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비밀
한번은 내가 어느 지자체 기획안을 작성할 때 일이다.
기획안을 작성하기 위해선
시의 중장기 발전 계획 보고서가 필요했다.
그 보고서는 용역비용이 1억이나 들었고,
작성하는 곳은 중앙정부 산하기관 연구소였다.
그런데 내용을 살피던 중 흐름이 이상하여 자세히 들여다 보니,
A시에 제출한 자료에 B시의 내용이 들어 있었고
심지어 B시의 이름조차 A시로 바꾸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Ctrl + V하고 끝낸 것이다.
더 웃긴건 납품을 받은 시 담당부서는 읽어 보지도 않고
제작하여 배포 했다는 것이다.
더 더 웃긴 것은 아무도 읽어 보지 않았기에
그 문제를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 세금이 이렇게 쓰인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래서 용역을 맡았던 연구기관에 전화를 했다.
담당 박사 연구원은 실수였다고 했다.
학자적 양심은 개가 물어가 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실수가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에게만 벌어진 특수한 사례일 수는 있다.
그러나 신문기사를 보면 다반사로 벌어지는 일이였다.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정책의 성과를 부각하기 위해 통계 수치를
인위적으로 조작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감사원의 조사에 따르면,
청와대 정책실장들이 한국부동산원에 압력을 가해
집값 상승률 등의 통계 수치를 변경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러한 행위는 통계법 위반 및 직권남용에 해당하며,
국민을 기만하고 정책 실패를 은폐하려는 시도이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의 공식 통계의 신뢰성을 훼손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 중대한 사안으로 지적되었다.
정확하고 투명한 통계는 정책 결정의 기초가 되며,
이러한 조작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였다.
21세기에도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열심히 세금 내고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야만 한다.
내 돈이면 그렇게 하겠는가!
민간 기업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보고서를 쓰는 사람도, 검토하는 사람도,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구조 속에서
일은 긴장을 머금은 채 진행된다.
그러나 공공기관은 다르다.
시스템은 허술하고,
책임은 분산되며,
결과에 대한 집요한 검토도 드물다.
그저 절차와 형식의 결과만 있으면 된다.
그러니 보고서는 존재하되, 엉터리다.
엉터리 보고서는 어쩌면 문서가 아니라,
무관심과 타성으로 얼룩진 한 시대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아무도 읽지 않는 문서가 아니라,
모두가 신뢰하는 진실의 기록을 남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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