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젊은 날의 기도는 주먹을 쥔 것 같았다.
사무실 늦은 불빛 아래,
울며 주저앉은 화장실 바닥에서,
손가락이 서로를 할퀴도록 꼭 쥐어졌다.
"제발 한 번만."
그 한 번은 천번이 되고 만번이 되어 입술을 타고 흘러내렸다.
절박함은 神을 가리지 않았다.
교회 십자가 앞에서,
절의 향불 곁에서,
모스크의 푸른 타일 위에서
내 기도소리는 같은 울림으로 떨렸다.
누구라도 좋았다.
내 귀를 막은 절망의 소음을 잠재워 줄 神이라면.
그러나 기도는 답이 아니라 습관이 되었다.
삶의 틈새에 박힌 쇳조각처럼 계속해서 신을 불렀다.
손바닥의 주름에 밤새운 눈동자,
전철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기도의
경계선을 넘나들었다.
신은 구원의 이름이 아니라 호흡의 리듬이 되어,
허공에 새긴 흔적처럼 나를 추스렸다.
어느새 기도문의 단어들이 녹슬기 시작했다.
여든 살의 창가에 서니,
"한번만"이 "오늘도"로 바뀌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목구멍에 걸리던 칼날이 사라진 대신,
따뜻한 우유처럼 목안을 적시는 말이 자리했다.
"고맙습니다."
창문을 열며 들려오는 새소리,
지지직대는 프라이팬 소리,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소리.
무탈함의 무게가 발아래로 스며들었다.
이제 나는 비가 오는 날에도 감사한다.
빗방울이 초인종을 눌러대는 소리를,
우산을 접는 손의 저릿함을.
병원 예약 없이 잠든 밤,
전화기가 울리지 않은 사무실 오후,
길을 건널 때 잡아준 낯선 손의 온도를.
인생의 주름살에 걸린 작은 것들이 쌓여,
어느덧 기도의 탑을 이루었다.
기도는 이제 손을 펴는 일이다.
젊은 날 주먹 속에 가둔 수많은 '제발'이,
열린 손바닥 위에 '감사'로 피어난다.
신은 더 이상 호소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매일 스치는 사소한 빛들의 총합이 되었다.
커피잔 속에 잔잔한 물결처럼,
오늘 하루의 무탈함이 기적이라고 속삭이듯.
기도가 내게 남긴 것은 특정한 신이 아니라,
숨 쉬는 것 자체에 대한 경의다.
눈뜨고 닫히는 순간마다
스치는 빛의 결을 세어보는 습관.
삶이 주는 최소한의 선물.
그것을 '오늘'이라고 이름 붙인 것.
이제 기도는 울림이 아니라 호흡이다.
눈을 감으면 어둠 속에서도 피어나는,
고요한 감사의 리듬.
바다르체프스카 - 소녀의 기도
https://youtu.be/kVH07qpgodU?si=9Igt_VIhQz5a_73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