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끝에 피어난 고통과 자유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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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드레스에 싸인 세 노부인이 산보다 우뚝 서 있다.

얼굴은 푸른 빛, 보라색, 붉은 색의 물감 덩어리로 뒤덮여 신화 속

운명의 여신처럼 압도한다.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독일, 1880-1938)의 <세 명의 노부인들>(1925)은

다보스의 뤼쉬 자매를 모델로 했으나,

화가의 우울이 색채로 폭발한 작품이다.

여신의 실타래를 자르듯,

그는 인생의 무게를 캔버스에 찢어 놓았다.



세 명의 노부인들.jpg 세 명의 노부인들, 1925



1905년 드레스덴. 건축학도 키르히너는

아카데미의 틀을 거부한 동료들과 ‘다리파’를 결성한다.

“미래 예술로 건너가는 다리”라는 선언처럼,

<모리츠부르크의 목욕하는 사람들>에서

나체의 인간이 자연과 하나 되는 유토피아를 그렸다.

에로티시즘이 아닌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에 대한 갈망이었다.



img-202011035fa146d8876d8-iPad.jpg 모리츠부르크의 목욕하는 사람들



그러나 베를린 이주 후 그의 붓은 어두워진다.

<베를린 거리 풍경>(1914)의 기괴한 각도와 푸른 얼굴들은

현대 도시의 소외를 고통스럽게 재현했고,

고흐와 뭉크의 영향 아래 인간 내면의 절규를 드러냈다.



베를린 거리 풍경(1914).jpg 베를린 거리 풍경(1914)



1차 세계대전 참전 후 신경쇠약에 걸린 그는

아내 헬레네의 권유로 스위스 다보스로 이주한다.

여기서 그의 예술은 재탄생한다.


<다보스의 여름>(1925)은 밝은 색채로 마을 풍경을 포용했고,

<가을의 세르티그 계곡>에서는 핑크빛 길이 산속으로 스르르 기어올랐다.

자연은 그의 모르핀 중독과 우울증을 치유하는 약이 되었다.

그러나 평화는 잠시뿐이었다.

1937년 나치는 그의 작품 600여 점을 ‘퇴폐미술’로 낙인찍어 파괴했다.

고향 뮌헨에서 열린 퇴폐미술전은 그에게 최후의 굴욕이었다.



20250714_155905.jpg Ernst-Ludwig Kirchner, Return of the Animals, Stafelalp


키르히너의 후기 작품은 생의 욕망을 정직하게 폭발시킨다.

1928년 헬레네와 산책하다 우연히 발견한 숲 속 연못에서 영감을 얻은

<숲 초원의 벌거벗은 여인들>은 나체의 여인들이

원시적 풍경과 융화되는 순간을 포착했다.

“사물의 객관적 정확성이 아닌 사물의 모습을 그린다”는 그의 선언대로,

푸른 머리카락과 연두색 그림자는 현실을 초월한 감각의 해방을 보여주었다.

말년의 <색의 춤> 연작은 이런 해방감이 극적으로 응축된 결과물이었다.



숲 초원의 벌거벗은 여인들.jpg 숲 초원의 벌거벗은 여인들



색깔 있는 춤(Colourful Dance), 100 x 90 cm, 캔버스에 유채, 1930 - 1932 년.jpg 색깔 있는 춤(Colourful Dance), 100 x 90 cm, 캔버스에 유채, 1930 - 1932 년



1938년 6월,

다보스 근처 집에서 그는 권총으로 생을 마감했다.

“사람들은 절망 때문에 예술가가 된다”는 그의 유언이 암시하듯,

키르히너의 예술은 고통과의 싸움에서 피어난 자유의 선언이었다.

나치가 파괴한 600점의 작품은 오히려 그의 정신을 불멸로 만들었다.


오늘날 다보스 키르히너 미술관에 걸린 <발코니>(1935) 속 부부의 이중 얼굴은

여전히 관객에게 묻는다: “인간의 내면은 얼마나 많은 색깔로 뒤덮여 있는가?”



발코니 1935.jpg 발코니 1935



붓이 흔들릴 때마다
피어난 푸른 절망이
캔버스를 뚫고
산이 되고
강물이 되어
마침내 자유의 다리가 되었다.



자화상.jpg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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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h0TOvtqInd0?si=Zm2ofhPkTXrAfzr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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