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예찬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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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마누라는 대단하다.

나에게 시집온 것부터가 경의롭다.

아무것도 갖은것이 없는 나를 선택한 것은

그야말로 도전이고 엄청난 모험이었다.

나 역시 부잣집 맏사위 자리를 마다한

미친 선택이었다.


그러나 서로의 도전은 옳은 선택이었다.

우리는 열심히 살았다.

그 시절에는 그저 열심히 살면 다 되는 시절이었다.


아내는 결혼 조건으로 3가지를 내걸었다.

첫째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업실은 항상 마련해 주고,

두 번째는 세계일주 시켜주고,

세 번째는 하루에 한 번 키스해 주기다.

당시에는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아내는 명문 미대 출신이다.

그러나 결혼 후 육아에 지친 그녀는

그림을 그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없는 살림을 쪼개서

반강제로 대학원을 진학시켰다.

다시 붓을 잡은 건 결혼 후 10년이 지나서였다.


내공이 어디가랴

승승장구했다.

그림을 팔아 BMW도 내게 선물했다.

졸지에 유명작가 남편이 되었다.


그러던 중 나는 북경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때부터 맥이 끊어졌다.

그녀는 붓대신 어학책을 잡았다.


3년 후, 그녀는 대학 전공을 해도 어렵게 딴다는

신 HSK 6급(중국어 최고 등급)을 취득했다.

거기다가 우리나라 특급 호텔 주방들이 제일 따고 싶다는

“차예사 자격증“- 전부 중국어로 시험을 보아야 하고,

중국 차의 다양성과 깊이는 거의 학문 수준이라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중국어 관광 통역사 자격증도 땄다.

이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녀는 그 해 시험의 유일한 한국인 합격자이다.

나머지는 원어민인 조선족이다.




그리고 시각디자인, 웹디자인, 컬러리스트 등

각종 자격증도 쓸어 담았다.

거기다가 책도 출판하여 우수도서 선정까지...

그때 그녀의 나이는 환갑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 달 전엔 갑자기 요양보호사 시험을 보겠다고 나섰다.

이 정도 되면 공부가 취미 거나 자격증 수집가 아닌가?


사실 그녀가 공부를 하면

나는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는다.

완전 찬밥 신세다.

한 달간을 열심히 하더니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출근을 한다.


”왜 그림을 다시 그리지 그래? “

물으면,


”이젠 나이가 먹어서인지 소재가 안 떠올라.

그리고 그리고 싶은 마음이 안생기네.

하고 싶은 맘이 다시 생기면... “


”요양보호사는 힘들 텐데... “




그녀는 우리 아이들이 서너 살 일 때 내 아버지와 엄마를 병간호했다.

중환자실의 시아버지 똥오줌도 다 받아 냈다.

그녀의 나이는 30대 초반이었다.

당시는 간호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점심시간 면회시간에 환자 가족이 직접 해야만 했다.

간병인 비용이 한 달 월급만큼 했기에 엄두도 못 냈다.


그녀는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모두 그렇게 보냈다.

그러고도 더 잘 모시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며

요양보호사를 자처하며 누구에게라도 부족했던 효도를 하고 싶단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그 한없이 착한 마음에 경의를 표한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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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위한 클래식 음악

https://youtu.be/XUMdWLzFrgA?si=8BKXs86hHjXXwSI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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