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으로
K팝, K드라마 등 한류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한국어 인기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요즘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에 이어 최근에는
프랑스와 같은 유럽 국가에서도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 가운데 외국인들이 쉽게 한국어 이름을 짓는 방법이
해외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1991년 봄, 산부인과 초음파 사진을 들고 의사로부터
“따님입니다”라는 말을 들은 순간,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아내의 배가 유난히 남산처럼 우뚝해 보였다.
태교 음악과 임산부 체조보다 이름 짓기에 더 열을 올린 건,
어쩌면 부모라는 신분에 갑작스레 적응해야 했던
우리의 당황스러움이 투영된 결과일 것이다.
90년대 초반은 한글 이름 열풍이 불던 시절이었다.
《한글 이름 짓기》와 《성명학의 원리》를
밤새 뒤적이며 딸아이에게 ‘안 뜰에 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봄날 뜰에 핀 꽃처럼 순수하고 밝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글자에 압축했다.
그런데 출생신고서를 작성할 때가 문제였다.
한자 이름 없이는 도장 하나 찍기 힘든 시절이었다.
딸은 집에서는 ‘봄’이었고, 학교에서는 한자 이름으로 불렸다.
몇 해 전 그 아이가 스스로 이름을 바꿨다는 걸
알았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너무 흔해요. 한글 이름은 창피하고.”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초등학교 3학년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방과 후 집에 돌아왔더니 어머니가
“너는 이제 재범이야”라고 선언하셨다.
출세하는 이름이라고 무조건 따르라고 명령 하셨다.
수업 중에 이름이 바뀌는 바람에 친구들이
놀려댔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금은 처음 지었던 이름으로 돌아 왔지만.
이름이란 본래 사람을 구별하는 기호이자
세상에 던지는 첫 번째 주춧돌 아닌가?
그런데 왜 우리는 이 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걸까.
어느 날 집에 들른 딸과 마주 앉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이름에 뜻은 있니?”
딸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마음에 들어서요.”
세대를 오가며 반복되는 이름의 전쟁은
아마도 부모의 욕망과 자식의 자유 사이에서 벌어지는
작은 반란인지 모르겠다.
오래된 앨범 속에 작명 메모지를 발견했다.
‘안뜰에봄’이라는 글자가 아직도 선명하다.
이름이란 씨앗과도 같아서,
뿌리는 이의 마음은 간직한 채로
스스로 자라나는 법이다.
이제 그 씨앗은 내 손을 떠나
저 멀리 강물처럼 흘러갔다.
창밖에선 진달래가 지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 봄도 철 따라 피었다 진 꽃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