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의 철학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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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아니라,

마치 도시의 한 조각을 잘라낸 듯하다.


줄리안 오피(1958~ )의 ‘걸어 다니는 사람(Walking in the City)’

연작은 캔버스를 걷는다.

정지된 장면 속에서 인물들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단순한 선과 평면적인 색채, 얼굴 없는 사람들.



Walking_in_Southwark_2,_2014.jpg Walking_in_Southwark_2,_2014



그러나 그 속에는 묘하게 익숙한 리듬이 숨어 있다.

우리가 매일 도시에서 마주치는 발걸음,

그 무심한 속도와 방향의 축소판이다.


오피의 인물들은 매우 단순하다.

눈도, 코도, 입도 없다.

개성은 지워지고, 인간은 하나의 기호로 바뀐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단순함이 낯설지 않다.

오히려 그 안에서 우리는 수많은 '나'를 본다.

출근길의 나, 버스를 향해 뛰는 나,

음악을 들으며 걷는 나.

오피는 구체적인 묘사를 지우고도 삶의 실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현대인의 초상을 그려낸다.



빗속을걷다_서울_2015.jpg 빗속을 걷다_서울_2015




그림을 바라보다 보면,

문득 나도 그 속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어딘가를 향해,

그러나 사실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걷고 있는 수많은 하루의 나.

오피의 '걸어 다니는 사람'은 단지 이동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멈추지 않음의 상징이다.

현대인의 생은 곧 움직임이다.

정지하면 불안하고,

속도를 잃으면 뒤처지는 듯한 시대.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증명인 셈이다.



Running_Man_2016.jpg




줄리안 오피는 도시의 군중에서 시를 읽는다.

개성과 감정이 없는 듯 보이지만,

그 속엔 삶의 궤적이 있고,

감춰진 사연이 있다.


그는 군중을 흉내 내지 않고 군중을 통과한다.

익명성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것을 오피는 선으로, 색으로, 걷는 동작으로 말한다.


나는 그 그림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우리는 왜, 어디로 걷고 있는가.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라,

멈출 수 없기 때문에 걷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 걸음 속에서 우리는 진짜 나를 잃지는 않았을까.

오피는 묻지 않는다.

다만, 그 걷는 사람들을 조용히 배치하고,

관람자 스스로 답하게 한다.

그것이 그의 그림이 말없이도 긴 여운을 남기는 이유다.


‘걸어 다니는 사람’은 무표정하지만 결코 공허하지 않다.

오히려 거기에 담긴 수천 개의 일상,

무수한 관계,

감정의 파편들이 조용히 흐른다.

그 선들은,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실루엣이자 초상이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걷는다. 말없이, 그러나 분명히.



Running_Woman_2016.jpg Runing Woman,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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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2악장

https://youtu.be/RZ2rwyZYDZA?si=mzsuknkev243PX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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