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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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창밖은 아직 까마득하지만

내 방에는 작은 전등 불빛이 차분히 깨어난다.


손목시계의 미세한 진동이 잠을 깨우는 신호다.

이른 아침의 적막은 마치 세상이 나만을 위해 멈춰 있는 듯하다.

커피포트가 끓기까지의 짧은 시간,

나는 창가에 기대어 어둠 속에서

서서히 밝아지는 하늘을 본다.

새벽의 숨소리가 귓가에 닿을 때마다

하루가 시작된다는 실감이 스며든다.






첫 번째 일은 컴퓨터를 여는 것이다.

5시부터 7시까지,

이 두 시간은 숫자와 그래프,

뉴스 헤드라인과의 대화 시간이다.

미국 주식시장의 밤새 흐름을 살피며 차분히 분석한다.

모니터에 비치는 빛줄기 속에서

오늘의 한국 시장을 움직일 단서를 찾는다.



숫자들은 때로 춤추고, 때로 얼어붙지만

그 속에 숨은 리듬을 읽어내는 것이 내 일이다.

공략 종목 2~3개를 메모장에 적어내릴 때면,

마치 체스의 첫 수를 두는 것처럼 신중함과 동시에 가슴이 뛴다.

이 시간의 집중은 고요한 새벽과 어우러져 특별한 효율을 낳는다.






7시가 되면 서둘러 아침을 준비한다.

따뜻한 된장찌개 냄새가 주방에 퍼지면 아내를 부드럽게 깨운다.

그녀의 눈을 뜨는 순간,

하루의 첫 미소가 교환된다.

함께 하는 아침 식사는 단순한 에너지 충전이 아니다.

수저가 접시에 닿는 소리,

살짝 얼굴을 스치는 창문 너머 햇살,

아내와 오늘 할 일 이야기 -

소소하지만 결코 작지 않은 행복의 조각들이다.

식탁 위에서는 시간이 조금 더 천천히 흐르는 듯하다.



7시 55분, 다시 책상으로 돌아온다.

대체거래소 프리마켓 개장을 앞두고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 놓는다.

일반거래소와 달리 동시호가 없이 실시간 체결아 이뤄지는

이곳에서는 호가와 수량이 맞닥뜨리는 순간이 승부다.

심장이 약간 빨리 뛰지만,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 있다.



8시 정각,

화면에 숫자들이 물결치기 시작한다.

종목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9시 일반거래소 장 시작 전까지의 전략을 구체화한다.

이 시간은 전쟁터의 정찰과도 같다.

적의 동향을 읽고,

내 병력을 배치하는 침착한 계산의 시간.





9시가 되면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다.

매수와 매도는 속전속결이다.

10분 안에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한다는

나의 규칙은 더욱 나를 날카롭게 만든다.

화면 속 숫자들이 폭풍처럼 흩날릴 때,

나는 그 한가운데서 침착하게 손짓한다.



거래가 마무리되는 순간,

허리를 펴고 창밖을 내다본다.

아침 햇살이 이제야 완전히 방을 채우고 있다.

오전장의 전투가 끝나면, 남은 시간은 나의 것이다.



10시부터 12시까지는 글감을 찾는 사냥 시간이다.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의 선율이 머릿속의 문을 연다.

음악은 생각의 파도를 매만져준다.

카페의 종이컵에 적힌 문구,

길거리에서 우연히 들은 남녀의 대화,

구름 조각의 형태 -

모든 것이 글의 씨앗이 된다.

메모장에는 단어들이 산처럼 쌓인다.



이 시간만큼은 숫자 대신 언어와 놀고,

그래프 대신 상상력의 선을 그린다.

때론 아무것도 적히지 않아도 좋다.

그저 클래식의 선율에 몸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풍요롭다.



점심을 먹고 나면 호두와의 산책이 기다린다.

1시의 탄천길은 우리만의 비밀 공간이다.

목줄을 잡은 손보다 호두가 더욱 씩씩하게 앞서 걸어간다.

강아지의 발걸음은 경쾌한 드럼비트 같다.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는 나무들,

물 위에 그려지는 햇빛의 파문,

지나가는 사람들과의 눈짓 인사,

산책로는 삶의 속도를 0.5배로 줄여주는 마법의 장소다.



호두가 갑자기 멈춰 풀숲을 킁킁대면,

나도 함께 무언가를 찾는 시늉을 한다.

그럴 때면 ‘자유’라는 단어가 발밑에서 피어나는 것 같다.





3시, 집에 돌아와 모니터를 다시 켠다.

장 마감 직전의 종가 거래는 내일 아침의 씨앗을 심는 일이다.



4시부터 6시까지는 글쓰기 시간이다.

아침에 뿌린 씨앗들 중 가장 반짝이는 것을 골라 키운다.

키보드 소리가 방안을 채우면,

시간은 사라진다.

문장이 흐르고,

문단이 꽃피우는 동안 나는 다른 차원에 선다.

글은 나를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세상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저녁 식사 후 7시,

책이나 브런치스토리를 읽으며 타인의 생각 속을 여행한다.

남의 글이 내 머릿속에 던진 돌이 파문을 일으키면,

나는 그 파장을 따라 내 생각의 호수를 측량한다.


“왜 나는 이 부분을 다르게 보았을까?”

라는 질문은 때로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 성장의 공간이다.

타인의 시선으로 세계를 한 번 더 거울에 비추어 보는 시간.





10시, 아내와의 ‘연애 시간’은 하루의 마지막 챕터다.

간단한 막걸리 한 잔과 내가 만든 김치전이면 충분하다.

종종 영화를 보며 함께 웃고,

드라마 속 주인공의 운명에 공감하다가도

서로의 옛날 이야기로 화제를 돌린다.

베란다에 걸터앉아 밤하늘을 보며 흘러가는 대화는 별빛보다 부드럽다.

아내의 웃음소리가 창밖으로 흩어질 때,

나는 이 작은 순간들이 쌓여 만든 인생의 복리(複利)를 생각한다.


12시, 침대에 누우면 머리맡에서는 호두의 숨소리가 들린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 평화로운 소리와 함께

나는 오늘도 내게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쓴 것 같아 흡족함을 느낀다.

주식 시장의 변동이나

글의 조회수보다 중요한 것은

매일의 리듬 속에서 내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다.


행복은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라,

이 작은 일상의 줄기를 붙잡는 데서 온다는 것을 나의 하루가 증명한다.

새벽 5시부터 자정까지,

숫자와 언어,

사랑과 여유로 엮은 하루.

이것이 나의 평범한 특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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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시간을 위한 / 클래식 명작 모음

https://youtu.be/gMhWkb2IRK4?si=4UVId1HlGadFpO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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