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박생광,
원색의 폭풍이 화폭을 휩쓸고 지나간 자리,
그곳에는 한국인의 원초적 생명력이 꿈틀거린다.
박생광(1904-1985)은 전통 한국화의 고요한 수묵 세계에
강렬한 색채의 번개를 내리친 혁명가였다.
진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탈춤과
굿판의 원시적 에너지에 매료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온 그의 마음속에는
우리 것에 대한 갈증이 타오르고 있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며 그는 과감히 서양화 붓을 내려놓고 한국화로 전향했다.
하지만 그의 한국화는 기존의 그 어떤 것과도 달랐다.
박생광의 대표작 '무녀도' 연작은 한국미술사에 충격파를 던진 문제작이었다.
무당의 춤사위를 극도로 과장된 색채와 형태로 표현한 이 작품들에서
빨강, 노랑, 파랑의 원색들이 서로 부딪치며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낸다.
'샤머니즘'(1980-1981) 연작에서는 굿판의 광기 어린 열정을 화폭에 옮겨 놓았고,
'전설'(1984)에서는 한국의 신화와 설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그의 그림에서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강렬한 대비색의 사용이다.
전통 한국화가 추구해온 담담한 먹색의 세계와는 정반대로,
그는 형광색에 가까운 원색들을 거침없이 화폭에 쏟아부었다.
이는 단순한 충격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내면에 잠재된 역동적 생명력을 시각화하려는 의도였다.
탈춤의 익살스러운 몸짓,
굿판의 황홀한 몸부림,
민중의 한과 흥이 그의 붓끝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박생광은 또한 전통 소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탁월했다.
신선도나 산수화 같은 고전적 주제들도 그의 손을 거치면 팝아트를
연상시킬 만큼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작품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신선도' 연작에서는 도교의 신선들을 마치 록스타처럼 화려하고
개성 넘치는 모습으로 그려내어 화제를 모았다.
그의 작품 세계는 서구 모더니즘의 수용이 아닌,
우리 문화의 원형질에서 길어올린 독창적 현대성이었다.
한국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파괴하고 재창조한
그의 예술 정신은 후배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박생광은 단순히 그림을 그린 화가가 아니라,
한국인의 정체성을 색채로 웅변한 문화적 발언자였다.
그의 원색 하나하나에는 억압받은 민족의 한과 분노,
그리고 꺾이지 않는 생명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https://youtu.be/E4xOjMdCOFU?si=bQl688WYFVTEF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