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위에 선을 그리며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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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의 묵서(Écriture) 시리즈 앞에 서면, 처음에는 당황스럽다.

화려한 색채도, 명확한 형태도, 극적인 서사도 없다.

오직 연필로 그어진 무수한 선들만이 캔버스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잠시 머물러 바라보면,

그 단조로운 반복 속에서 묘한 리듬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마치 숨소리처럼, 심장박동처럼 규칙적이면서도 미묘하게 변화하는 생명의 흔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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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위에 선을 그리는 행위.

그것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한 번, 두 번, 세 번... 수천 번, 수만 번의 반복.

그 과정에서 작가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아니, 과연 생각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오히려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고,

오직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선에만 집중했을 것이다.

그것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명상이고, 수행이다.




묵서라는 제목이 주는 의미도 깊다.

'묵묵히 쓴다'는 뜻의 묵서(墨書)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선을 긋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문자 이전의 언어, 말 이전의 소통.

박서보는 서양의 회화 문법을 빌려와 동양적 사유를 표현했다.

그의 선들은 글자가 아니지만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침묵의 언어로, 정적의 음성으로.




가까이 다가가 보면 각각의 선들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조금 더 진하거나 연하거나,

조금 더 길거나 짧거나,

조금 더 곧거나 구부러져 있거나.

완벽한 기계적 반복이 아니라 인간의 손이 만들어낸

미묘한 차이들이 화면 전체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적 흔적이다.

완벽하지 않기에 더욱 완벽한 인간의 숨결이다.


멀리서 보면 또 다른 경험이 기다린다.

무수한 선들이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어내며,

화면 전체가 마치 살아 숨쉬는 유기체처럼 느껴진다.

파도의 물결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처럼,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한 듯한 율동감이 있다.

정적인 그림이지만 그 안에 동적인 에너지가 숨어 있다.



이 작품들을 보며 우리 시대의 속도감을 생각해본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즉시 결과를 요구하며,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대에 박서보의 묵서는 정반대의 가치를 제시한다.


느림의 미학, 반복의 철학, 과정 자체의 의미.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찾는 깨달음의 순간들.

작가는 아마도 매일 아침 작업실에 앉아

어제의 선 위에 오늘의 선을 그었을 것이다.

그 반복 속에서 시간은 멈추고,

자아는 사라지고,

오직 순수한 행위만이 남았을 것이다.

그것은 수도승의 염불과도 같고, 서예가의 임서와도 같다.




예술을 통한 수행, 수행을 통한 예술.

박서보의 묵서 시리즈는 우리에게 묻는다.

진정한 풍요로움이 무엇인지,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화려함이 아닌 담백함에서,

복잡함이 아닌 단순함에서,

말많음이 아닌 침묵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그의 선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속삭인다.

조급하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고.

선 위에 선을 그리듯, 하루 위에 하루를 쌓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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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AZg7y5SsCtk?si=7m2tkTZ99Jj2l1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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