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법정의 망치 소리가 울릴 때마다,
우리는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법조계의 현실은 그 기대를 배신하고 있다.
판검사석에 앉은 이들이 정의의 저울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은퇴 후의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대법관을 지낸 인사가 대장동 50억 클럽에 연루되어 불구속 기소되는 사건은
사법부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가 최고의 법관이었던 자가 거액의 금품 수수 의혹에 휩싸였지만,
구속되지 않은 채 재판을 받았다.
일반 국민이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특혜였다.
골프채를 받은 판사가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도 있었다.
금품 수수가 명백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법복을 입은 동료들은 관대했다.
2019년 라임 사태는 더욱 기가 막힌다.
변호사로부터 536만 원의 술접대를 받은 검사를 두고 무려 7년 동안
법정에서 다툰 쟁점은 놀랍게도 '1인당 술값이 100만 원을 넘었는가'였다.
당시 영화 '곡성'에서 나온 대사 "술값이 뭣이 중헌디?"가 유행하기도 했다.
서민들은 몇만 원의 교통범칙금도 즉시 납부해야 하는데,
권력의 중심에 선 이들은 수백만 원의 향응을 받고도 그 액수를 놓고 장장 7년을 다투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검사나 판사의 도덕성이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공정해야 할 자리에서 국민들의 신뢰를 깨버렸기 때문이다.
법조계에는 '전관예우'라는 오래된 관행에 있다.
판사나 검사로 재직하던 이들은 퇴임 후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수십억, 수백억 원의 수임료를 받는다.
실제로 2022년 통계만 봐도 전관 변호사들의 매출은 조 단위에 달했다.
현직에 있을 때는 월급쟁이 공무원이었던 이들이,
법복을 벗는 순간 재벌이 되는 기적이 벌어진다.
그렇다면 이들은 현직 시절 어떤 마음으로 판결을 내렸을까?
"너무 엄한 판결을 내리면 나중에 변호사가 되었을 때 의뢰인들이 꺼려하지 않을까?"
"저 대형 로펌에 가려면 이번 판결은 로펌에 유리하게 해야 하나?"
이런 계산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미래의 고객이 될 재벌과 권력자들을 상대로 온전한 판결을 내릴 수 있었을까?
더 충격적인 것은 일부 법조인들이 정치권에 줄을 대기 위해 본분을 버리는 모습이다.
공무원 신분으로 한쪽 편에 서서 판결을 내리고,
양심선언이라는 가면 아래 대중의 인지도를 쌓은 뒤 국회의원 배지를 단다.
법정에서 정의를 외치던 그들이 정치판에서는 국민을 우롱하는 또 다른 기득권이 된다.
이러한 현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냉소를 낳았다.
돈 있는 자는 전직 대법관이나 검찰총장 출신 변호사를 고용해 무죄를 받아내고,
돈 없는 자는 국선변호사와 함께 감옥으로 향한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 정신은 변호사 수임료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진다.
영국, 아일랜드, 홍콩, 싱가포르 등은 상급법관의 퇴직 후
변호사 개업을 영구 금지하거나 엄격히 제한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구조적 모순을 방치하고 있다.
기득권층에게는 불편한 진실이고,
일반 국민에게는 너무 복잡하고 먼 얘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제 국민들 사이에서는 급진적인 목소리마저 들린다.
"차라리 AI에게 판결을 맡기자"는 것이다.
편견도 없고, 은퇴 후 이익도 계산하지 않으며,
오직 법률과 선례만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인공지능 판사를 원한다는 것이다.
인간 법관을 향한 신뢰가 무너진 자리에,
차가운 알고리즘이 더 공정할 것이라는 역설적 기대가 자리 잡고 있다.
사법부의 권위가 이토록 추락한 현실이 참으로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