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로, Korea
모든 감정에는 동기가 있다.
내가 서울을 사랑하게 된 건 서울에 산 지 20년이 지나고 나서다.
서울을 사랑하게 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젊었을 때 첫눈에 반해서 마취제 맞은 듯, 마법처럼 세상이 갑자기 천국이 되는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감정을 우리는 (문화적으로)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라 기쁨이었다.
배고프면 먹고 싶고, 무서우면 도망치고 싶은 것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감정들과 다르게 사랑은 반사적으로 오는 감정이 아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생기는데 에너지가 필요하다. 시간과 노력, 정성 그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만든다.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생명체 같다. 보이지 않게 내 삶을 무너뜨리기도 하고, 기적같이 내 삶을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그런데 세상에 보여지는 사랑은 온갖 예쁘고 아름다운 메시지로 포장되어 있다. 그래서 설레고 기쁘면 나는 모두 사랑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사랑은 달랐다. 진짜 사랑은 나의 상처가 아물고 나을 때 느끼는 재생력과 경이로움, 감사함이었다.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름답다고 느끼기 쉽지 않은 감정이었다. 주변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 그 상처를 낫게 하는 건 자기 자신이다. 아무도 대신 아파해줄 수 없고, 아무도 대신 나아져줄 수 없다. 그 변화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없으면 상처를 낫게 할 수도 없고, 결국 진짜 사랑을 할 수도 없다는 말이 된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사자성어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슬플 애(哀)를 사랑 애(愛)로 바꿔보았다.
기쁠 희(喜). 모든 동기는 자발적인 행동을 부르는 기쁜 마음에서 시작된다. 내가 기꺼이 하게 되는 마음. 그게 사랑의 씨앗이다. 하지만 이 단계는 아직 사랑이 아니다. 종종 그 마음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는데 사랑이라는 마음은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감정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노할 노(怒). 모든 일, 모든 관계에서 우리는 갈등에 부딪힌다. 벽을 만났을 때 부수고 나아갈 의지가 있는지 시험을 거치게 된다. 그 벽을 부술 의지가 있다면 비로소 그 대상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 애(愛). 안 되는 걸 되게 하려 했던 노력, 정성, 간절함이 쌓여야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농축된다.
즐거울 락(樂). 그 대상을 사랑하게 되면 그제서야 우리는 그것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고군분투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어떤 면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내 앞에 놓인 갈등과 난관은 더 이상 난제가 아닌 사랑으로 품어야 하는 것임을 깨닫기 되기 때문이다.
내가 서울을 사랑하게 된 것도 서울이 내 상처가 아물 수 있게 도와준 이후부터였다.
20대, 다채로운 감정들을 경험하던 시기, 나는 ‘걷기’로 나를 치유했다. 내 가방엔 항상 바닥이 말랑한 플랫슈즈가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광화문이나 시청역까지 버스를 타고 나와 신발을 갈아 신고 걷기 시작했다. 모두가 퇴근한 시간, 시청 앞을 지나면 내가 좋아하는 옷가게, 회사원들이 좋아하는 맛집들이 나온다. 자본주의 세상 구경이 끝나면 숭례문이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서울길 코스는 숭례문을 지나 남대문 시장 옆길로 해서 남산을 올라가는 길이다. 그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집에 가는 버스 노선을 따라 걸은 것이다. 걷다가 힘들면 바로 버스를 탈 수 있고, 긴 목적지보다 한 정거장만 더 걷자는 마음이 나를 덜 지치게 했다.
내가 걷고 싶을 때는 고민이 있을 때다. 걷기 전에 수많은 걱정 중 한 가지를 골라 그 생각에 몰입한다. 그 일 때문에 생기는 내 감정, 내가 염려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질 확률, 문제 해결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등 현실적인 고민들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 보면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다. 가빠지는 호흡을 가다듬는 데만 집중하게 되고, 들고나가는 숨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그만 걷고 싶어질 만큼 힘들어지기 직전에 완만한 소월로가 나온다. 그리고 그 지점부터 남산 냉장고 문이 열린 듯 차가운 산공기가, 나를 위로라도 하려는 듯 마중을 나온다. 그 순간의 느낌은 맥주가 가장 맛있는 순간으로 감히 비유된다.
걷는 건 참 좋은 치유 방법이다. 평소에는 발걸음이 빠른데, 걱정이 많으면 물 먹은 솜을 짊어진 것처럼 발걸음이 무겁고 느리다. 그런데 한걸음한걸음 내딛다 보면 어느 순간 발걸음이 나의 심장박동과 맞춰진다. 심장이 느리게 뛰면 마음이 따라 가라앉는다. 그래서 내겐 느리게 걷기가 명상이었다. 그리고 신기한 점은, 걷기 시작할 때 담았던 걱정 한 개가 말끔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더 이상 그것은 문제가 아닌 게 되어 있다. 상황이 바뀐 건 아니다. 하지만 소월로를 걷는 동안 내 안에 무언가가 달라져 있었다. 내 안에 자신감과 긍정의 마음이 생긴 것이다. 이런 마법을 몇 번 겪고 나서 나는 서울을 매우 사랑하게 되었다.
다년간 그 길을 걸으며 깨달은 게 있다. 걱정은 상황 자체의 심각성이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나의 마음에서 생긴다는 것을.
해방촌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나트륨 노란 불빛들, 밤이 늦어도 여전히 분주한 빌딩과 도로의 불빛들. 어둠 속에서도 나를 비추기 위해 열심히 반짝이고 있던 내 모습과 닮았다고 느꼈다. 서울의 밤은 어둠이 커져도 여전히 반짝이는 별로 가득했다. 그리고 오늘도 어디선가 잠시 빛을 잃은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반짝이고 있을 서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