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그는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미술관의 한쪽 벽면,
시대와 시대 사이에 선 사내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부채가 들려 있고,
몸은 조선의 옷을 입었으며,
눈빛은 서양의 원근법 속에 자리한다.
춘곡 고희동(1886~1965).
조선 최초의 서양화가.
그가 그린 ‘부채를 든 자화상’은 단순한 초상이 아니라,
혼돈의 시대 속 정체성을 되묻는 거울이었다.
1915년경, 조선은 이미 쇠락한 제국이었다.
식민지의 그늘 아래서 전통은 낡은 것으로 밀려나고,
새로운 사조는 낯선 이방인의 얼굴로 들어왔다.
그 중심에서 춘곡은 한 사람의 예술가이자,
한 시대의 증인이었다.
그는 유럽식 유화 기법으로 자신을 그렸지만,
그 안에는 조선의 뼈와 살이 또렷이 남아 있었다.
화폭 속 그는 부채를 든 채 앉아 있다.
그 부채는 마치 조선이라는 마지막 자존처럼 느껴졌다.
서양의 기법으로 동양의 마음을 품고,
근대의 색으로 전통의 품격을 그리고자 한 작가의 고뇌가 느껴졌다.
화면 전체는 정제되어 있고, 조명은 절제되어 있으며,
그 안의 그는 고요하지만 흔들린다.
나는 그 눈빛을 오래 바라보았다.
자신의 예술이,
나아가 삶 전체가 새로운 길 위에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가 택한 것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이었다.
배운 것을 토대로 지키고자 했고,
변화를 품으면서도 정체성을 놓지 않았다.
그 자화상은 곧 시대의 초상이다.
전통과 근대,
동양과 서양,
식민과 자주 사이의 틈에서 춘곡은 스스로를 그렸다.
한 인간의 얼굴에 조선의 운명이 스며 있고,
그 붓끝에는 한 민족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이 어려 있다.
이 그림은 보기엔 조용하지만, 내면은 격렬하다.
그 고요한 화면 속에서 나는 질문을 듣는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서 있는가?”
춘곡의 자화상은 단지 화가의 얼굴이 아니라,
근대를 맞은 우리 모두의 물음표다.
그림 앞을 떠나며, 나는 생각했다.
오늘날 우리는 과연 어떤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가.
누구의 시선으로,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손에 쥔 채.
춘곡 고희동은 ‘부채’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시대를 향한 마지막 품위였고,
잊지 않으려는 뿌리였다.
그의 선택은 곧 우리의 거울이 된다.
흔들리는 경계 위에서도, 그는 단단히 앉아 있었다.
그 자리가 바로 진짜 예술가의 자리였음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