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위의 자화상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1.jpg



그는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미술관의 한쪽 벽면,

시대와 시대 사이에 선 사내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부채가 들려 있고,

몸은 조선의 옷을 입었으며,

눈빛은 서양의 원근법 속에 자리한다.


춘곡 고희동(1886~1965).

조선 최초의 서양화가.



1.jpg 부채를 든 자화상(좌),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우)



그가 그린 ‘부채를 든 자화상’은 단순한 초상이 아니라,

혼돈의 시대 속 정체성을 되묻는 거울이었다.


1915년경, 조선은 이미 쇠락한 제국이었다.

식민지의 그늘 아래서 전통은 낡은 것으로 밀려나고,

새로운 사조는 낯선 이방인의 얼굴로 들어왔다.


그 중심에서 춘곡은 한 사람의 예술가이자,

한 시대의 증인이었다.



고희동의 '탁족도'(1939).jpg 고희동의 '탁족도'(1939)



그는 유럽식 유화 기법으로 자신을 그렸지만,

그 안에는 조선의 뼈와 살이 또렷이 남아 있었다.

화폭 속 그는 부채를 든 채 앉아 있다.

그 부채는 마치 조선이라는 마지막 자존처럼 느껴졌다.


서양의 기법으로 동양의 마음을 품고,

근대의 색으로 전통의 품격을 그리고자 한 작가의 고뇌가 느껴졌다.

화면 전체는 정제되어 있고, 조명은 절제되어 있으며,

그 안의 그는 고요하지만 흔들린다.



2.jpg 동경미술학교 졸업 작품



나는 그 눈빛을 오래 바라보았다.

자신의 예술이,

나아가 삶 전체가 새로운 길 위에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가 택한 것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이었다.

배운 것을 토대로 지키고자 했고,

변화를 품으면서도 정체성을 놓지 않았다.


그 자화상은 곧 시대의 초상이다.

전통과 근대,

동양과 서양,

식민과 자주 사이의 틈에서 춘곡은 스스로를 그렸다.

한 인간의 얼굴에 조선의 운명이 스며 있고,

그 붓끝에는 한 민족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이 어려 있다.


이 그림은 보기엔 조용하지만, 내면은 격렬하다.

그 고요한 화면 속에서 나는 질문을 듣는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서 있는가?”


춘곡의 자화상은 단지 화가의 얼굴이 아니라,

근대를 맞은 우리 모두의 물음표다.

그림 앞을 떠나며, 나는 생각했다.


오늘날 우리는 과연 어떤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가.

누구의 시선으로,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손에 쥔 채.

춘곡 고희동은 ‘부채’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시대를 향한 마지막 품위였고,

잊지 않으려는 뿌리였다.

그의 선택은 곧 우리의 거울이 된다.

흔들리는 경계 위에서도, 그는 단단히 앉아 있었다.

그 자리가 바로 진짜 예술가의 자리였음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금강산 진주담도(眞珠潭圖)  1940.jpg 금강산 진주담도(眞珠潭圖)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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