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이해해 보는 시선이 치유의 시작

Bangkok, Thailand, 2014

by 자민

사업을 정리하고 내 자신을 감싸 안아 줄 시간이 필요해서 방콕으로 향했다.


Nature is so powerful, so strong.
Capturing its essence is not easy -
Your work becomes a dance with light and the weather.
It takes you to a place within yourself.
- Annie Leibovitz




Capturing Moments

모든 일을 접고 방콕으로 갔다. 또다시 내 인생의 시계는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그렇게 멈춰 선 시곗바늘 사이로 다른 감각들이 타고 들어왔다. 사진 한 컷 정도 되는 내 눈앞의 장면들이 모두 새로워 보이기 시작했다.

1. 태국어로 쓰인 콜라

냉장고 유리문을 열었을 때, 익숙한 빨간 캔이 낯선 글자를 달고 서 있었다. 춤추는 듯 따라 쓰기도 힘든 태국 문자는 콜라라는 단어조차 꽃그림 같았다. 생전 먹어본 콜라가 한 캔이 안되는데, 바뀐 글자 하나로 난생처음 콜라도 사봤다.


2. 밥 위에 뿌리는 라임

볶음밥 위에 라임 반 쪽을 꾹 쥐어짰다. 맑은 즙이 밥알 사이로 스며들고, 새콤한 향이 올라왔다. 처음엔 어색했다. 밥에 신 걸 뿌린다는 것이. 그런데 한 숟가락 떠먹는 순간, 이상하게도 밥이 더 가벼워지고 더 생생해졌다. 열대의 더위 속에서 밥 한 공기가 그렇게 산뜻할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3. 스티키라이스 아이스크림과 산톨 아이스크림

너무 귀엽고 반가운 마음에 쇼케이스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어쩜 이런 아이스크림이 다 있지. 아이스크림이라는 형식 안에 이 나라의 맛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여기서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가벼워지는 아이스크림통을 더 오래 쥐게 만들었다.


4. 짐톰슨의 티세트

마트 한 켠에 진열된 짐톰슨 티세트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실크 특유의 광택이 빛을 잡아당기는 방식으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5. 쨍한 빨대 색

이렇게 채도 높은 색은 크레파스나 옷 말고는 본 적이 없던 거 같다. 이 나라엔 파스텔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과일이 그렇게 채도가 높으니, 사람들의 감각도 자연히 그쪽으로 맞춰진 걸까. 빨대 하나에서도 태국의 색감이 느껴졌다.


6. 망고주스와 함께한 식사

테이블 위에 망고주스가 하나 더해지면 식사는 시작부터 행복해진다. 과일을 좋아하진 않지만 망고는 다른 카테고리다. 아껴먹지 않아도 돼서 더 행복한 태국에서의 망고주스. 참 별거 아닌 걸로 기분이 좋아진다.






Who cares who came first?

태국은 사계절이 따뜻한 나라라 그런 지 일 년 내내 꽃이 피어있다.

보도블록 틈, 하수도 옆, 담벼락 사이.

‘어디에 어떻게 피어있든 어쩜 하나같이 이렇게 예쁠까.’ 유독 기억에 남은 건 신기하게 생긴 낯선 꽃들이었다. 이게 꽃이야?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유독 웃기게 생긴 꽃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어떤 꽃이든 하나같이 내가 느낀 감정은 ‘예쁘다’였다. 어디에 피었든, 어떤 모양이든, 자기만의 모습으로 당당히 피어있는 그 모습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핸드폰에 담아 온 꽃 사진들을 하나씩 넘겨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꽃이든 다 예뻐 보이는 건 내가 꽃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몰라. 만약 내가 꽃이었다면 어땠을까. 분명 비교하고 평가하고 서열을 만들었을 것이다. 나보다 더 예쁜 꽃, 덜 예쁜 꽃을 가르기 위한 기준들을 만들었겠지.’ 그리고 그 모습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매사 기준을 만들어 상과 벌을 주고, 옳고 그름을 논한다. 그 존재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건 사람이나 꽃이나 매한가지인데 말이다.

문득 스스로를 돌아본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과연 사람들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나의 기준으로 멋진 사람과 못난 사람을 나누어 보고 있진 않은지. 나부터라도 나 자신을, 그리고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노력하고, 그 모습 자체를 예뻐해 줘야지.


남들과 똑같은 화려함을 입으려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넌 충분히 예뻐.
그게 가장 너다운 모습이라서 좋았어.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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