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관 속의 영원성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다운로드.jpg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의 상어(Shark)


유리관 속 포름알데히드에 잠긴 상어의 시선은

관람객을 산 자의 영역으로 끌어당긴다.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이라는

역설적 제목의 이 작품 앞에서

나는 비로소 죽음이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생물학적 현실임을 직감한다.


허스트는 죽은 동물의 신체를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변환시킴으로써,

우리가 일상에서 외면하는 죽음의 실체를 유리관이라는

투명한 무대 위에 강제로 배치한다.

상어의 하얀 눈동자에는 생명의 흔적이 사라졌지만,

그 위를 스치는 조명의 반사는 마치 호흡의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은 관객에게

“죽음은 타자의 경험이 아니라 나의 미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교훈을 각인시킨다.


허스트의 작품 세계에는 죽음과 삶의 경계가 유희적으로 해체된다.

‘분리된 엄마와 아이’(1993)에서 반으로 갈라진 소와 송아지의 신체는

생명의 신성함을 의문에 부친다.

장기들이 노출된 채 유리관에 담긴 채로 전시된 이 작품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생명의 연대성이 아니라

오직 해체된 육체적 실체만을 응시하도록 강요한다.


분리된 엄마와 아들(Mother and Child, Divided) /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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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충격적인 것은 ‘천년’(1990)이다.

피 묻은 소의 머리와 부패 과정에서 탄생하는

구더기, 파리, 전기 살충장치가 한 공간에 배치된 이 설치 작품은

생명주기의 폭력성을 생생히 재현한다.

구더기는 파리가 되고, 파리는 전류에 죽으며,

그 시체에서 새로운 구더기가 태어난다.

허스트는 “죽음은 하나의 축제”라고 선언하며,

부패와 재생의 순환을 가학적인 미학으로 승화시킨다.


천년 / 1990- 썩어 가는 소머리에 파리가 달려들면 전기 충격을 받아 죽게 됨


그의 작품이 주는 공포는 단순한 유해성(有害性)을 넘어선다.

백금 두개골에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은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는

죽음의 상징을 초호화 장신구로 전복시킨다.

735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가치가 부여된 이 작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죽음마저 상품화되는 아이러니를 폭로한다.

다이아몬드의 눈부신 광채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과연 영원한 생명을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허스트는 여기서 종교적 구원을 조롱한다.

기독교에서 두개골은 골고다의 상징이지만,

다이아몬드로 뒤덮인 이 유골은 신보다 화폐를 숭배하는 현대인의 우상을 드러낸다.


다운로드 (2).jpg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의 하나님의 사랑을 위하여(For love of God) 백금, 치아, 다이아몬드


그의 죽음에 대한 집착은 어린 시절의 경험과 깊이 연결된다.

장례식장에서 일하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시체와 죽음의 현장에 노출되었고,

시체 공시소 아르바이트 경험은 그에게 생명의 취약성을 각인시켰다.

이러한 배경은 그의 예술이 단순한 선정성을 넘어 실존적 고민으로 이어지게 한다.


1980년대 후반 대처 정권의 긴축 정치 속에서

불안에 짓눌린 영국 사회는 그의 작업에 공명했다.

허스트는 죽음을 “삶을 더 열정적으로 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하며,

부패하는 육체의 이미지를 통해 생의 유한성을 예찬한다.


최근 그의 작품 세계에 봄이 찾아왔다.

2015년 ‘러브’ 전시에서 선보인 하트 형상의 조각과 나비 날개로 만든 만화경 패턴들은

사랑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변화마저 죽음의 연장선상에 있다.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의 Psalm 148, 2008.jpg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의 Psalm 148, 2008


나비는 허스트에게 탈신체화된 생명의 은유다.

‘나비색채화’ 연작에서 박제된 나비 날개는

화려한 기하학적 배열 속에서도 생명의 소멸을 은유한다.

유리판에 붙어 반짝이는 날개 조각들은 한때 살아 숨 쉬었던 존재들의 무덤이 된다.


포름알데히드 냄새가 배인 전시장을 걸으며 나는 생각한다.

허스트가 보여주는 죽음의 잔혹함은 결국 삶에 대한 경외로 귀결된다는 것을.

그의 작품은 시체를 전시하는 유리관을 넘어,

관람객 각자 안에 잠든 죽음의 가능성을 깨우는 거울이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뉴스 속 죽음들,

—전쟁, 기아, 사고—

이 스크린 너머 추상적 통계로 전락하는 시대에,

허스트는 생명이 해체되는 물리적 순간을 도발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우리의 무감각을 일깨운다.


그가 말하는 “죽음과 삶 사이의 줄다리기”는

결국 인간 존재의 본질적 아포리(aporie)를 마주하라는 초대장이다.


“꽃이 영원히 피어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더욱 아름답게 느끼는 것과 같다.”
- 데미안 허스트


p.s 허스트는 가장 성공한 현대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미술계에서는 그가 지나치게 돈에 집착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2007년 1억달러(약 1200억원)에 팔린 것으로 알려진

조형 작품 ‘For Love of God’(신의 사랑을 위하여·위 사진)이

사실은 한 번도 판매된 적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허스트가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현대 미술 작가들은 지나친 상업성과 돈에 집착하는 모습에 실망이 크다.

예술의 본질을 앤디워홀이 왜곡 시켰다면 이젠 바로 잡을 화가가 나타났으면 한다.


151eb8788feb1.jpg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1965~, 영국



슈베르트 현악4중주 14번 죽음과소녀

https://youtu.be/EiGBYgAymi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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