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영광의 섬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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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푸르렀고, 바다의 푸름은 그보다 더 깊었다.

파도는 쉼 없이 노래했고,

괭이갈매기의 날갯짓이 푸른 빛 위를 스쳤다.


화가 류인선이 처음 내딛은 독도의 땅은

비바람에 깎인 검은 현무암 위로

생명의 고백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소리쟁이와 방가지똥은 바위 틈을 단단히 움켜쥐었고,

개갓냉이 노란 꽃들은 섬 전체에 산들거리는 금빛 웃음을 입히고 있었다.

척박함을 꿋꿋이 녹여낸 이 꽃들은 화가의 가슴을 찌르는 질문이 되었다.


"육지에서 천 리나 떨어진 이 외로운 바다 한가운데,

너희들은 어떻게 이토록 당당히 살아남았는가?"



류인선 독도수호바위 풍경, 91×182cm, 면천에 한지와 채색, 2015.jpg 류인선 독도수호바위 풍경, 91×182cm, 면천에 한지와 채색, 2015



류인선의 붓은 꽃의 눈높이로 내려갔다.

<독도-풀꽃 사이로 보다> 연작에서 풀꽃들은 바위 위로 고개를 내밀며 동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반기듯, 두리번거리듯.

캔버스가 아닌 한지 위에 채색된 풀잎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생생한 숨결이었고,

화가의 시선은 풀꽃들의 시선과 정확히 겹쳐져 있었다.

이는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경의였다.

뿌리 내린 모든 존재가 ‘주인’임을 인정하는 예술가의 고백이었다.

그의 붓끝에서 독도는 위엄이 아니라 정겨움으로, 거리가 아니라 친밀감으로 다가왔다.



20250711_100611.jpg 류인선 <독도-풀꽃 사이로 보다 1, 2, 3>, 116.8×91cm, 면천에 한지와 채색, 2015



독도를 그리는 화가들의 마음속에는 늘 파도가 치고 있었다.

일본의 끊임없는 도발은 붓을 칼처럼 만들었다.


조광기의 독도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였다.

<독도의 꿈>에서 동도는 푸른 망토를 두른 용(龍)이었다.

꿈틀거리는 용의 척추 같은 바위,

먼 바다에서 포착한 신비로운 기운.

그는 아크릴 물감으로 드로잉을 하며

메트지와 캔버스에 각기 다른 질감의 독도를 탄생시켰다.

마치 섬이 스스로 말을 걸어오는 듯한 생동감-

그의 작품은 지리적 좌표를 넘어 신화의 차원으로 독도를 끌어올렸다.



조광기 독도의 꿈, 77×107cm, 메트지에 아크릴 드로잉, 2015.jpg 조광기 <독도의 꿈>, 77×107cm, 메트지에 아크릴 드로잉, 2015



그런가 하면 박대성의 <독도>(218x800cm)는

압도적 존재감으로 관람객을 압박했다.

가로 8미터의 종이 위에 잉크로 뱉어낸 해룡(海龍)은

여의주를 움켜쥐고 동해를 호령했다.

이 작품은 단순한 형상이 아니라 땅의 기운을 응축한 상징이었다.

화가는 독도에서 받은 ‘에너지’를 고스란히 화폭에 투사했고,

그 결과물은 섬을 사유하는 경외의 방식이 되었다.



박대성 독도, 218×800cm, 종이에 잉크, 2015.jpg 박대성 <독도>, 218×800cm, 종이에 잉크, 2015



김준권의 목판화 <독도의 아침>(2018)은

수평선 위로 해무가 걷히며 동도와 서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유성목판으로 찍어낸 미세한 색조의 변화는

마치 숨 쉬는 하늘과 바다를 포착한 듯했다.



김석_독도-2.jpg 김준권 <독도의 아침>, 30×40cm, 유성목판, 2018



전시장 벽에는 그의 <독도-동도>와 <독도-서도>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채묵(彩墨)으로 빚은 두 섬은 마치 새벽을 지키는 쌍둥이 수호신 같았다.

판화라는 매체의 한계를 넘어선 이 섬세함은,

독도에 대한 예술가의 집요한 사랑을 증명했다.



20250711_102437.jpg (좌) 김준권 <독도-서도>, 89×60cm, 채묵목판, 2014 (우) 김준권 <독도-동도>, 89×54cm, 채묵목판, 2014



"독도는 멀지만 그림은 가깝다."


수많은 화가가 독도를 그리는 까닭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류인선의 꽃처럼, 조광기의 용처럼, 김준권의 새벽처럼.


독도는 결코 하나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이 땅의 화가들은 붓으로 독도의 무수한 얼굴을 발견하며,

그 안에 스민 우리의 역사와 정체성을 읽어낸다.

척박한 바위를 뚫고 피어나는 방가지똥 한 포기가 외세의 풍파를

꿋꿋이 견뎌낸 이 섬의 역사와 닮았음을 보았기에.


10월 25일, 독도의 날이면 우리는 조용히 그림을 떠올려본다.

푸른 물결 위로 떠오르는 두 바위섬이 아니라,

수천 개의 붓끝이 증언하는 ‘살아 있는 독도’를.

소리쟁이 뿌리 내리는 소리,

괭이갈매기가 바다에 퍼뜨리는 메아리,

해무 사이로 스치는 첫 빛의 속삭임—

그것들은 모두 똑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여기 살아있다. 너희 땅이자, 너희 이야기다."

화가의 캔버스는 독도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창이었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것은 지도 위의 점이 아니라,

그 창 너머에 피어난 고요한 영광의 전언이다.


푸른 것은 하늘이고
더 푸른 것은 바다라지만
가장 푸른 것은
뿌리 내린 자들의 고백임을!
독도는 그렇게 말했다.



김석_독도-1.jpg 김선두 <독도-작은 리조트>, 145×112cm, 장지에 분채, 2017



김석_독도-4.jpg 정일영 <독도>, 97×162cm, 캔버스에 아크릴, 2017



김석_독도-14.jpg 김덕기 <원더풀 독도>, 193.9×259.1cm, 캔버스에 아크릴, 2015



권용섭 작 '아름다운 독도'..jpg 권용섭 작 '아름다운 독도'.



미확인 640064 (2).jpg 이종상, ‘독도귀어(獨島歸漁)’, 한지에 수묵채색, 37.5×45cm, 1980



이철규 독도무진도.jpg 이철규 독도무진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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