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종이 지폐 위 세종대왕의 얼굴은 매일 내 손안을 스친다.
입술을 살짝 다문 채,
왼쪽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간 그 표정은 슬픈 듯,
단호한 듯,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연상시키는 신비로움을 띤다.
이 초상의 창조자 운보 김기창(1913~2001)은 실물이 남아있지 않은
세종을 역사적 기록과 상상력으로 빚어냈다.
1973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의 의뢰를 받아 탄생한
이 표준영정은 왕의 위엄보다 인간적 고뇌를 담고자 했을까?
그는 쌍꺼풀 진 눈과 둥근 콧방울에 자신의 얼굴을 은유하기도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기창의 붓끝은 허공을 가리켰다.
세종의 진영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
없는 얼굴을 그려야 하는 화가의 고뇌는 '감질나는 니즈'로 이어졌다.
"얼굴이 없기에는 너무 그 자취가 크고 지금껏 방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서양의 예수 초상과도 닮았다.
실체 없는 존재를 육화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영정 없는 성군을
향한 민중의 그리움이 투영된 결과다.
그러나 그의 붓에는 또 다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일제 강점기,
스승 김은호로부터 일본화식 채색화법을 배운
그는 조선미술전람회에서 4회 연속 특선을 차지하며 총독부 추천작가가 되었다.
1944년 결전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적진 육박>은
착검한 일본군의 돌격을 묘사한 대표적 친일 작품이었다.
해방 후 그는 세종대왕,
을지문덕 등 민족 영웅의 초상을 쏟아냈고,
1973년 그린 세종 영정은 만원권의 얼굴이 되었다.
친일의 과거와 민족의 상징을 동시에 품은 아이러니-
그 자체가 한국 현대사의 단면이다.
작품 세계의 핵심은 '바보산수'에 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이 연작은
조선 민화의 소박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몽롱한 일본식 채색을 벗어던지고 해체된 공간에 강렬한 원색을 채웠다.
'구멍가게'(1950)의 소박한 일상에서
'군마'(1950년대 후반)의 폭발적 에너지까지,
그의 화풍은 고전과 추상을 넘나드는 다원성을 보였다.
후천성 청신경 마비로 청각을 잃은 후,
시각 예술에 대한 집착은 더욱 격해졌다.
"걸레추상화"라 불린 실험적 작품에서 먹물이 흘러내린 자국은
고통의 양식화(樣式化)이자 해방의 제스처였다.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상은 김기창의 초상과 다르다.
조각가 김영원은 지폐의 유약한 이미지를 거부하고
고종의 인상을 참조해 결단력 있는 얼굴을 창조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지폐 속 세종과 마주한다.
그것이 허구임을 알면서도, 그 얼굴은 이제 진실이 되었다.
김기창의 예술적 모순-친일의 오점과 민족 정신의 재건,
전통의 계승과 전위적 실험-은
세종의 초상에 스민 또 하나의 레이어가 되었다.
만원권을 들여다볼 때마다 보이는 것은
왕의 용안이 아니라 역사의 상처와 상상력이 교차하는 풍경이다.
"가짜얼굴들은 진짜 그에게 다가가기 위한 통로인지,
아니면 여기 우리에게 필요한 어떤 장식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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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whLvb0yvIFo?si=sGK8HI5iGvd7RG2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