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화려한 금빛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가 1910년 완성한
〈죽음과 삶〉은 이례적으로 회색 바탕 위에 펼쳐진다.
오른쪽에는 꽃무늬 천에 둘러싸인 생명의 군상
—젊은 어머니와 아이, 사랑에 빠진 연인, 지혜로움의 노녀—
이 서로 얽혀 살아있는 온기를 발산한다.
왼쪽에는 푸른 망토를 걸친 해골이 붉은 곤봉을 기울인 채 그들을 응시한다.
이 대비는 삶이 죽음의 품 안에서 피어난 일시적 꽃임을 고백하는 순간이다.
클림트가 이 작품을 스케치한 1908년은 유럽이 죽음에 휩싸이던 해였다.
포르투갈 국왕 부자의 암살, 이탈리아 대지진으로 8만 명의 희생…
그러나 그에게 죽음은 공적 비극 이전에 사적 상흔이었다.
1892년, 그는 한 해에 아버지와 동생을 연이어 잃었다.
동생의 관 앞에서 "슬픔이 나를 삼킬 것 같다"고 일기에 적었던
그 상실감은 20년 후 이 캔버스에 스며들었다.
해골이 쥔 붉은 곤봉은 피의 상징이자 고통의 실체였다.
초기 버전(1910)은 화려한 금색 배경이었다.
생명은 화사했고 죽음은 정적이었다.
그러나 1915년, 그는 붓을 들어 과감히 그림을 덧칠했다.
금빛을 짙은 회색으로 가리고,
죽음의 망토에 십자가 무늬를 새기며 해골의 자세를
웅크린 모습에서 활동적인 경계자로 바꿨다.
이 변화에는 타이타닉호의 침몰(1912)과 어머니의 죽음(1915)이 깔려 있었다.
임종 때 어머니가 속삭인 "내 모든 걸 가져가네"라는 말은
회색의 물감으로 변해 캔버스에 스며들었다.
죽음의 시선 아래서 생명 군상은 오히려 평정을 잃지 않는다.
어머니는 아이를 안은 채 미소 지으며, 연인은 부드럽게 포옹한다.
이는 클림트의 깨달음을 드러낸다:
"죽음은 적이 아니라 삶의 그림자 같은 동반자다."
후기 작품에서 죽음은 공포의 대상에서 삶의 필연적 일부로 재탄생했다.
〈키스〉(1908)에서 절벽 끝에 선 연인의 포옹 역시 같은 통찰의 연장선이었다
-사랑의 순간조차 죽음과 맞닿아 있음을.
1918년, 클림트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지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그의 미완성 유작 〈아담과 이브〉에서 이브의 눈빛은
생에 대한 집착과 죽음에의 복종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죽음과 삶〉을 수정한 지 3년 후,
그는 마침내 푸른 망토의 해골과 하나가 되었다.
빈의 묘지에 서 있는 그의 비석은 금빛 꽃무늬로 수놓여 있다.
생의 화려함과 죽음의 침묵이 공존하는 최후의 작품처럼.
그림 속 인물들의 미소는 이렇게 속삭인다:
"죽음이 삶을 끝내지만, 삶의 의미는 오직 죽음 앞에서 빛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림자야말로 생명의 윤곽을 선명히 그려내는 빛인 까닭이다.
https://youtu.be/bbH68avQ0fQ?si=2888-arOYgbATDd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