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나는 한국인으로 한국의 모든 것을
전 세계에 올바르고 당당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되오."
6.25 전쟁으로 모두가 힘들로 고달픈 삶을 살았지만,
이중섭만큼 1950년대를 고통스럽게 견뎌내야 했던 화가도 흔치 않았을 것이다.
사무친 그리움을 예술혼으로 승화시킨 이중섭.
그림 속 황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었다.
그것은 울부짖는 혼이었고, 찢기듯 살아낸 한 시대의 심장이었다.
이중섭의 〈황소〉를 마주했을 때,
나는 그저 하나의 동물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한 인간이, 한 민족이, 한 시대가,
머리부터 꼬리까지 전신으로 버티고 있는 형상을 마주하고 있었다.
황소의 눈빛은 거칠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것은 분노만이 아니었다.
고통, 인내, 외로움, 희망…
그 모든 감정이 흙을 박차는 발굽 아래,
부르르 떨리는 몸짓 속에,
어금니를 악물고 버티는 뿔의 곡선 속에 배어 있었다.
이중섭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걸고 그림을 그린 화가였다.
그의 삶은 황소보다 더 고되었고, 더 치열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떠나보내야 했고,
전쟁과 가난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자신을 황소로 그렸다.
절벽 끝에 선 삶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으려 두 눈을 부릅뜬 존재로.
〈황소〉의 붓질은 거칠고 뜨겁다.
그 거친 선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화면을 뚫고 나온다.
점잖고 우아한 미술의 언어는 없다.
대신 거기에는 살갗을 찢으며 달려 나오는 생의 본능이 있다.
그는 붓을 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장을 내던졌다.
내가 이 그림 앞에서 오래 서 있었던 이유는
그 황소가 마치 내 아버지 같고,
내 어린 시절의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삶이라는 들판에서
누군가의 짐을 지고,
땅을 디디며 끙끙 살아가는 황소들인지 모른다.
그 무거운 하루하루를 이겨내는 힘.
그것이 바로 이중섭이 말하고자 한 인간의 위엄 아닐까.
이중섭의 황소는 절망을 딛고 일어선다.
눈동자는 슬프지만, 결코 꺾이지 않는다.
그는 끝내 포기하지 않는 힘을 그렸다.
그림 한 폭으로,
자신이 살지 못한 따뜻한 세상에 대한 염원을 남겼다.
황소는 오늘도 캔버스 위에서 숨 쉰다.
그 숨결은, 여전히 나의 등을 떠민다.
“버텨라. 싸워라. 그러나 잊지 마라, 너는 살아 있다는 것을.”
그 한마디가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그 울음 같은 침묵에,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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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만들어진 담배 겉포장을 벗겨내면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은지’가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부르기 좋은 대로 담배딱지, 은종이, 은지 등으로 불렸다.
여기에 그림을 그려보자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품은 화가가 바로 이중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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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uLbqAx0Ca2M?si=TJm7te-iJ84QOt7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