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법정은 신성하다고들 한다.
대리석 계단과 고풍스러운 현판 아래,
추상적 정의가 구체적 판결로 내려지는 성소(聖所)라 한다.
검은 가운을 걸친 이들은 그곳에서 권력의 칼날을 다스리는 수호자요,
약자의 마지막 방패라 칭송받는다.
그러나 그 검은 천 아래 가끔, 가장 어두운 그림자가 스민다.
법을 집행하는 자들의 횡포는 시대가 변해도 바뀌질 않는다.
살인 사건 현장에서 금 목걸이를 훔치는 파렴치한 행위부터,
정권이 바뀌면 죄가 안되는 판결,
국민들은 분노하지만 그들의 리그를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한다.
제일 화가 나는 사건은 권경애변호사 사건이다.
권경애 변호사라는 이름이 우리 사회에 던진 거대한 물음표는
법조계의 위엄이 아니라 그 이면에
도사린 부패와 무책임의 추악함을 낱낱이 드러냈다.
고 박주원 양. 학교폭력에 짓눌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소녀의 어머니 이기철씨는 딸의 죽음에 책임을 묻기 위해 법의 문을 두드렸다.
상처뿐인 마음에 유일한 희망은 정의의 이름으로 내려질 판결이었다.
그녀가 선택한 변호인 권경애는 피로 얼룩진 사건을 맡은 법률가로서,
유족의 상처를 치유하고 진실을 밝히는 사명을 가졌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법정은 무대 위 공연에 불과했다.
1심 두 차례, 2심 세 차례-재판 기일마다 그녀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특히 2심에서의 연속된 불출석은 법원으로 하여금 항소를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게 했고,
이는 피해 유족의 사실상 패소를 의미했다.
그러나 이 무책임은 시작에 불과했다.
승소도 패소도 아닌, 재판 자체를 무너뜨린 권 변호사의 가장 추악한 선택은
패소 사실을 무려 5개월간 유족에게 숨긴 것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소송이 이미 패배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허공을 향해 기다리고 있었다.
대법원에 상고할 기회는 영원히 사라졌다.
이는 단순한 업무 태만이 아니다.
고의로 피해자를 어둠 속에 가둔,
직업적 신의(信義)에 대한 치명적 배신이다.
마치 중환자실 의사가 환자의 사망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계속 치료비를 받아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1심 법원은 권 변호사와 소속 법무법인에게 5천만 원의 위자료 지급을 명했다.
그러나 “소송 승소 가능성은 희박했다”는 이유로
재산적 손해배상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 판단은 또 하나의 씁쓸함을 남긴다.
유족이 잃은 것은 돈이 아니라,
딸의 죽음에 대한 공식적 인정과 사회적 책임 추궁의 기회 자체였다.
그 기회가 변호사의 무책임으로 증발해 버렸다.
현재 진행 중인 항소심에서 유족이 권 변호사와의 대질신문을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법적 절차가 아니라,
직접 그 얼굴을 마주 보며 배신의 깊이를 측정하고 싶은 절규다.
권변호사와 한패거리인 대한변호사협회의 정직 1년 징계는
이 거대한 사회적 분노 앞에서 너무나 초라해 보인다.
법조인의 의무는 영리 추구나 명성 쌓기가 아니다.
정의라는 깃발을 들고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골목까지 빛을 들이비추는 것이다.
그런데 권력과 자본의 그림자가 짙은 곳일수록,
오히려 그 그림자에 편입되어 약자를 착취하는 이들이 나타난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게 아니라, 어려움 자체를 약점 삼아 삥땅을 뜯는다”
이 말은 현실에 대한 통렬한 고발이다.
학폭 피해 유족을 상대로 한 권 변호사의 행태는 이를 교과서적으로 증명했다.
그녀는 법의 방패가 아니라 법의 이름으로 내리꽂은 창이 되어버렸다.
이 사건은 결코 개인적 비리로 치부할 수 없다.
이는 법조계 내부에 뿌리내린 시스템적 부패와
전문직 윤리의 황폐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이다.
정의를 구현해야 할 자들이 오히려 정의의 가장 큰 적이 될 때,
사회의 기초는 균열을 시작한다.
권경애 변호사의 이름은 이제 한 개인의 실책을 넘어,
우리 법률계가 마주한 치욕스러운 초상이자,
신뢰를 저버린 모든 권력의 추악한 본질을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다.
정의의 성전(聖殿)을 지키는 자들이 그 안에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도록,
우리는 그 그림자를 걷어내는 일을 멈출 수 없다.
배신당한 유족의 눈물이 마를 때까지,
그 부패의 그림자를 법정의 턱밑까지 끌어내리는 일을.
정의를 배반한 자가 결국 정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함을.
그러나 역부족이다.
그들만의 리그는 철옹성이다.
그저 서민들은 억울한 일을 안 당하도록 조심하고 살아가야 하며,
설령 억울한 일이 일어 나도 재수가 없다고 치부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내가 2025년 대한민국에서 내린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