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없는 모방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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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안, 당당한 앵무새와 우직한 당나귀가 나란히 앉았다.

비행기가 고공에 오르자 앵무새는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승무원 호출 버튼을 눌렀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다정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앵무새는 깔깔대며 대답했다.




"그냥 불러봤어요."


승무원의 얼굴이 살짝 굳는 것 같았다.

재미를 본 앵무새는 다시 버튼을 눌렀다.

이번엔 승무원의 목소리에 냉기가 서렸다.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니면 부르지 마세요."


그 경고를 무색하게,

옆자리 당나귀가 갑자기 자신의 호출 버튼을 힘껏 눌러댔다.


폭발한 승무원은 단호하게 두 동물을 비행기 밖으로 내쫓았다.

공중으로 던져진 앵무새는 가볍게 날개를 펴며 상승했다.

아래로 추락하는 당나귀를 내려다보며

내뱉은 앵무새의 말이 뼈에 사무쳤다.


“날개도 없는데 왜 나를 따라 했니?”


당나귀는 대답 대신 땅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이 우스꽝스러운 우화는 우리 사회 곳곳에

숨 쉬는 ‘당나귀들’을 떠올리게 한다.

남의 행동을 무작정 모방하다가 정작 자신에게는

전혀 맞지 않아 추락하는 이들 말이다.

그 모방의 현장은 가장 익숙한 거리에서 펼쳐진다.

번화가를 걷노라면 마치 무슨 단체 운동복을 입은 듯,

유사한 디자인의 점퍼와 비슷한 스타일의 신발,

똑같은 색조의 가방들이 물결친다.


대학 캠퍼스엔 특정 브랜드 로고가 찍힌 후드티가 유니폼처럼 번지고,

디자인은 달라도 색상이 통일된 액세서리들이 반짝인다.

도봉산 정상에서도, 동네 테니스 장에서도...


한 때 롱패딩이 유행하던 시절,

한 외국인이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던 학생들을 보고

문화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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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의 커플룩은 사랑의 증표로서 이해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지하철에서 마주한 낯선 이가

내 옷과 똑같은 코트를 입고 있다는 발견은 묘한 당혹감을 선사한다.


‘어색함’이란 그 순간을 가장 정확히 표현하는 단어다.

그것은 개성의 부재가 빚는 불편한 침묵이다.


이 모방의 본질은 무엇일까?

앵무새가 가진 ‘날개’를 보지 못한 채,

단지 그 행동이 ‘재미있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덤벼드는 당나귀의 어리석음이다.


패션이나 유행은 앵무새의 화려한 깃털과도 같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깃털이 내 몸에 붙었을 때

진정 나를 빛나게 하는지,

아니면 어색하게 휘청거리게 하는지에 달려 있다.




인기 있는 스타의 옷차림,

SNS에서 유행하는 취미,

주변에서 모두 따라 하는 라이프스타일…


그 모든 것이 ‘나’라는 인체에 맞는 ‘날개’인가?

아니면 추락을 부르는 무게추인가?


앵무새는 자신에게 진정한 비행 수단인 날개가 있었기에

장난도 용서받을 수 있었다.

당나귀에겐 그 장난이 치명적인 오만이었던 것처럼.





모방은 학습의 시작이지만,

그 끝은 창조여야 한다.

남의 것을 단순히 복제하는 게 아니라,

소화하고 재해석해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낼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유행에 휩쓸리는 ‘당나귀’가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 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단지 남들이 하니까,

혹은 인기가 있으니까?’


추락 직전 당나귀의 입가에 맴돌았을 그 무언의 질문 -

“왜?”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거리를 걷다가 또다시 유행의 복제 군단을 마주할 때마다,

그 무기력하게 땅으로 추락하는 당나귀의 모습을 기억하자.

그리고 되물어보라.

진짜 나는, 오늘도 제 색깔로 날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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