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가는 여행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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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초청으로 파리를 빙문 했다.

나는 약간의 페쇄공포증이 있어서 4시간 넘는 비행은

가급적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강행한 것은

그곳에 자리한 루브르 박물관이 있다는 이유가 컸다.

루브르는 미술관을 넘어 인류 문명의 보고이자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거대한 여행지아닌가.


1793년 문을 연 이래로 매년 8만 명이 넘는 방문객들이

이곳을 찾아 모나리자를 비롯한 35,000점 이상의 예술 작품들과 만난다.

60만 평방피트에 달하는 전시 공간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의 문화적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 거대한 유리 피라미드는 고전과 현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 공간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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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단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다.

1503년에서 1506년 사이에 완성된 이 그림 앞에는 언제나 수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들어 그 신비로운 미소의 비밀을 파헤치려 한다.

1911년 도난당했을 당시 프랑스 시인 아폴리네르와 피카소까지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사건은 오히려 그녀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최첨단 환상주의 기법으로 그려진 이 작품은 1797년부터 루브르에 전시되어 왔으며,

1층 이탈리아 회화 코너에서 만날 수 있다.



2.jpg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빈치(1503-1506)



모나리자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작품은

안티오키아의 알렉산드로스가 조각한 밀로의 비너스다.

기원전 130년에서 10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고대 그리스 조각상은 1820년에 발견되었으며,

서양 미술사에서 여성의 우아함을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잃어버린 두 팔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추측은 끝이 없지만,

그 미스터리야말로 이 작품의 매력을 더욱 깊게 만든다.


밀로의 비너스(기원전 150년경).jpg 밀로의 비너스(기원전 150년경)



루브르의 또 다른 보물은 16세기 퐁텐블로 화파의 익명 작품인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녀의 자매 중 한 명'이다.

1594년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앙리 4세가 가장 사랑했던

연인 가브리엘과 비야르 공작부인을 그린 것으로,

은밀한 젖꼭지 핀칭 장면은 가브리엘의 임신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배경에서 바느질하는 여인 역시 아기 옷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상징적 표현들이 작품에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20250613_122541.jpg 작자 미상의 작품인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의 자매



장 오귀스트 앵그르의 '발팽송 목욕하는 사람'(1808)은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의 대표작으로,

여성 누드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 작품은 후에 루시안 프로이드와 만 레이 등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여성이 예술에서 묘사되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앵그르의 정교한 선과 완벽한 형태 구성은

이 작품을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그림 중 하나로 만들었다.



20250613_123036.jpg 앵그르-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1513-1516)는 그의 다른 걸작 다비드 상만큼이나

감동적이고 복잡한 작품이다.

황홀함과 고뇌가 동시에 표현된 이 조각상에서는

인간 존재의 깊은 갈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시스티나 성당을 완성한 직후 제작된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완전한 천재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죽어가는 노예, 미켈란젤로, c.1513-6.jpg 죽어가는 노예, 미켈란젤로, c.1513-6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1818-1819)은 5미터 x 7미터 크기의 거대한 작품으로,

프랑스 낭만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당시 27세였던 제리코가 영안실에서 연구한 결과 탄생한

이 그림은 난파선 생존자들의 극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19세기 관람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메두사의 뗏목, 테오도르 제리코, 1818-9.jpg 메두사의 뗏목, 테오도르 제리코, 1818-9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레이스 메이커'(1669-70)와

'천문학자'(1668) 등이 전시된 17-19세기 네덜란드 예술가 섹션은

상대적으로 한적해서 조용히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목가적인 풍경과 일상의 모습을 담은 이들 작품은 종교화나 영웅적 조각상과는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The Lacemaker(1669-70)와 The Astronomer(1668), 둘 다 Johannes Vermeer.jpg The Lacemaker(1669-70)와 The Astronomer(1668), 둘 다 Johannes Vermeer


한때 프랑스 왕실의 요새였던 루브르에는 나폴레옹이 사용했던

방이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30명이 앉을 수 있는 호화로운 러브시트와 화려한 식당에서는 그 시대의 웅장함과 사치를 엿볼 수 있다.



212.jpg 나폴레옹 3세의 아파트



무엇보다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은 박물관 지하에 있는 중세 루브르다.

12세기 원래 기초를 둘러싼 이 지하 산책로에서는

건물 전체를 지탱하는 거대한 돌들을 직접 볼 수 있다.

어둡고 고요한 터널을 걸으며 이 건물의 긴 역사를 체감하는 순간은

루브르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감동이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중세 기초.jpg



루브르 박물관은 단순히 예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걸어온 긴 여정의 흔적이자,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신비로운 공간이다.

모든 작품 하나하나가 그 시대의 이야기를 품고 있으며,

우리는 그 앞에서 시간여행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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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음악

https://youtu.be/el8TynihH4g?si=k1vMWUNiazTmj4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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