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김창열(1929~2021)의 물방울 앞에 서면 시간이 멈춘다.
캔버스 위에 맺힌 투명한 물방울들이
마치 지금 막 떨어질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 완벽한 착시는 단순한 기법의 문제가 아니다.
평생을 물방울에 바친 한 예술가의 철학이자 신념이며,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다.
1976년 현대화랑에서 열린 개인전.
김창열 화백이 한국에서 처음 물방울 연작을 선보이던 그 순간을 상상해본다.
이미 파리에서는 주목받기 시작한 작품이었지만,
구상 회화에 열을 올리던 당시 국내 화단의 분위기는 차가웠을 것이다.
형태도 없고, 이야기도 없고, 오직 물방울만 있는 그림.
사람들은 의아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확신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걸었다.
그 용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이토록 아름다운 작품들을 남겨주었다.
물방울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복잡한 형태다.
완벽한 구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온 세상이 담겨 있다.
빛을 굴절시키고,
주변의 풍경을 왜곡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생명체처럼 움직인다.
김창열은 바로 그 순간을 포착했다.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 물방울,
영원히 흘러내리지 않는 시간의 방울들.
그의 물방울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크기도, 형태도, 반사하는 빛의 각도도 조금씩 다르다.
마치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똑같은 물방울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무한한 변주다.
하나의 주제로 펼쳐낸 끝없는 상상력의 세계다.
물방울이라는 소재 선택도 의미심장하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순수함의 상징이다.
동시에 가장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존재이기도 하다.
고체도, 액체도, 기체도 될 수 있는 물의 가변성처럼,
김창열의 물방울들도 때로는 눈물이 되고,
때로는 이슬이 되고,
때로는 빗방울이 된다.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물방울이 만들어내는 공간감이다.
평면 위에 그려진 물방울들이지만,
그것들은 화면에 깊이를 부여하고 새로운 차원을 열어준다.
볼록 렌즈처럼 작용하는 물방울들은 현실을 확대하기도 하고 축소하기도 하면서,
우리의 시각적 경험을 확장시킨다.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이 물방울을 통해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다.
김창열이 '물방울 화가'로 불리는 것이 결코 제한적인 명명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오히려 그것은 한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가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평생을 물방울과 함께 살아온 작가에게 물방울은
단순한 그림의 소재가 아니라 삶 자체였을 것이다.
그의 작품들을 보며 우리 시대의 산만함을 반성하게 된다.
무엇이든 빠르게 소비하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시대에 김창열의 물방울은
정반대의 가치를 제시한다.
하나의 주제에 평생을 바치는 집중력,
같은 것을 반복하면서도 매번 새로운 발견을 해내는 창조력,
단순함 속에서 복잡함을 찾아내는 혜안.
물방울은 영원하다. 떨어질 듯하지만 떨어지지 않고,
사라질 듯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김창열의 물방울들처럼 말이다.
작가는 떠났지만 그의 물방울들은 여전히 캔버스 위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투명하지만 분명한 존재감으로, 작지만 무한한 우주를 품고서.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구상화가로 알려진 김창열이지만, 그의 시작은 추상화가이다. 1969년까지 추상작품을 그렸으나, 1965년에서 1971년 사이 사실주의 화가로 변모하게 된다. 파리에 정착한 지 3년째 되는 1972년, 살롱 드메 展에 물방울 그림 <Event of Night(밤에 일어난 일)>를 출품하여 본격적으로 데뷔한 김창열은, 극사실주의적 필치로 그리는 그의 물방울은 초기의 응집력이 강한 영롱한 물방울에서 표면장력이 느슨해져 바탕에 스며들기 직전의 물방울까지 다양하다.
P.S 아래 링크로 가시면 김창열화백의 많은 작품을 VR로 감상 하실 수 있습니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