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 존재의 법칙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어디를 가나 사람 관계 복잡하고 힘든 건 매한가지다.

이유은 의외로 간단하고 명료하다.

모두가 각자의 정의를 품고 서로의 빰을 때리고 있기 때문이다.

35년간 직장 생활을 기업, 공공기관, 방송국, 해외 합작사 등

다양한 경험 속에서도 외예없이 느꼈다.

사무실에선 더하다.

어디를 가나 이상한 사람은 꼭 있다.


"빌런 존재의 법칙"


자기 업무는 뒷전이면서 동료의 실수를 캐내는 ‘감시자’,

사소한 규칙을 철권으로 사용하는 ‘헌법 수호자’,

자기 합리화에 천재인 '괘변론자',

무례한 말도 유머라 우기는 ‘독재자’까지.



점심시간만 되면 누군가의 뒷담화가 오간다.

카페에서는 옆 테이블의 시끄러운 대화가 거슬리고,

동호회 모임에선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질색이다.

어디를 가나 마음에 안 드는 빌런은 꼭 존재한다.

마치 세상이 우리를 시험하려고 특별히 배치한 것처럼.


처음엔 저항했다.

‘왜 저렇게 행동할까?’ ‘내가 뭘 잘못했지?’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인간관계의 미로에 갇힌 기분이었다.


특히 사랑하는 반려견이 죽었을 땐 더했다.

주변에서 “새로 키우라”는 말,

“개가 원래 수명이 짧다”는 위로,

심지어 “동물병원 비용이 아깝지 않았냐”는 무심한 말까지.

모든 말이 바늘처럼 찔렸다.

내 슬픔을 이해해 주길 바랐지만,

각자의 잣대로 내 상처를 재단했다.

어느 날 세월이 한참 지나서 문득 깨달았다.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내 ‘기대’ 자체에 있구나.

타인에게 내 마음대로 반응해 주길 바라는 것.

나의 고통을 알아줄 것이라 예상하는 것.

그 기대가 배반당했을 때의 격렬한 배신감.

마치 투명한 유리벽에 계속 부딪히는 새처럼,

기대하면 할수록 더 깊은 상처만 남았다.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마음을 비우는 연습.

무심(無心)의 경지라기보다는,

‘그들’을 내 마음의 중심에서 내려놓는 기술이다.

무례한 사람을 만나도

“아, 이 분은 원래 이런 스타일이구나” 하고 지나친다.


상대의 변화를 기대하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으니 실망도 없다.


싫은 사람의 말이 귀에 들어와도,

마음의 창문을 닫으면 바람처럼 스쳐간다.

마음의 공간을 비워야 내가 살아날 자리가 생긴다.


단, 마음 비우기가 냉소나 무관심은 아니다.

이제 나는 조용히 관찰한다.

카페에서 소리를 지르는 아이,

그의 엄마는 지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본다.

주변의 눈총이 바늘처럼 그녀를 찌른다.

예전 같으면 ‘교육이 안 됐다’고 속으로 비판했을 테지만,

지금은 다르다.


‘저 엄마도 지금 힘들겠구나’ 하고 마음의 무게를 덜어준다.

내 판단으로 그녀의 등을 떠밀지 않는다.

타인의 삶에 내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것,

그것이 마음 비우기의 시작이다.


인간관계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비결은

더 이상 ‘좋은 사람’을 찾는 데 있지 않다.

어디를 가나 괴로운 사람은 존재한다.

중요한 건 그들을 마주하는 내 마음의 상태다.



기대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그들 속에서도 빛나는 인간성을 발견한다.

복잡한 관계의 실타래가 서서히 풀린다.

상대를 변화시키려 애쓰지 않으니 오히려 평화롭다.

마음이 텅 빈자리에는,

예상치 못한 자비가 스민다.

어제는 싫었던 그 상사가 오늘은 힘들어 보인다.

지하철에서 욕하던 그 남자도,

어쩌면 외로웠을지 모른다.


기대하지 않으니 보이는 것들이 있다.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지만, 내 마음만은 간결해진다.

그것이 우리가 악에 받지 않고 살아갈 유일한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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