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1988년, 서울 하늘은 올림픽의 열기로 가득 찼다.
그 뜨거운 가을, 나는 번듯한 대기업의 간판을 가슴에 달았다.
그것도 월급 많이 주는 금융권으로.
젊은 마음은 출세와 성공에 대한 꿈으로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그 상징적인 간판에는 그에 걸맞은
예상치 못한 대가가 따랐다.
그 대가는 현금이 아니라,
'정(情)'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통장이었다.
그 시절은 보험 세일즈의 황금기였다.
친구, 선배, 후배, 심지어는 대학 동문 주소록이나
회사 직원 명부를 통해 흘러들어온 낯선 지인들까지도
마치 유행을 좇듯 내 책상 앞을 찾아왔다.
"잠깐만 시간 내줘."
그 한마디 뒤에는 피할 수 없는 보험 권유가 기다리고 있었다.
거절하는 법을 배우기 전의 어린 사회인으로서,
나는 그들의 눈길과 부탁 앞에서 괴로워할 뿐이었다.
'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이 발목을 잡았다.
직장 내 인간관계,
선후배 의리,
그리고 모르는 사이를 이어주는 얽힌 인연들.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나는 하나, 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내 이름이 적힌 보험 증권은 어느덧 열두 건이나 쌓였다.
'응답하라 1988' 드라마의 덕선이 아버지처럼
나 역시 아내에게 혼이 났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위한 태아보험부터 암을 대비한 보험까지,
그 종류는 다양했고,
그때 그 시절 나의 어리숙한 '정'이 증권마다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매달 나가는 보험료는 당장의 술자리나
취미생활을 줄여야 할 만큼 부담이었다.
그 많은 증권 속에서 내 진짜 필요는
어디에 있는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저 '사람 눈치 보기'와 '미안한 마음'이 내 미래의 재정을
설계하고 있었던 셈이다.
세월은 흘러갔다.
열두 개의 보험 중 몇 개는 만기를 맞아 조용히 종료되었고,
몇 년 전 나는 남은 것들을 정리하며 그 과거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시절 괴롭기만 했던 몇몇 보험들이 이제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이미 만기 되어 소멸된 것들도 있었지만,
아직도 두 개의 보험은 꾸준히 불입 중이다.
그리고 그중 4개는 이미 연금 형태로 찾아오기 시작했고,
다른 것들도 머지않아 또 하나의 안정적인 노후 월급이 되고 있다.
당시 아내가 구박을 했던 것을 미안해하는 모습이 웃긴다.
그 순간 깨달았다.
젊은 날의 부담이었던 그 '정'의 대가들이,
수십 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지금의 나를 지지하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변모해 있었다는 사실을.
당시에는 연금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단지 눈앞의 인간관계와 부담감에 짓눌려 선택한 것들뿐이었다.
그런데 그 우연히,
아니 어쩔 수 없이 쌓아 올린 작은 기둥들이 지금,
노후라는 인생의 강을 건너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다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연금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노후를 위한 경제적 준비 이상의 의미를 이 경험을 통해 배운다.
그것은 때로는 계획된 설계일 수도 있지만,
다른 때에는 삶의 우여곡절 속에서 우연히,
혹은 어쩔 수 없이 쌓여가는 것들의 합이기도 하다.
젊은 날의 선택,
심지어 그 선택이 순간의 부담으로 느껴졌다 할지라도,
긴 시간의 연단을 거치면 예상치 못한 빛으로 되돌아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1988년 그 올림픽의 열정이 식은 지 오래다.
하지만 그 해에 시작된 어리숙한 열두 걸음은,
지금의 나에게 소중한 미래의 발판이 되어 돌아왔다.
연금은 결국 지금의 '나'가 미래의 '나'에게 쌓아 보내는,
시간을 초월한 정(情)의 다리임을 깨닫는다.
가끔은 계획 밖의 길도 인생을 아름답게 이어주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