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햇살이 캔버스 위에서 춤추듯 흩어지는 그의 화폭을 바라보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진다.
오지호(1905-1982)는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빛과 색채의 아름다움을 포착해낸 한국 인상주의의 아버지였다.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의 미묘한 변화에 민감했다.
들판의 보리가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
석양이 산등성이를 물들이는 순간들이 그의 예술적 감성을 키워나갔다.
1922년 도쿄미술학교에 진학한 후,
서구의 인상주의 기법을 접하게 된 그는 모네와 르누아르의 빛의 언어를
한국적 정서로 번역해내는 작업에 몰두했다.
귀국 후 그가 그려낸 작품들은 당시 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1938년 발표한 '설경'은 한국 인상주의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눈 덮인 산야를 보랏빛과 푸른빛으로 표현한 이 작품에서
그는 단순한 흰색이 아닌 온갖 색채가 어우러진 눈의 참모습을 포착했다.
또한 '덕수궁의 봄'에서는 궁궐의 고즈넉한 정취를 밝고 경쾌한 색조로 재해석했고,
'남해금산' 연작에서는 남해의 푸른 바다와 기암괴석을
역동적인 붓터치로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특히 '자화상'(1949)은 인상주의 기법으로 그려진
국내 최초의 자화상으로 미술사적 의미가 크다.
전통적인 동양화의 선 중심 표현에서 벗어나 색면과 터치로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는 그의 화법은 혁명적이었다.
무엇보다 오지호의 진정한 가치는 서구 미술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한국적 감성으로의 소화와 재창조에 있었다.
그는 프랑스 시골의 건초더미 대신 우리나라 산야의 억새를,
센 강변 대신 남해의 푸른 바다를 화폭에 담으며 한국 인상주의의 독자적 경지를 개척했다.
광복 후에도 그는 후학 양성에 힘써 홍익대학교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그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이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것을 보면,
그가 단순한 화가가 아닌 한국미술의 방향을 제시한 선구자였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한국적 색채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도,
결국 오지호가 일궈낸 토양 위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는 빛을 그린 화가였지만,
더 나아가 한국미술에 새로운 빛을 선사한 진정한 개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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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6m2Ma8uX74s?si=p96Ske23fqVBiM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