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1907년,
오스트리아 빈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후원자이자 친구인 사업가
페르디난트 블로흐-바우어의 부탁을 받아 그의 아내 아델레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라 금색 시대의 정점이자
세기말 빈의 혼란을 응시하는 거울이었다.
클림트는 이탈리아 라벤나의 비잔틴 모자이크에서 영감을 얻어
캔버스에 금박을 입혔고,
아델레는 기하학적 삼각형과 눈 모양의 문양으로 장식된 드레스를 입고
황금의 바다에 잠긴 여신처럼 등장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유년기 상처를 감추려는 듯 교차했고,
눈빛에는 신비로운 우울이 스며있었다.
당시 빈 사회는 클림트와 아델레의 친밀한 관계를 수군거렸지만,
이 그림은 예술가와 후원자, 모델 사이의 신뢰가 빚어낸 기적이었다.
"그의 붓끝에서 아델레는 인간을 넘어 상징이 되었다.
황금은 신성함과 욕망의 경계를 녹였고,
기하학적 추상은 보는 이를 현기증 나는 우주의 소용돌이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이 화려함은 전쟁의 그림자에 삼켜졌다.
1938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며 유대인 블로흐-바우어 가문의 재산은 약탈당했고,
<아델레>는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라는 새 이름으로 빈 벨베데레 미술관에 강제 전시되었다.
아델레의 남편 페르디난트는 스위스로 망명하며 유서에
"모든 작품은 조카들에게 상속한다"고 명확히 기록했으나,
오스트리아 정부는 아델레의 유언장을 조작해 그림을 국유화했다.
그녀의 유언에는 "미술관에 기증"이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작품의 소유권이 남편에게 있었고,
그의 최종 의지는 무시당했다.
그림을 향한 60년의 추적
전쟁 중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탈출한 아델레의 조카 마리아 알트만은 1998년,
오스트리아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약탈한 예술품을
반환하라는 법을 제정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이미 80대 노구였으나 그녀는 집안 친구의 아들인
젊은 변호사 랜디 쇤베르크와 함께 8년에 걸친 소송을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국보 반출 불가"를 주장하며 소송을 지연시키려 했고,
마리아는 "그림보다 진실이 중요하다"고 맞섰다.
한 법정에서 오스트리아 관료가 "과거는 묻어두라"고 권했을 때,
그녀의 답변은 짧았고 날카로웠다.
"과거는 묻히지 않습니다. 과거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
2006년,
미국 대법원은 "외국 정부도 전쟁 범죄 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판결로
마리아의 손을 들어주었다.
결국 오스트리아 중재 위원회는 5점의 클림트 작품 반환을 결정했고,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I>는 화장품 재벌 로널드 로더가
1억 3500만 달러(한화 약 1,300억 원) 라는 당시 역대 최고가로 구입해
뉴욕 노이에 갤러리에 영구 전시했다.
그림이 빈을 떠날 때 시내 버스에는 "Ciao, Adele!(안녕, 아델레!)"이라는
작별 인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오스트리아 국민은 국보를 잃은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지만, 그 눈물은 강탈당한 진실에 대한 반성보다는 상실감에 가까웠다.
화폭에 새겨진 영원한 질문
클림트는 왜 이토록 아델레를 황금으로 감쌌을까?
아마도 그것은 쇠퇴하는 제국 속에서 피어난 마지막 화려함에 대한 집착이었다.
19세기 말 빈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탄생하고
말러의 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창조의 도시였으나,
동시에 반유대주의와 퇴폐적 향락이 번져가던 모순의 공간이었다.
클림트는 아델레의 초상을 통해 여성을 "어머니"이자 "요부"로 재현하며
고정된 여성상을 해체했고, 금빛 배경은 신성함과 관능을 동시에 암시했다.
그러나 나치는 이런 혼종적 아름다움을 "퇴폐 예술"로 낙인찍었다.
히틀러는 클림트의 작품을 불태웠고,
그의 이름은 오스트리아 예술사에서 지워지려 했다.
"진실은 불과 같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빛을 발하며 불타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 영화 <우먼 인 골드>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클림트의 문구.
오늘날 노이에 갤러리 2층에 걸린 <아델레>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화려함에 압도당한다.
그러나 그 황금빛 아래에는 상처받은 유산의 역사가 층층이 쌓여 있다.
약탈과 망각, 거짓말을 거쳐 되찾은 이 그림은 단순한 미술품이 아니라
과거의 폭력이 현재의 정의와 마주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마리아 알트만의 투쟁은 "문화재 환수"를 넘어 잃어버린 인간성을 찾는 여정이었다.
클림트가 아델레에게 선물한 금빛 드레스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물음이 된다:
"과거의 상처를 어떻게 황금으로 빚어낼 것인가?"
그림 앞에 선 이들은,
대답 대신 아델레의 눈동자에 비친 세기적 고뇌를 발견하게 된다.
p.s 현재 세계 20개국에 우리 문화재 15만 2천910점이 흩어져 있으며,
이중 6만 6천여 점이 일본에 있다.
고종 황제의 투구와 갑옷, 고려 라마탑형 사리구,
고려 범종 등 국보급 문화재들이 일본, 미국, 중국 등에서 보관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 사업가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우리 문화재 1천여 점을 반출한 것이 큰이유이다.
2차 대전 중 독일은 '로젠버그 제국별동대' 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문화재 약탈했다.
환수의 어려움을 겪고있는데 조선 의궤의 경우 2011년 100년 만에 환수되었지만,
환수위원회 구성부터 실제 환수까지 6년이 소요되었고,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인해 국제법적으로 문화재 반환 청구권이 제약받는 상황이다.
약탈국들의 "문화재는 전리품"이라는 그릇된 인식도 한몫한다.
국외 문화재 소재 파악과 피탈국 간 국제 연대 강화를 통한
체계적인 환수 노력이 시급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고,
문화가 없는 민족에겐 힘이 있을 수 없다"
영화 우먼인골드 OST