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생의 은유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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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인으로 한국의 모든 것을

전 세계에 올바르고 당당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되오."


6.25 전쟁으로 모두가 힘들로 고달픈 삶을 살았지만,

이중섭만큼 1950년대를 고통스럽게 견뎌내야 했던 화가도 흔치 않았을 것이다.

사무친 그리움을 예술혼으로 승화시킨 이중섭.



이중섭 (1916~1956)



그림 속 황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었다.

그것은 울부짖는 혼이었고, 찢기듯 살아낸 한 시대의 심장이었다.

이중섭의 〈황소〉를 마주했을 때,

나는 그저 하나의 동물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한 인간이, 한 민족이, 한 시대가,

머리부터 꼬리까지 전신으로 버티고 있는 형상을 마주하고 있었다.

황소의 눈빛은 거칠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것은 분노만이 아니었다.



황소, 1953~54, 종이에 유채, 32.3×49.5cm, 개인소장.jpg <황소>, 1953~54, 종이에 유채, 32.3×49.5cm, 개인소장



고통, 인내, 외로움, 희망…

그 모든 감정이 흙을 박차는 발굽 아래,

부르르 떨리는 몸짓 속에,

어금니를 악물고 버티는 뿔의 곡선 속에 배어 있었다.

이중섭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걸고 그림을 그린 화가였다.

그의 삶은 황소보다 더 고되었고, 더 치열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떠나보내야 했고,

전쟁과 가난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자신을 황소로 그렸다.

절벽 끝에 선 삶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으려 두 눈을 부릅뜬 존재로.

〈황소〉의 붓질은 거칠고 뜨겁다.



흰 소, 1955, 종이에 유채, 29×41cm,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jpg <흰 소>, 1955, 종이에 유채, 29×41cm,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



그 거친 선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화면을 뚫고 나온다.

점잖고 우아한 미술의 언어는 없다.

대신 거기에는 살갗을 찢으며 달려 나오는 생의 본능이 있다.

그는 붓을 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장을 내던졌다.

내가 이 그림 앞에서 오래 서 있었던 이유는

그 황소가 마치 내 아버지 같고,

내 어린 시절의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삶이라는 들판에서

누군가의 짐을 지고,

땅을 디디며 끙끙 살아가는 황소들인지 모른다.



길 떠나는 가족, 1954, 종이에 유채, 29.5×64.5cm, 개인소장.jpg <길 떠나는 가족>, 1954, 종이에 유채, 29.5×64.5cm, 개인소장



그 무거운 하루하루를 이겨내는 힘.

그것이 바로 이중섭이 말하고자 한 인간의 위엄 아닐까.

이중섭의 황소는 절망을 딛고 일어선다.

눈동자는 슬프지만, 결코 꺾이지 않는다.

그는 끝내 포기하지 않는 힘을 그렸다.


그림 한 폭으로,

자신이 살지 못한 따뜻한 세상에 대한 염원을 남겼다.

황소는 오늘도 캔버스 위에서 숨 쉰다.

그 숨결은, 여전히 나의 등을 떠민다.

“버텨라. 싸워라. 그러나 잊지 마라, 너는 살아 있다는 것을.”

그 한마디가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그 울음 같은 침묵에,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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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만들어진 담배 겉포장을 벗겨내면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은지’가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부르기 좋은 대로 담배딱지, 은종이, 은지 등으로 불렸다.

여기에 그림을 그려보자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품은 화가가 바로 이중섭이다.


김석기자_이중섭-9.jpg <도원(낙원의 가족)>, 1950년대, 은지에 새김, 유채, 8.3×15.4cm,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20250619_122642.jpg <신문을 보는 사람들>, 1950년대, 은지에 새김, 유채, 10.1×15cm,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232.jpg 왼쪽부터 <아들 태성에게 보낸 편지>, 1954, 종이에 펜, 채색, 26×20.5cm, 개인소장 / <부인에게 보낸 편지>, 1954년 11월, 26.5×21cm,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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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uLbqAx0Ca2M?si=TJm7te-iJ84QOt7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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