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한 장의 푸른 종이. 대한민국 만 원권 지폐다.
세종대왕의 엄숙한 초상이 새겨진 이 푸른빛 종이는
배춧잎이라 불리며 손에서 손으로,
세월에서 세월로 건너왔다.
그 시작은 우여곡절이었다.
석굴암 본존불이 새겨질 뻔했던 이 지폐는
기독교와 불교 양측의 반발에 부딪혀 결국
위대한 과학군주 세종대왕의 얼굴로 자리 잡았다.
운보 김기창 화백의 붓끝이 빚어낸 초상과 뒤편의 혼천의,
흐릿한 천체망원경의 실루엣은 조선의 과학 정신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1973년, 이 푸른 종이 한 장은 서민에게는 꿈같은 액수였다.
만 원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수 있었고,
담배 보루를 살 수 있었으며,
번듯한 직장인의 한 달 월급이 겨우 3~5만 원이던 시절이었다.
탄광 마을 개가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는 그 가치를 웅변했다.
80~90년대,
만 원은 고깃집 삼겹살부터 뷔페,
스테이크까지 한 끼를 책임졌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교통카드 충전,
친구와의 외식 회비,
간단한 장보기의 기준이 되었다.
중국집에서 짜장면에 탕수육을 더하고,
분식집에서 김밥과 라면, 만두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힘이 여기에서 나왔다.
그러나 시간은 이 푸른 종이의 무게를 점점 가볍게 만들었다.
2010년대, 만 원으로 담배 두 갑을 사는 게 고작이 되었고,
서울에서의 단거리 이동 외엔 여행의 꿈도 꾸기 어려워졌다.
지금은 더욱 암담하다.
교통카드 충전금으로는 이틀도 버티기 힘들고,
식당에서 한 끼를 간신히 때울 수 있는 금액으로 전락했다.
마트의 삼겹살 한 근조차 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만 원의 푸른빛은 여전히 손쉬운 출금의 대상이고,
현금 거래의 중심에 서 있지만,
그 실질적 의미는 한 끼 식사의 문턱을 간신히 넘는 데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이 지폐는 버티고 있다.
오만 원권의 부담스러움과 카드 결제의 편리함 속에서도,
소액 거래와 비상금으로서의 생명력을 이어간다.
위조 방지 기술이 진화하고,
일련번호가 한글에서 로마자로 바뀌며 해외 위조에 대응했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물에 젖고, 불에 타고,
갈기갈기 찢겨도 교환을 기다리는 만 원권의 이야기는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다.
경제성장과 물가 상승,
생활양식의 변화가 고스란히 스민,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가장 극적으로 가치가 변해온 한 장의 푸른 종이.
만 원권은 단순한 지불 수단이 아니라,
우리 삶의 무게를 가늠해 온 자그마한 역사책이다.
------------
https://youtu.be/9AuzJ2GBCGw?si=T6SS7PhXGkilOCB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