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 경계를 뒤흔들다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소변기를 마주하는 순간,

첫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평범한 위생 도구가 대리석 받침대 위에

고고히 올라간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도발적이었다.


그러나 이 잠잠한 도발이 20세기 미술의 지형을

영원히 바꿔놓은 걸작임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샘, 1917


개념의 혁명: 선택이 예술이 되는 순간


뒤샹은 <샘>(1917)을 통해 미술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했다.

그는 철물점에서 구입한 소변기에 ‘R. Mutt’라는 가명을 새기고,

작품을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닌 “선택한 것”이라 선언했다.

이는 예술가의 기술적 숙련도를 중시하던 전통적 미학에 정면으로 도전한 행위였다.


그가 제시한 레디메이드(기성품) 개념은

“예술적 아이디어를 담는다면 일상적 사물도 작품이 된다”

는 선언이었고, 이후 팝아트·개념미술의 토대가 되었다.


반미학의 아이러니: 금기의 정당화


소변기라는 저속한 오브제를 전시한 것은

부르주아적 예술 체제에 대한 조롱이었다.

뒤샹은 “미술관이 신전처럼 숭배되는 공간”임을 비판하며,

예술의 민주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샘>은 시간이 흐르며

‘신성한 예술’의 반열에 올랐다.

2006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한 행위예술가가

망치로 훼손하려 했을 때,

사람들은 “예술을 파괴하지 마라!”며 분노했다.

이는 도발적 작품이 정통으로 흡수되는

미술계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복제본의 숨은 메시지: 원본의 부재


흥미롭게도 전시된 <샘>은 뒤샹이 1950년 복제한 버전이다.

원본은 소실되었고,

작가는 희소성에 반대하며 16점의 복제품을 승인했다.

이는 “예술의 가치는 물리적 실체보다 개념에 있다” 는

그의 철학을 증명한다.

레디메이드 자체가 이미 대량생산된 물건인데,

복제는 오히려 작품의 핵심 메시지를 강화한다.


끝나지 않은 질문


<샘>을 떠나며 나는 스스로 묻는다.

“과연 무엇이 예술인가?”

뒤샹은 변기 하나로 관객에게 이 물음을 영원히 각인시켰다.

그의 도발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예술의 경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사유의 시작점이었다.


오늘날 길거리의 빈 병이 갤러리 벽에 걸릴 수 있다면,

그것은 모두 뒤샹이 열어놓은 문 때문이다.


“머트 씨가 샘을 만들었는가? 그는 선택했을 뿐이다.”

- 이 한 줄이 현대미술의 운명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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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변기 하나 또 소개합니다.^^;








** 해양 석유 시추 시설의 간이 화장실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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