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문자음이 울린 건 새벽 4시가 넘어서였다.
핸드폰 화면을 스치는 창밖 달빛이 희미하게 번들거렸다.
[부고] 故ㅇㅇ 님이 별세하셨음을 삼가 알려 드립니다...
발신자는 모르는 번호.
죽은 이도 기억에 없다.
엄지로 스크롤을 올리다 멈춘다.
내 주소록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어딘가에 인연이 있을 법한 이름.
‘김덕수’란 세 글자가 화면 속 검은 띠에 갇혀 있다.
창문 틈으로 새어든 새벽 찬 공기가 목덜미를 스친다.
어릴 적 동네 앞 목공소 아저씨 이름이 김덕수였다.
아버지의 친구분이었다.
매일 등교 때마다 인사를 드렸던 분이다.
“학교 잘 갔다 와라” 하시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아니면 고등학교 때 앞자리 동기동창?
그땐 수업 중에 몰래 과자를 나눠 먹던 사이였는데,
화면 속 이름은 기억의 늪에 빠진 채 흐릿하다.
누굴 위해 슬퍼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부고는,
어둠 속에서 혼자 떠도는 유령 같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채 깊숙이 박혀있는 명함 책을 뒤진다.
오래된 명함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많은 ‘김덕수’들.
예전 직장 동료부터 보험 설계사까지.
5명.
이 모든 이름들이 이 부고의 주인공일 수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이토록 많은 생의 조각으로
흩어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스치듯 등장해,
심지어 이름도 모른 채 영원한 배경이 되어버린다.
어젯밤 꿈속에서 내가 죽었다.
핸드폰에 알 수 없는 번호로 온 부고를 보며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했다.
과연 그들이 기억하는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냉철하고 빈틈없는 CEO,
소풍 회비를 안 낸다고 소리치던 반장,
늘 후배들 술값 내던 선배...
죽음이 우리에게 남기는 건 이름이 아니라,
이런 사소한 감각의 파편인지도 모르겠다.
새벽 5시, 지워진 번호로 회신한다.
[조의] 김덕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발송 완료!
핸드폰 화면이 어둠에 삼켜진다.
창밖에는 달이 기울어져 있었다.
어느 날 그들에게도 이런 부고가 도착할 텐데.
그땐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나는 어떤 냄새,
어떤 소리로 남아 있을까?
차가운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며칠 전에 만난 후배의 이름을 떠올려본다.
‘김민석’. 내일은 그에게 전화를 해봐야겠다.
살아있는 이름들을,
미리 마주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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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클래식
https://youtu.be/4L4x98zcvwo?si=7irnfIEZ3yGYhBe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