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한창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측근들이 연루된 부패 사건은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국방부 고위 인사들이 군수 물품을 비리로 거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국민들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권력자들의 탐욕이 자국의 젊은 청년들을 전장에서 억울하게 죽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보다 더한 사건이 있었다.
1951년 겨울, 얼어붙은 땅 위에서 스러져간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향하던 길 위에서,
조국을 지키겠다는 순수한 열정을 품고 갔던 그들은 결국 전장에 닿지도 못한 채 동사했다.
국민방위군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된 이 비극은,
부패가 얼마나 많은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통렬한 증언이다.
1950년 12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급변하자
정부는 후방의 청장년들을 동원하기 위해 국민방위군을 창설했다.
50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소집되었고,
그들은 추운 겨울에도 조국을 위해 기꺼이 군복을 입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총칼이 아니라 배고픔과 추위, 그리고 죽음이었다.
국민방위군 간부들은 병사들을 위한 식량비와 피복비를 착복했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쌀과 옷조차 횡령의 대상이 되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 속에서 제대로 된 군복도 없이,
굶주린 채로 행군하던 병사들은 하나둘씩 쓰러져갔다.
길가에, 마을 어귀에, 차가운 땅 위에서 그들은 숨을 거두었다.
공식 기록으로만 5만여 명이 죽었다고 하지만, 실제 희생자는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이름도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채,
가족들조차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들은 적의 총탄에 맞아 죽은 것이 아니라, 같은 민족의 탐욕에 의해 죽었다.
전쟁터에서가 아니라 전쟁터로 가는 길에서 죽었다.
사건이 터진 후 재판이 열렸고, 국민방위군 사령관을 비롯한 간부 5명이 총살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죽은 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을 잃었고, 아내는 남편을 잃었으며, 어린 자식들은 아버지를 잃었다.
전쟁이라는 혼란 속에서 그들의 죽음은 금방 잊혀졌고,
가난한 가족들은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살아야 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전쟁과 위기의 시대에는 언제나 부패가 싹튼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이들을 이용하여 배를 불리는 자들이 나타난다.
국민방위군 사건은 단순히 70여 년 전의 옛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권력을 감시하지 않으면, 부패를 방치하면,
다시 누군가의 자식이, 누군가의 부모가, 추운 겨울날 억울하게 죽을 수 있다고.
전장에서 죽은 군인은 조국을 지킨 영웅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부패로 죽은 이들은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그들은 희생자이자 피해자이며, 동시에 우리 사회의 수치다.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모두가,
부패를 막지 못한 우리 사회 전체가 그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겨울이 올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얼어붙은 땅 위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던 그들의 마지막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조국을 원망했을까, 자신의 운명을 저주했을까,
아니면 남겨진 가족들을 걱정했을까.
우리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할 빚을.
국민방위군 사건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 사회는 정의로운가,
우리 나라는 청렴한가,
우리는 부패에 맞서 싸우고 있는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질문들은 유효하다.
그리고 우리가 이 질문들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추운 겨울날 스러져간 그 젊은 영혼들은 결코 편히 잠들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