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어젯밤 욕실에서 급하게 아내가 나를 불렀다.
머리카락과 비누 찌꺼기가 뭉친 덩어리가 하수구를 틀어막고 있었다.
아내는 내 눈치를 한번 살피더니 “당신이 고쳐요”라고 말했다.
사실 집안일은 그녀가 백 번 잘한다.
에어컨 필터 청소부터 못질까지,
그녀 손길이 닿으면 모든 게 빛난다.
그럼에도 나에게 맡긴 건,
소파에 퍼질러 TV 보는 내 모습이 눈엣가시였기 때문일 게다.
하수구 뚜껑을 들어 올리려 손가락에 힘을 주었지만 꿈쩍도 않았다.
못 생긴 흉터처럼 달라붙은 고무 패킹이 웃으며 나를 조롱했다.
유튜브에 ‘하수구 뚫는 법’을 검색했다.
“과탄산소다와 뜨거운 물을…”
화면 속 턱수염 난 아저씨가 자신 있게 말했지만,
내가 따라 하자 욕실은 온통 거품 천지가 됐다.
하수구는 오히려 “꾸르륵” 소리로 비웃었다.
한 시간 동안 삽질하다 결국 아내가 마트로 질주했다.
‘뚜러펑’이라는 이름의 하수구 청소제를 사들고
돌아와 뚜껑을 열자마자 쏟아부었다.
“쓰르르륵—” 뚫리는 순간,
내려가는 물소리가 왜 이리도 청량한지.
마치 가슴에 맺힌 한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아내가 문틈으로 내 빨개진 얼굴을 흘깃 보더니
“고생했어요”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모든 게 짜증 났던 시간들이 사라졌다.
사실 이 하수구는 우리 부부의 관계를 닮았다.
때론 서로의 말이 머리카락처럼 엉켜 소통이 막힐 때가 있다.
화내며 ‘과탄산소다’ 같은 날카로운 말을 쏟아붓지만,
오히려 상처만 부풀린다.
그러다가 진짜 해결책은 ‘뚜러펑’처럼
간단한 단어 한마디 일 때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미안해” 나 "고마워" 한 마디면 뻥 뚫리는 게 많다.
삶의 하수구를 뚫을 땐,
혼자서 낑낑대기보다 함께 삽질하는 게 더 빠르다는 걸 배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