담겨 있고, 사회가 정해놓은 정의로 단어를 사용하도록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교육받는다.
그래서 개인의 가치 판단으로 각자의 삶을 이뤄야 할 때 우리의 온전한 가치 반영이 어려운 것이다.
20대, 한창 자아가 성장하던 시기에 취업을 앞두고 방황하던 때가 떠오른다. 나에게 취업은 한 장의 서류와 한 시간도 안 되는 면접으로 나의 인생이 결정되는,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보지 못하는 불합리한 과정이었다. 나는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잘하는 일을 찾는 것을 넘어, 이번 생에 내가 해야 하는 일, 즉 나의 소명을 찾고 싶었다. 시간이 걸려도 그 시간은 충분히 가치 있다고 믿었고, 젊은 날의 시간을 나의 소명을 찾는 데 써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내게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그들이 기대하는 회사원, 디자이너 같은 한두 단어로 내가 찾고 있는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내가 찾고 있는 일을 설명하고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여러 문장이 필요했고, 이는 나를 현실성 없는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의미 있는 삶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복지 제도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근본적인 욕구는 해결해 주지 못한다고 느꼈다. 워라밸, 소확행이라는 단어들이 생겨나는 이유도 직장인들의 부조리한 삶을 보여주는 단면이지 않았을까. 직장은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고, 취업에 대한 나의 견해는 굉장히 반사회적이었다.
나는 일에 대한 나만의 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번 글은 그 과정에서 얻은 생각들을 담고 있다.
일과 관련된 단어는 크게 Job(일자리), Occupation(직업, 종사분야), Profession(전문직), Career(경력), Vocation(소명) 5개가 있다.
(어원은 Online Etymology Dictionary와 Oxford English Dictionary에서 주로 찾았다.)
우리가 ‘일’이라고 하면 제일 많이 쓰는 Job에 대해 먼저 알아보자.
의미 변화 과정: 임시로 맡은 일 - 정규적인 직업, 고용된 일 - 생계를 위한 직업
14세기경 중세 영어에서 jobbe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당시 이 단어의 의미는 한 덩어리(lump) 또는 한 조각(piece)이었다. 17세기 중반에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떼어 놓은 한 건의 일을 뜻했다. 임시로 맡은 일이나 품삯을 받고 하는 일, 오늘날 아르바이트나 부업 같은 의미였다. 심지어 18세기에 사무엘 존슨은 1755년 사전에 Job울 저급하고 천박한 돈벌이 일이라고까지 정의했다고 한다.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은 OED(옥스퍼드 영어사전) 이전까지 가장 영향력 있고, 현대 영어 사전의 기초가 된 유명한 영어 사전을 만든 사람이다.)
그리고 1900년 이후, Job의 사용량이 급격히 늘어났으며, 1950년대에 최고를 찍고 꾸준히 높은 사용량을 보이고 있다.
사회 모습의 변화와 단어의 사용량과의 관계를 보는 것은 꽤 흥미롭다. 산업 구조의 변화로 단어 사용에도 변화가 생겼으며 이는 우리 삶의 모습을 바꿔놓기 때문이다.
특정 단어의 사용 빈도가 증가한다는 것은 그 개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는 신호다. 그리고 그 단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개념을 내면화하게 된다. 이는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덕목 자체가 바뀌었음을 의미하고, 이 단어들은 다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암묵적으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결국 한 단어의 사용량 변화는 단순한 언어 통계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지표인 셈이다.
Job의 사용량이 급격히 일어난 때가 산업혁명 이후가 아닌 1950년대(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인 이유는 전쟁 이후 사회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리처드 서넛, 허버트 애플바움, 막스 베버 등의 사회학자들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세기부터 1930년대 즈음까지 사람들은 주로 trade(직업 기술), craft(수공업, 장인), calling/vocation(소명)이라는 단어 등을 썼다. 그 당시까지도 사람들에게 일은 그들의 정체성(identity)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기계가 생겨나면서 사람이 기술의 주인이 아니라 기계의 일부가 되는 분위기는 분명 있었지만, 기술 숙련은 여전히 사람에게 있었고, 직업도 여전히 계층이나 신분에 영향을 받았었다.
하지만 1950년대 이후에는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그때는 미국과 서유럽의 전쟁이 끝난 시기였는데, 전쟁 이후 대규모 제조업과 기업 중심의 고용이 생겨난 것이다.
이들은 전쟁을 통해 국가 주도의 대규모 조직을 경험했다. 그래서 전쟁 이후 기업들이 재건하면서 하향식(top-down) 체제가 표준으로 자리답으며 대기업이 확산되었고, 그때의 관료 시스템이 그대로 이어졌다. 업무는 시스템 안에서 먼저 정의되었고, 사람은 조직에 속해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는 더 이상 개인은 기술의 소유자가 아니라 조직 내 역할 보유자가 되었음을, 일을 맡은 사람은 언제든 교체가 가능해지게 되었음을, 사람의 일은 계약으로 맺어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즉, 사람이 업무 단위로 관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같이 대기업과 관료 조직이 확산됨으로써 사람은 이제 기술을 팔며 살아가는 게 아니라 매달 안정적으로 임금을 받는 월급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장기 고용과 월급제가 확산되면서 1950년대에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생겼고, 이때 ‘일은 곧 먹고사는 문제‘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이런 사회 변화에 Profession이나 Vocation 같은 단어는 너무 무거웠고, 그에 반해 Job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단어였다.
이렇게 Job(임금노동자)은 사회의 기본 단위이자 표준 인간을 정의하는 단어가 되었다.
의미 변화 과정: 어떤 일로 시간을 채우는 행위 - 시간과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점유하는 생업
Occupation이라는 단어는 표에 보이는 것과 같이 1950년대에 가장 많이 쓰인 ‘종사분야, 직업’이라는 단어다. (1950년대에 이 단어의 사용량이 가장 많은 것은 전쟁 용어도 (예, occupation of Germany) 함께 집계된 까닭이라고 한다.) Occupy(차지하다)에서 파생되었고,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차지한다는 의미에서 직업을 가리키게 되었다. 실생활에서 잘 쓰진 않지만 관공서, 병원기록, 법원 등 문서에서 볼 수 있는 공식적인 명칭이다.
그 이유는 개인이 일정한 항목과 수치로 환원 가능한 데이터의 단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목적이나 동기보다 시간과 역할이 직업을 정의하는 데 기준이 된 것은 국가는 사람들이 ’왜 일하는지’보다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했고, 시간과 역할은 측정 가능한 객관적 지표이기 때문이다.
그 배경은 전쟁 후 국가에게 개인의 의미가 달라진 것에 있다. 전쟁 이전까지 국가는 국민을 단순히 노동력으로만 봤다. 공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투입할 수 있는지, 전쟁에 얼마나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지 정도만 알면 되었기에 그저 일할 수 있는 사람의 규모정도만 파악하면 충분했다.
하지만 전쟁 후 국가는 폐허가 된 사회를 재건하고 안정시켜야 했다. 이를 위해 국민을 단순히 동원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삶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보장해야 하는 체계로 전환하였다. 복지 제도, 실업 수당, 의료 보험, 연금 같은 시스템을 운영하려면 각 개인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정확히 알 필요가 있었다. 고용 여부, 직무 내용, 소득 수준, 근속 기간, 보험 가입 상태와 같은 정보는 개인의 삶을 서사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행정적으로 계산하고 분류하기 위해 필요해졌다. 또한 어떤 종류의 일에 종사하는지를 통해 내가 속한 직업군의 위험도, 소득 수준, 사회적 신뢰도를 측정할 수 있었고, 이런 표준화는 정부의 통계 수집, 세금 정책, 노동 시장분석 등을 용이하게 했다. 결국 국가나 기관은 통계를 내고 분류를 하기 위해, 일의 동기나 목적보다 사람의 기능과 역할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이것은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다. 사람은 대량 생산과 표준화 시대에 시스템 안의 ‘기능’으로 정의되었고, 맡은 기능을 정해진 시간 내 수행을 하는 존재가 되었다.
개인의 내적동기나 삶의 의미가 국가 입장에선 중요하지 않게 되었으니 아무도 그걸 묻지 않는다.
아무도 묻지 않으니 우리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의미 변화 과정: 수도자가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행위 - 신념과 윤리를 전제로 한 직업
1950년 당시에 Job, Occupation과 달리 Profession의 사용량은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쓰임이 없어져서라기보다 변화한 사회 구조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Profession(전문직)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직업'을 뜻하는 것을 넘어, 그 어원 속에 대중 앞에서 한 약속이라는 깊은 윤리적 책임감을 담고 있다.
Profession은 라틴어 professio에서 유래했고, 이 단어는 Pro(앞에서) + Fateri(말하다, 인정하다) 두 개의 뿌리가 합쳐진 것이다. 중세에 수도사가 되려는 사람이 대중 앞에서 ‘나는 평생 신을 섬기며 살겠다’고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신념이나 의지를 밝히고 고백하는 행위가 바로 Profession이었다.
그러다 16세기 이후에 세속적인 영역으로 확장되어 의사, 법조인, 성직자처럼 고도의 지식을 갖춘 이들이 ‘나는 내 지식을 사익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겠다’라고 선언하기 시작하면서 전문직이라는 뜻으로 확장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문직들은 공개 선언(Profession)을 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 의사: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선서
• 간호사: 나이팅게일(Nightingale) 선서
• 법조인: 솔론(Solon)의 선서와 법조 윤리 선언
• 언론인: 카누토(Canuto) 선언
• 회계사: 파초리(Pacioli)의 정신
일반인이 모르는 강력한 전문 지식을 가진 전문직 사람들은 이 지식을 잘못 쓰면 사람을 죽이거나 사회를 망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지식을 무기로 쓰지 않겠다’는 약속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오랜 시간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 습득한 전문 지식(Expertise)이 있고, 오직 자신의 전문적 판단에 따라 업무를 수행할 권한인 자율성 (Autonomy)이 있는 위치에 있으며, 자신의 지식을 오남용 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직업윤리의 윤리적 책무 (Commitment)을 가지고 있다면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의미 변화 과정: 말이 달리는 경주로 - 계속 이어지는 직업의 궤적
career의 사용량은 최근까지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라틴어 carraria(카라리아)가 프랑스어 carrière(카리에르)로 넘어가면서 경주로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19세기 초반부터 달리는 길이 사람의 삶에 비유되면서 한 개인이 사회에서 밟아 나가는 일의 행로를 Career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는 직업을 하나의 점으로 보지 않고 경험과 과정을 중시하는 시점을 제공하게 되었다.
현재 사회에서 Career가 쓰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개인의 브랜드화가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한 회사에 입사하면 정년까지 근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그 회사의 이름이 곧 개인의 정체성이자 신뢰의 증표였다. 하지만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에 Career는 내가 어디로든 갈 수 있게 해주는 통행증 같은 역할이 되어주고 있다. 사회는 어떤 Job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어떤 Career를 그려왔는지, 자신만의 전문성을 보유한 사람을 원한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에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의 조직에 안주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개인은 스스로를 하나의 브랜드처럼 관리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주체가 되었다.
사회는 더 이상 단순히 어떤 Job을 가졌는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어떤 Career를 그려왔는지, 그 여정 속에서 자신만의 전문성과 독자적인 가치를 얼마나 축적했는지를 주목한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쌓은 포트폴리오가 더 큰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보다 ’ 나는 이런 경로를 걸어온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Career는 단순한 이력이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를 정의하고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내러티브가 된 것이다.
의미 변화 과정: 신의 부르심(종교적 소명) - 내적 소명에 따른 직업
Vocation이라는 단어는 Calling이라는 단어와 같은 말로 쓰이며, '무엇을 하느냐'를 넘어 '나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존재론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는 단어이다.
사용량은 산업혁명 초기에 급격한 증가를 보이다가 이후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Vocation은 부름(Calling)을 뜻하는 라틴어 vocatio에서 유래했고, 목소리를 뜻하는 vox와 부르다는 뜻의 동사 vocare 합쳐진 것이다. 이 어원 자체가 이미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목소리에 응답한다는 것이 Vocation의 본질이다. 이는 일을 단순히 생계 수단이나 사회적 역할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고유한 ‘부름’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제공한다.
중세에는 오직 성직자나 수도사에게만 쓰였다. 당시 사회에서 신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었고, 세속적인 일은 그저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 영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여겨졌다. 성직자가 되는 것만이 진정한 소명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의 일은 신성함과는 무관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다 16세기 종교 개혁 때, 마틴 루터와 칼뱅 같은 사상가들이 "모든 정당한 세속적인 일 역시 신의 부름이다"라고 주장하며 의미가 확장되었다. 이때부터 일상적인 직업도 '소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게 되었다. 루터는 농부가 밭을 가는 것도, 구두장이가 신발을 만드는 것도 모두 신이 부여한 소명이라고 말했다. 이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이었다. 이때부터 일상적인 직업도 ‘소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게 되었고,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신성한 의미를 지닌 행위로 재해석되었다.
산업혁명 초기에 Vocation의 사용량이 급증한 것은 이러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맞물려 있다.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지적했듯이, 자신의 일을 소명으로 여기고 성실히 임하는 태도는 자본주의 발전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에 도덕적,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며 더욱 헌신적으로 일했고, 이는 근대 산업 사회의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이후 Vocation의 사용량이 꾸준히 하락한 것은 현대 사회가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산업화가 심화되고 노동이 표준화되면서 일은 점차 ‘부름’이 아닌 ‘기능’으로 축소되었다. 대량 생산 체제 속에서 개인의 일은 거대한 시스템의 한 부품처럼 취급되었고, 일에서 의미를 찾기보다는 효율과 생산성이 강조되었다. 일을 종교적 또는 철학적 차원에서 성찰하는 문화 자체가 약해진 것이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Vocation은 내면의 목소리와 나의 재능, 세상의 필요가 교차하는 직업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니라, 내가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으며, 동시에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 ‘의미 있는 일’, ‘목적이 있는 커리어’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커지면서 Vocation이라는 개념이 다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높은 연봉이나 안정성보다 자신의 가치관과 일치하는 일, 사회적 의미를 가진 일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Vocation이라는 오래된 개념이 새로운 형태로 부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이 ‘불려진’ 곳이 어디인지, 자신의 존재 이유와 일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AI 시대가 곧 이런 Vocation의 관점을 요구하는 때가 올 것이라 믿는다. AI가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를 대체해 나가면서, 인간에게 남는 일은 결국 ‘기계가 할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기술이나 지식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창의성, 공감 능력, 윤리적 판단, 그리고 무엇보다 일에 대한 깊은 의미 부여일 것이다. AI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지만,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그 일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해서는 답할 수 없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단순히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보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더 큰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Vocation이라는 오래된 개념이 AI 시대에 오히려 더 절실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약하자면,
1. Job: 돈을 벌기 위해 처리하는 '한 건의 일'
2. Occupation: 사회 시스템 속에서 내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
3. Profession: 전문가로서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약속'
4. Career: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온 나만의 '길'
5. Vocation: 내 가슴을 뛰게 하는 내면의 '부름'
다시 제목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주부도 직업이 될 수 있는 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것은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가는 사회적으로 정의되는 일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산이 사회에 기여하는 정도가 더 크게 다뤄지고 있는 요즘은 특히 Occupation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부를 Occupation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Occupation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공식 경제 시스템 내의 유급 노동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Occupation의 어원인 ‘Occupare’(점유하다)로 돌아가면, 주부야말로 가장 완벽하게 Occupation의 본질을 구현한다. 주부는 하루 24시간, 일주일 7일 가정이라는 공간과 가족의 삶을 점유하며, 그 노동 없이는 어떤 유급 경제도 작동할 수 없다.
각자가 환경과 조건에 따라 정의하기에 다르겠지만 앞서 살펴본 5가지 중 다른 단어로도 충분히 정의될 수 있다. 나는 일의 정의를 스스로 내리고 각자 의미를 부여하여 쟁취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한국말에서 ‘일’은
아주 오래전부터 쓰인 순우리말로 ‘생계를 위한 수단‘부터 ‘자아실현‘까지 가장 폭넓게 쓰인다. 한 단어가 가지고 있는 스펙트럼이 넓을수록 서로 소통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내가 20대에 일과 관련하여 사람들과 소통이 어려웠던 이유 역시 일을 명확히 구분하는 단어가 없어서 서로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 다른 의미를 담아 사용했기 때문이다.
나는 ‘소명의’ 일을 찾아 나섰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 소명을 찾은 사람으로서 이번 글을 쓰면서 느낀 게 있다.
우리는 5가지 일의 개념 중 내게 맞는 한 가지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5가지의 일을 모두 해야 하며 인생 곳곳에 균형 있게 잘 스며들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그 순서는 좀 다를 수 있어도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5가지의 일이 모두 필요하단 사실!
나의 Occupation(직종) 내에서, 전문성을 쌓아 Profession(전문직)의 윤리를 지키며, 성실히 Job(일)을 수행하여 Career(경력)를 쌓고, 그 과정에서 나의 Vocation(소명)을 발견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로인 것 같다.
하지만 사회의 전유물이 되는 것을 강하게 부인했던 나는, 나의 Vocation(소명)을 먼저 찾았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나의 많은 면을 발견했다. 이제 Occupation(직종)내에서 성실히 Job(일)을 수행하여 Career(경력)를 쌓고 Profession(전문직)의 윤리를 지키며 나의 Vocation(소명)을 완성시키려 한다.
우리는 필요에 따라 언어를 만들고,
만들어진 언어는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필요를 요구한다.
언어를 만든 사람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그 언어에 귀속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습득한 언어를 수동적으로 사용만 할 게 아니라 그 언어(단어)의 의미를 스스로 생각하고 정의 내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사전을 완성해 나가는 것, 그것은 우리 인생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과 그 길을 나란히 한다.
어떤 사람과 비슷한 종류의 단어를 공유한다는 것이 곧 관계의 결속을 보여준다.
그 당시 나는 일을 소명이라는 뜻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도 귀했고, 사회가 불편해서 자꾸 뒷걸음만 치게 되었던 거 같다. 이제는 내 언어를 더욱 드러내고, 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이 만나고 싶다. 우리는 이런 걸 결이 맞다고 한다.
즉,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내 삶을 구성하는 기본 재료가 된다. 나아가 비슷한 성분을 가진 사람끼리 만난다는 말도 논리적으로 완성도 있는 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